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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파파 Aug 18. 2022

출근 준비 리스트

(지극히 개인적인)

이제 곧 출근이다. 본격적인 육아에 앞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렇게 말하니 너무 비장하다. 하지만 효과적인 육아를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며 정한 것들이다.


어린집 어플(키즈노트)


모든 어린이집들이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는 어플이다. 이 어플을 통하여 알림사항, 출석체크 등 학부모와 선생님들의 다양한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다.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 알려주시는 알림사항도 중요하다. 하지만 육아에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많이 두는 것은 ‘활동알림'이다.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하루종일 어떠한 활동을 하였는지, 어떠한 경험을 하였는지,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사진과 함께 글로 보내주신다. 보내주신 글과 사진을 통해 아이가 어떠한 경험들을 하였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 자료들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와의 ‘공감과 소통'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육아의 자리는 두 돌도 되지 않은 세 살짜리 아이와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누린 경험들과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끄집어내주고, 확장시켜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시간이다. 때문에 어린이집에서 보내주시는 이러한 간접경험을 위한 자료는 아이와의 소통에 있어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고, 느껴보았는지 대중없이 물어보지 않고 최소한의 정보를 통해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의 경험을 조금 더 편하게 풀어놓을 수 있다.


때로는 위와 같은 정보들이 아이가 나에게 하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게끔 돕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나는 9시간이라는 꽤 긴 시간 아이와 떨어져 있었다. 나에게는 9시간이지만, 나보다 훨씬 빨리 흘러가는 아이의 시간은 성인의 9시간과 같지 않을 터, 이 간극을 우리의 노력만으로 채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린이집을 통해 전달된 정보들은 아이와 내 시간의 간극을 줄여주는 획기적인 도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또 다른 출근길이 되는 퇴근길에 어린이집 어플을 켠다. 그리고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글을 따라, 아이의 사진을 따라, 사진 속 아이의 눈을 따라 상상한다. 하나 뿐인 딸이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고, 느꼈는지말이다. 어떠한 감정을 느꼈을지, 무엇이 그녀의 마음에 담겨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상한다. 그렇게 눈을 감고 상상하다보면.


“내가 언제 잠들었지?”

  

카메라(사진기)


지극히 개인적인 도구임에 분명하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찍지만, 누군가는 영상으로 찍는다. 사실 ‘찍는다'는 표현보다는 ‘남긴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듯하다. 나는 사진기로 사진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기라는 기계를 조작하여 순간을 담아내는 그 모든 과정을 즐긴다. 더 나아가면 취미를 논해야 하는 영역이기에 여기까지. 그렇다면 육아의 영역에서 내 개인 사진기는 어떠한 도구인가? 바로, ‘타임머신'이다.


육아를 하며, 사진기로 남긴 아이의 사진. 이 사진들을 ‘나름의 육퇴'라고 말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예비 출근시간이라 말하는 그 어두워진 시간에 다시 꺼내본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 담긴 아이의 눈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 아이가 느낀 감정과 경험들 사이로 다시 들어간다. 그리고 아이의 편에서 그 상황을 다시 느껴본다. 아이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충분한 경험들이었는지, 과하거나 부족하지는 않았을지 등 순간적으로 지나갔을 그 시간을 조금 더 느린 것음으로 되돌아 가본다.


이미 곤한 잠이 들은 아이와 함께 마음의 손을 잡고, 사진 속 그 시간을 다시 걸어본다. 그렇게 두 어 걸음 걷다 보면, 그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이의 마음들과 시각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기쁘고 감격스런 감정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후회와 안쓰러운 감정이 마음의 문을 노크할 때도 있다. 내 자신에게 칭찬을 선사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왜 그랬니… 내일은 조금 더 잘해보자…”와 같은 의 위로 아닌 위로를 건낸다.


중요한 점은 이 활동이 내게는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준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시각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마음


사진기를 챙겼다면, 이제 내 마음을 챙길 차례이다. 주로 챙기는 마음의 주제는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다. 아이의 성장 속도와 시기에 따라 다르고 아이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세 살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와 살아감에 있어 내게 필요한 마음의 주제는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다. 이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막상 현장에서는 나의 시간에 아이의 시간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30년 넘게 살아온 성인에게 있어 자연스럽게 생기는 자기중심성이라 여길 수 있겠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에 있어 많은 부분은 아이의 시간에 나를 맞추어야 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너무나 힘들게 여겨졌다. 물론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다. 길을 걸을 때에도, 놀이를 할 때에도 아이는 순간적으로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든다. 그것이 길 가에 꽃이든, 책에 있는 그림이든, 주위에 있는 그 모든 것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나는 매우 ‘효율적'으로 이 상황을 다루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아이의 삶에 효율성이라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녀는 지금 느끼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그것과 소통하고 싶을 뿐이다.


앞으로도 가지 못하고, 뒤로도 가지 못하는 꽉 막힌 출퇴근 길 청담대로와 같은 감정상황 속에서 나는 마음 속으로 내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내가 하온이라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상황이 매우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나 중심적인 시간과 시각 안에서 존재한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 시간을 조금 누리는 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많은 경우가 그랬다. 앞으로도 그럴 일이 참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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