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다중우주. 사피엔스. 일원론적 세계관. 지구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반고는 거대한 달걀과 같은 암흑과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태어났는데, 1만 8천 년 동안 천지가 개벽하였다. 양(陽)의 맑음(淸)은 하늘이 되고, 음(陰)의 혼탁함(濁)은 땅이 되었다. (중략)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생기가 돌 것 같아 황토를 한 움큼 파서 물과 반죽을 해서 어떤 형체를 만들어 땅에 내려놓았다. 살아서 움직였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것이 곧 '사람'으로 신이 직접 창조했기 때문에 새나 짐승과는 달리 신의 모습을 닮았다. 여와는 계속하여 '남자'와 '여자'를 빚어냈는데 그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여와를 둘러싸고 춤을 추며 노래하였다.(후략)
서구는 19세기 이후 경제적인 식민지 개척을 위해 정복하려는 문화와 사회 연구에 몰두한다. 학자들은 성서의 땅을 발굴하면서 이전까지는 그림으로만 알았던 메소포타미아 쐐기문자와 이집트의 성각 문자를 판독한다. 성서가 가장 오래된 책이며 신의 계시라고 신봉했던 서양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이, 고대 이스라엘보다 수천 년 앞선 선진 문명이라는 사실과 조우하게 되자 당황한다. 특히 고고학과 지질학의 등장으로 이스라엘 역사는 유일한 역사가 아닌 여러 역사의 하나로 전락한다.
왜 사피엔스 종만이 지구 상에 살아남았나? 인간은 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 되었는가? 과학은 모든 종교의 미래인가? 인간의 문명은 왜 발전하였고, 이런 발전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는가? 인간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역사, 사회, 생물, 종교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 역사의 시간을 종횡무진 써 내려간 문명 항해기. 이제 우리는 무엇을 인간이라고 할 것인가.
한때 학자들은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두뇌의 힘을 연료로 하는 진보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중략) 이 이야기는 환상이다. (중략)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질병에 취약했으며 불만스럽게 살았다. (중략)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중략)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당신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상이한 두 방식으로 분석될 수 있는 하나의 언술(言術)에 해당한다. 한 가지 방식은 인과적이고, 다른 방식은 목적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하고, 한쪽에서 아무리 많은 문맥을 동원하더라도 다른 한쪽이 부적격 판정을 받는 일은 없다.(중략)
우리(인간)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벌써 무슨 얘긴지 알고 있는데 왜 나더러 읽어달라는 거야?”
“얘기를 듣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