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잡이의 왼손

어린왕자는 왼손잡이?

by 태현
왼손잡이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 이적 작사, 작곡. 패닉 노래 -




또 왼손이 아프다. 계속 욱신욱신거려 못 본 체 내버려 둘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멘소○○’을 꺼내 아픈 부위에 응급조치를 했다. 그저께 좀 무리하게 한 운동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 주말에 딸애와 놀이터에서 놀 때 너무 힘자랑했나?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뾰족이 떠오르는 답은 없다.


사실 언제부터 아팠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오래전부터 계속 아팠다.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불치병처럼 늘 이렇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거나 미뤘던 집안 대청소를 하였을 때, 놀이동산에서 신나게 놀다가 돌아오는 길이면 왼손목은 꼭 이렇게 투정을 했다.


난 오른손잡이다. 오른쪽 손을 주로 사용한다는 소리다. 젓가락질을 할 때도, 글씨를 쓸 때도, 카톡을 보낼 때도, 공을 던질 때도, 탁구 라켓을 잡을 때도 오른손을 사용한다. 오른손을 주로 사용해서인지 손가락도 오른손이 왼손보다 더 길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도 오른손은 더 수고스럽다. '벤치 프레스'처럼 양손을 사용하는 운동기구에서, 원래는 목표한 무게를 양분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오른손이 왼손보다 더 많은 무게를 부담한다.


오른손은 동생 많은 가난한 집의 맏딸처럼 어린 동생들을 키우고 배려해야 하기에 자신의 안위는 늘 뒷전이다. 그래서인지 오른 손등에 더 많은 상처 자국이 있다.


그런데도 주로 아파오는 곳은 왼쪽 손목과 팔, 어깨이다. 철없는 동생들이 힘에 겨운 큰 누나를 보고도 연필을 깎아 달라고, 숙제를 해달라고, 가방이 무겁다며 들어달라고 하나 보다. 큰 누나의 퉁퉁 부은 손목을 보고서도 다리 아프다며 업어달라고 하나 보다. 그럼에도 큰 누나는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봐 묵묵히 동생들을 돌봐왔던 걸까?




아니다. 아니다. 아니라고 외치는 왼손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기실 왼손은 서글펐던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왼손은 슬프고도 애달팠다.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중략)

아! 누구였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왼손은 미처 내가 깨닫지 못하는 매일의 순간들에서 열심히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자기보다 큰 탁자 위에 놓인 사탕을 먹고자 뒤꿈치를 들어 까치발을 하는 아이처럼.


오른손이 우아하게 젓가락질을 할 때 왼손은 무거운 밥공기를 들고 있었다. 오른손이 멋진 필체 휘날리며 글씨를 써 내려갈 때 왼손은 종이가 움직이지 않도록 힘껏 누르고 있었다.


오른손이 빛의 속도로 카톡을 보낼 때 왼손은 그 무거운 핸드폰을 들어 받치고 있었다. 오른손이 힘차게 야구공을 던질 때 왼손은 날아오는 공을 받기 위해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


어림없는 무게임에도, 그래서 ‘저는 안 되겠어요’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자신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오른손에 이끌려 왼손은 어쩔 수 없이 ‘숄더 프레스’ 운동기구에 앉아, 되지도 않는 힘을 썼다. 역시나 부족한 힘은 오른손이 채워주었다. 오른손이 큰 숨을 내쉬며 만족스럽게 내려올 때 왼손은 숨죽이며 오열을 삼켰다.


‘최선을 다했는데 왜 나는 오늘도 고개 숙여야만 하는 것인가? 자라오면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도록 운명 지어졌는데. 나도 왼손잡이의 왼손이었다면 잘할 수 있었다고!’




왼손잡이. 왼손을 주로 쓰는 사람이다. 2013년도에 진행된 한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왼손잡이 비율은 전체 국민들 중 약 5퍼센트 정도로 조사되었다. 전체 국민의 약 2.5~3 퍼센트 정도가 왼손으로 식사를 하고, 1 퍼센트 정도가 왼손으로 필기를 한다.


요즘이야 왼손잡이를 마치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이상하게 보는 일은 거의 없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왼손으로 글씨 쓰는 아이를 보면 “너 왼손잡이니?”라고 묻곤 했다. 오른손은 바른 손이고 왼손은 감추어야 했다.


손잡이에 대한 차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문화권에서 행해져 왔다. 다수자에 의한 소수자의 배척은 역사적으로도 흔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물건이 오른손 사용을 전제로 고안되었기에 그런 물건들을 왼손으로 사용하는 모습은 매우 어색하게 보였고 사회의 다수에게 이질감을 불러일으켰다.


돌려서 여는 손잡이나 구식 수도꼭지의 경우, 보통 시계방향으로 돌리도록 되어 있다. 바이올린, 트럼펫, 트롬본 등의 일부 악기는 아예 오른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게 고안되어 있다.


오래된 물건이라 그럴 수 있겠다 하겠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기구도 오른손잡이 위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스마트폰의 경우 전원 버튼이 오른쪽에 주로 위치해 있다. 스마트폰 앱의 주요 버튼이 오른쪽에 붙어 있어 왼손으로만 스마트폰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터치를 할 때에 불편하다. PC의 마우스도 최초에는 당연히 오른손 검지로 클릭하기 편하도록 만들어졌다.


글씨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것은 불편하기에 악필이 왼손잡이들에게서 유독 많이 나타나는 편이다. 왜냐하면 오른손잡이는 자신이 앞서 쓴 내용과 비교하여 무의식적으로라도 글씨 크기나 줄을 맞추며 쓸 수 있지만, 왼손잡이는 앞서 쓴 내용이 펜을 쥐며 움직이고 있는 왼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쓰면서도 자신의 글씨를 지우고 있는 꼴이었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수가 비슷하였다면 서로 맞춰가거나 혹은 극렬한 대립이라도 하였겠지만, 오른손잡이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왼손잡이를 찍어 누르고 사회적 표준을 오른손으로 강요하는 결과가 가능했다. 그 과정에서 왼손잡이는(사회 전체가 오른손잡이 인류로 구성되었을 때와 비교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쓸데없는 불편한 존재로 낙인찍히는 것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몸의 오른손과 왼손을 돋보기를 통해 사회구조로 확대해보면 어떨까.


오른손은 일반 대중이자 주류에 속하는 집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회의 주축으로 관습과 제도를 만들었고 구성원들에게 지향점을 제시했다. 인류의 발전을 이끌었고 문명의 퇴보를 저지했다.


그에 비해 왼손은 소수자다. 사회적 분포도 때문에 제 목소리를 낼 기회가 별로 없었고 혹여 낸다고 한들 싸늘한 냉담만 되돌아올 뿐이다. 성소수자, 낙태 옹호자, 프롤레타리아, 종교적 이단자, 이데올로기적으로 낙인찍힌 자 등이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왼손들이다.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왼손들의 처지는 그리 녹록지 않다. 많이 개선되었다고 판단하는 오른손과 늘상 부자유스러움을 느끼는 왼손의 간극 차는 좁히기 쉽지 않다. 누가 누구를 포용해야 할까?




지난 내 삶에서 뚜벅뚜벅 걸어온 오른손의 노고를 잊지 않고 치켜세워줘야겠지만 왼손의 아픔도 보듬어주어야 한다. 왼손의 고통이 그저 치기 어린 투정이 아니라 내 몸의 지체로서 지금껏 내가 별 탈 없이 살아올 수 있도록 버텨 온 마음임을 깨닫고, 따뜻이 안아주어야겠다.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고향별에 두고 온 장미꽃에 대한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후회했다.


“그때 난 아무것도 몰랐어! 꽃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했어야 했는데. 내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 주고, 빛나게 해 주었어. 내 꽃으로부터 도망쳐서는 안 되는 거였어! 가엾은 속임수 뒤에 숨은 다정한 마음을 눈치챘어야 했어. 꽃들은 너무나 모순적이야. 그리고 그때 난 꽃은 사랑하는 법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어.”


그리고 그 연약한 장미꽃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깨닫게 된다.


“너희는(지구별에 와서 본 수천수만 송이 장미꽃) 아름다워. 하지만 의미가 없어. 너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물론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내 꽃을 보고 너희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하지만 나에게는 그 꽃이 너희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소중해.

내가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 바람을 막아 주고, 벌레를 잡아 주었기 때문이야(나비를 위해 두세 마리는 빼놓았지만). 난 그 꽃이 불평하는 소리, 자기 자랑하는 소리, 이따금은 침묵하는 소리까지 들어주었어. 내 장미꽃이니까.”


자꾸 아파오는 왼 손목과 어깨에 불평하지 말고 자주 약을 발라주어야겠다. 내 관심과 애정의 약을 말이다. 그리고 왼손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겠다.


지금처럼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줘. 너의 존재가 내 삶을 더욱 활기차게 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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