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B급 감성(1)

미생과 완생 사이

by 태현
[ 미생 ]

(착수) 텅 빈 바둑판은 요염하게 그 위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흐른다. 외나무다리에 선 승부사들은 묻곤 했다. 그곳 망망대해의 어디에 나의 삶이 존재하는가. 이제 나는 칼을 품고 대해로 나가려 한다. 나는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는가. 두 적수는 무심한 눈빛으로 판을 응시한다.

제1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5국
○백-녜웨이핑 九단(중국) ●흑-조훈현 九단(한국)

- 미생 단행본 1권 중에서 발췌 -


* 원작(만화책)에서는 매 회마다 가장 첫 장면에서 제1회 응씨배 결승5번기 제5국(1989년 9월 5일) 백 九단 녜 웨이핑(聶衛平) VS 흑 九단 조훈현의 대국을 한 수 한 수 묘사하고 있어 당시 대국 장면을 상기할 수 있다. 특히, 기보와 웹툰 내용의 연계성을 탐색해 보는 독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07시 00분.

알람 소리가 ‘띠리리리’ 울렸다.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또 시작된 하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일어났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휴가 냈지.’ 안도의 한숨. 잠자리에 다시 누웠다. 평일인데 하루 연가를 냈다. 사무실 눈치가 보이지만 과감히 냈다. 얼마 전까지는 고심했을 터인데 팀장이 되고 난 후부터는 한결 심적 여유를 부리고 싶다.



07시 10분.

새벽부터 제법 많은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아내는 여느 날처럼 벌써 출근했고 나와 초2년생인 딸만 집에 있다. 지금 이 순간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딸애를 무사히 제시간에 등교시키는 것이다. 딸애는 아직 자고 있다. 다른 시간도 그렇지만 딸애는 잠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그 시간이 무척 힘든 타입이다.


우선은 자고 있는 딸애의 옆에 누워서 일어나야 할 때라는 신호를 보낸다. 다리를 마시지 하면서 잘 잤는지 안부를 묻고 잠시 후에 데리러 오겠다고 말해준다. 아이는 아무 말 없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만 끄덕인다. 그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07시 20분.

거실로 나와 TV를 켜 채널은 EBS1. 볼륨은 12로 조정한다. 바닥에 간이 이불을 편다. 깨우기까지 약 5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때 난 재빨리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다. 방에 가서 이제 일어나야지 하며 아이를 안고 나와 거실 눕히고 이불을 덮어 준다. 일어나서는 항상 춥다고 하니까. 오히려 밤에 잠잘 때는 덥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데 말이다.



07시 25분.

오늘은 출근을 안 하니 한결 여유롭다. 평소에는 시리얼이나 빵 한 조각이나 누룽지를 조금 끓여서 주는데, 오늘은 뭔가 하나를 더 해줄까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면서 딸애를 깨웠다. 워낙 입이 짧은 데다가 아침에는 더더욱 아무것도 먹기를 싫어해서 그 비위를 맞추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오늘도 아이의 울음에 가까운 칭얼거림을 들으며 번쩍 안아 거실을 몇 번 거닐었다. 기분이 좋아진 것을 확인하면 화장실로 데려가 세수를 시킨다.


운수 좋은 날은 딸애 스스로 하기도 하지만 그런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대부분은 내가 딸애 목에 수건을 걸쳐 옷이 젖지 않게 준비한 다음 고양이 세수처럼 물만 살짝 묻혀 문지르는 시늉을 한다. 그것도 얼마나 싫어하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살짝이라도 아프거나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기면 그날 등교시간까지 온갖 고충의 시달림을 익히 경험한 터라 조심해야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그다음 얼굴 로션을 발라줘야 하는데 보습을 위한 화장품의 찐덕거림(?)이 불쾌한 가 보다. ‘모두 널 위한 거야’라는 훈계는 오히려 아이의 화만 돋울 뿐이다. 자신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하라는 아이의 고성만이 돌아올 것이다.


07시 40분.

운명의 시간이다. 아침의 메뉴를 물어야 하는데 뭐라고 말할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 대부분의 대답은 ‘몰라’이다. 그것도 아주 퉁명스럽게. 게다가 오늘은 날씨가 완전 망쳐 놓았다. 아무리 온 집의 전기등을 켜도 흐린 하늘과 세상을 밝힐 수는 없다. 아이의 마음은 이미 회색 먹구름이 장악하고 있다. 나는 재빨리 판단한다. '오늘은 니가 좋아하는 과자에 주스 한 잔 간단히 먹고 가자.' 별 이의가 없는 것을 안도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비 오는 날에 입고 가고 싶은 옷은 무엇일까? 그런 옷이 있기는 할까? 그런 절박한 심정으로 아이와 함께 옷을 고르기 시작한다. 아이가 스스로 원하는 옷을 딱 정해서 입으면 나로서는 얼마나 편할까마는 항상 아빠가 먼저 두, 세 벌의 옷을 맞춰서 진열해주길 원한다. 옷장에는 저렇게도 많은 옷들이 색깔별로, 재질별로 정리되어 있는데 왜 입을 옷이 항상 없다고 할까?


08시 00분.

이젠 아침 요기(療飢)만 해결하고 학교에 가면 되는데 갑자기 아이의 휴대폰이 울린다. 이 아침에 울리는 벨소리, 뭔가 심상치 않다. 아이도 그리 생각하는지 나와 눈을 맞춘 후 휴대폰을 들고 자기 방으로 황급히 뛰어 들어간다. 철저히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나를 보고 자라서인지 본인도 전화는 당연히 방에서 받는 걸로 생각한다.


곧 식탁으로 돌아와서는 빨리 가야 한다고 서두른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알 필요 없다는 듯 대답이 없다. 늦었다고 하면서도 비가 오는데 신발을 뭘 신어야 하는지에 그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식탁에 앉아 있던 나는 남긴 음식을 보면서 갑자기 지금까지 참았던 화가 부글부글 올라왔다. 내가 잔소리를 했고 아이가 도리어 소리를 지르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나란 존재가 갑자기 일을 망치는 방해자로 전락했다.




08시 20분.

딸애는 혼자 학교에 갔다. 친구랑 교문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양치도 하는 둥 마는 둥 칫솔을 거실 바닥에 던져 놓고 가버렸다.

초2년생이 혼자 등교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들 보호자와 동행해서 등교하니까. 내 개인적으로는 그 나이에 그 정도 거리를 혼자 등교하는 것은 적극 권장하는 바다.


다만 그 이유가 문제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녀와 무한한 애정을 교감해도 사춘기가 오면 곧 서먹서먹해진다고 하던데 벌써부터 이러면 과연 부녀 사이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오늘도 잔잔한 마음의 호수에 파문이 일었고 그 일렁거림이 가슴속을 후벼 판다.


밥맛도 없어서 그냥 딸애가 남긴 것들을 대충 입에 집어넣고 식탁을 정리한 다음 설거지를 했다. 사실 연가를 쓴 것도 딱히 뭘 해야만 할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뜻하지 않은 일들로 어두워진 내 마음에 따뜻한 위안의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경험상 이럴 땐 아무 책으로나 그 세상으로 도피하는 것이 날 위한 최고의 방책이다.


거실 책장을 살피며 어떤 책을 읽어 볼까 고민해 본다. ‘코스모스’(칼 세이건, 천문학),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인류학)’, ‘결국 이기는 사마의(친타오, 역사학)’, ‘한국의美(오주석, 미학)’, ‘연금술사(파울로 코엘료, 소설)’, 혹은 ‘파운데이션(아이작 아시모프, SF소설)’ 또는 각종 자기 계발서나 인문학 책들... 서로 자기를 쳐다봐 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이 하교시간까지 그리 시간도 많지 않은데 마음만 여유롭다. 그러다 문득 어떤 것을 보고 결심했다. 그 책은 바로 <미생(未生)>


‘미생’은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웬만한 국민이면 다 아는 만화책(드라마)이다. 처음엔 웹툰으로 시작했고 그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미생 신드롬’으로 이어진 인기는 결국 어느 방송사에서 드라마로 제작하였고 그해 최고의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았다.


난 웹툰은 보지 않았다. 그땐 일에 치여 볼 여유가 없었다. 단행본이 나왔을 때 도서관에서 대출해 사무실에서 몰래 보았던 기억이 난다.


비록 대기업 상사맨의 일상을 소재로 하긴 했지만 ‘직장인’이란 측면에서 보면 조직의 일부분으로서 느끼는 비애감과 소외감을 그렸기에 내게도 큰 반향(反響)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가정과 회사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맞벌이들의 모습마저 보여주면서 우리 모두에게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주었다.


제목이기도 한 <미생(未生)>이라는 단어는 ‘장그래(작품 주인공)’가 스스로의 처지를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바둑에서 “미생”이란 ‘한 집뿐이어서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 혹은 그 돌’을 이르는 말인데 두 집을 이루어 집이나 돌이 완전히 살아 있는 상태인 ‘완생(完生)’과 비교되는 표현이다.


<미생>은 인턴사원으로 입사한 장그래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책인데 1권을 펼쳐 보고 있으려니 벌써 눈가에 촉촉한 뜨거움이 느껴졌다. 장그래의 처절함이, 절망감이, 그리고 불안감이 느껴졌다.


그때 나도 그랬었다. 나의 모든 것을 걸었던 곳에서 배척당하는 기분, 대안 없이 절벽 밑으로 던져지는 그 운명에 무력하게 무릎 꿇어야 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수도 없이 세상에 질문했지만 야속하게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어둠. 나는 그곳에서 숨 쉴 힘도 없었다.


장그래의 마음은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열심히 안 해서인 걸로 생각하겠다. 기재가 부족하다거나 운이 없어 매번 반집 차 패배를 기록했다는 의견은 사양이다. 바둑과 알바를 겸한 때문도 아니다. 용돈을 못 주는 부모라서가 아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자리에 누우셔서가 아니다. 그럼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 난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편이어야 한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온 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 윤태호, 「미생」 1권, 위즈덤하우스, 2013, pp.24~27. -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본다. 내 인생에서 잃어버린 두 개의 바둑돌. 그 둘이 살아 있었다면 나도 완생이었을 텐데, 결국 나도 미생이다. 부족함을 아무리 채워도, 내 밥그릇의 그 고봉을 넘치도록 채워도 내 맘의 상실감을 감출 수가 없다.




12시 15분.

비가 그쳤다. 아이의 귀가를 도우러 학교에 갔다. 오늘은 4교시만 있는 요일이라 조금 일찍 끝난다. 분명 수업 끝나고 학교 옆에 있는 공원에서 학우들과 놀다 갈 것이다. 남자 친구 3명, 여자 친구 4명 정도 방황하는 청춘들과 한 시간은 버티다 가겠지.


그 친구들은 모두 엄마가 오는데 우리 애만 아빠가 왔다. 아이들과는 자주 봐 온 터라 이름도 부르고 인사도 하지만 그들의 엄마들과 대화는 쉽지 않다. 그냥 지나가면서 보내는 눈인사. 오늘도 나는 친구 엄마들과 가볍게 목례를 하고 공원 맨 끝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신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그러나 신중이 지나치면 ‘소심’이 되는 법, 그게 항시 두렵다. 허나 어디까지가 신중이고 어디까지가 소심인가.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성공하면 신중이 되고 실패하면 소심이 될 뿐이다

무엇이 용기이고 무엇이 만용인가, 그 둘도 역시 백지 한 장 차이다.

- 윤태호, 앞의 책 3권, 2013, p.119. -



13시 45분.

이제 아이 학원 갈 시간이다. 그만 놀고 가자고 말해야 하는데 조심스럽다. 아이의 심기를 건들고 싶지 않다. 오늘따라 친구들이 더 놀다 간다고 하니 딸애의 표정은 바로 일그러진다. 난처한 상황이다. 어떤 결단이 필요하다고 ‘긴장(緊張)세포’(웹툰 ‘유미의 세포들’에 나옴직한 세포.)가 뇌 속에서 경고등을 울린다.


결국 아이와 타협했다. 미술학원은 20분 늦게 가는 것으로, 대신 20분이 지났음에도 친구들이 계속 놀게 된다면 그땐 학원에 그냥 가기로 약속했다.


다행히 친구들 엄마들도 14시가 가까워지자 아이들을 부르며 집인지, 학원인지 어디론가 제 갈 길을 재촉했다.


딸애를 학원에 보내고 나는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난장판이지만 우리 집 거실이 이렇게 안락할 줄이야...

- 비 오는 날 B급 감성(2)에서 계속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