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Aug 23. 2022

책들의 꿈꾸는 여행(2)-하

제국의 쇠망사를 보며

'책들의 꿈꾸는 여행(2)-상'에서 계속


  이렇듯 깊은 성찰을 주는 두 책에 영감을 주었다는 <로마제국 쇠망사>가 궁금했다. 지구상에 있었던 제국이 셀 수 없이 많았을 텐데 왜 하필 로마제국일까? 서양인의 주관적 선입견일까? 무엇이 허버트와 아시모프에게 이렇듯 대작을 쓰게 만들었을까? 어떤 점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낳았을까? 무수히 많은 물음표를 들고 나는 책 속으로 들어갔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1770년부터 1788년에 걸쳐 집필한 역사서이다. 로마제국 최전성기를 이끈 오현제(五賢帝) 이후 콤모두스 황제 즉위부터 로마가 쇠퇴하는 과정과 함께, 서로마 제국의 멸망,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전사하며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시기(서기 1456년)까지를 다룬 책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초기 로마제국은 수많은 국가 중 가장 개방적이고 융성했으며 고전 지중해와 북유럽 세계의 보편 문화권을 이루었다. 많은 문화유산으로 후대에 선한 영향을 주었고, 특히 로마 제국의 건축, 법, 정치체제 등은 후에 서구 세계의 밑바탕이 되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로마의 콜로세움


  로마의 두드러짐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종교」(다신교/ 타 종교에 대한 관용), 「정치체제」(집정관, 원로원, 민회/ 왕정, 귀족정, 공화정을 모두 아우르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정치형태), 「생활방식」(정복지까지 포용하여 동화시키는 포용성, 애국심과 공적 미덕에 기초한 용맹, 자유정신)이 그것이다. 예로부터 전해 오는 명성과 엄격하게 훈련된 용맹으로 제국의 외부를 지키고, 법과 관습의 온건하지만 강력한 영향력은 점진적으로 모든 속주를 하나로 결속시켰다.


  요약하자면 로마인의 ‘개방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민족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더라도 다른 상대(정복된 이들)를 포용하고 자신에게 동화시켜 버리는 로마인들의 합리성이 지금까지 지구라는 행성에 있었던 모든 제국 중에서 가장 긴 기간(약 2,000여 년)에, 가장 많은 물질적, 정신적 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 유산을 발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행운아들(서유럽과 그 후손들, 서로마제국 입장에서는 패망의 상대였지만)은 근대를 거쳐 현재까지도 인류 문명을 이끌고 있다.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그거라면 공짜로 베끼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 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프랑스와 미국이 재빨리 영국의 발자국을 뒤따랐던 것은 가장 중요한 신화와 사회구조를 이미 영국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은 사회에 관한 생각과 사회의 조작 방식이 달랐던 탓에 그렇게 빨리 따라잡을 수 없었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9, p. 399. -


  그러나 오랜 평화와 풍요는 인간의 속성상 나태와 타락으로 제국을 덮쳤고 이전의 장점들이 쇠퇴해지자 로마도 쇠락과 멸망의 길을 따르게 된다. 이 책이 내게 보여준 건 영원할 것 같이 계속되는 황제의 타락과 사치, 관료나 장군들의 탐욕과 배신, 국민의 나태와 향락이었다. 


  그로 인해 약해져 가는 제국은 이민족들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고, 비록 물리쳤더라도 이미 로마라는 큰 거인의 기상은 사라지고 점점 작아져 퇴보하여 난쟁이로 변해가는 긴 미사여구일 뿐이었다.


  로마의 쇠퇴는 무절제한 팽창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였다. 번영이 쇠퇴의 원칙을 잉태시켰고, 정복이 진행될수록 파멸의 원인도 급격히 증가했다. (중략)

  우리는 로마제국이 왜 멸망했는지를 묻는 대신 오히려 어떻게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었는지 놀라워해야 할 것이다. (중략)

  로마의 쇠망은 흔히 제국의 수도를 옮긴 탓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이미 밝힌 것처럼 정복의 권력은 이전된 것이 아니라 분할된 것이다. (중략)

  내세에서의 행복이 종교의 중요 목적이므로, 그리스도교의 도입이나 적어도 그 오용이 로마 제국의 쇠망에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별로 놀라거나 근거 없는 중상이라고 분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3」, 믿음사, 2021, pp. 545-546(발췌 참조). -


  지루해졌다. 인간의 피와 눈물과 절규가 데자뷔처럼 책 속에 영원히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을 더 보고 느껴야 하는 건지, 인간의 본성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까? 그런 감정의 사춘기쯤을 겪으면서 잠시 이 책을 놓았다.


  한동안 말랑말랑한 산문집이나 따뜻한 단편집으로 머리를 식혀야 했다. 우연히 읽게 된 ‘나쓰메 소세키(소설가, 영문학자, 비평가. 일본 최초의 근대 문학가이자 메이지 시대의 대문호)'의 단편집은 평소 접하지 못했던 일본식의 담백한 필체로 나를 달래주었다.




  쇠망사를 접하면서 느끼는 인간에 대한 절망적 감정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빨리 이 책을 끝내고 <반지의 제왕>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한시도 놓아주지 않았다. 다시 시작된 쇠망사 탐험은 이제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지나 콘스탄티노플(동로마제국)이 맞는 위기로 이어졌다.


  동로마 제국이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쇠하고 교회가 파벌로 어지러운 동안, 사막에서 마호메트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을 들고 그리스도교와 로마의 폐허 위에 자신의 왕좌를 세웠다. 주변 정세의 변화와 더불어 이루어진 십자군원정은 지상의 천국을 구하기보다는 인간의 탐욕과 악덕을 하늘에 고해하는 꼴이 되었다. 동로마제국도 앞선 이유들과 판박이처럼 비슷한 과정을 거쳐 멸망하고 말았다. 그 점이 핵심이라고 생각되었다.


  기번이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쓰지 않고 ‘쇠망사’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등 어느 존재나 흥망성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점은 쇠락의 시기가 가장 찬란하게 빛날 때 이미 시작됨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번이 이 책을 썼을 때가 바로 대영제국이 크라운(Crown)을 막 잡으려 할 시점이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이 나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아쉬움이 아시모프와 허버트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봉우리만이 남았다. 막 지난 준봉이 워낙 가파르고 거칠었기에 이번 봉우리도 높고 험준하지만 이미 콧노래가 나왔다. 벌써 산속 새소리부터가 다르다. 신비하면서도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는 노랫소리.




  <파운데이션>과 <듄>이 각각 「SF」 소설의 바이블이자 고전이라면,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소설의 바이블․고전으로 평가받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1년까지 총 1억 권 이상이 판매되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J.R.R. 톨킨’은 이 작품으로 20세기 판타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크게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치밀한 소설적 상상력과 섬세하고 탁월한 언어적 감수성을 통해 현대 영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서구의 대학가에서는 톨킨의 세미나와 심포지엄이 개최되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얻었다고 한다.


  방대한 판타지 세계관을 토대로 정교한 신화를 구축해낸 톨킨의 역작 <반지의 제왕>의 시작은 다소 평범했다. 1937년, 아들에게 들려주던 작은 이야기들을 엮은 <호빗(Hobbt)>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출판사에서 후속작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다. 톨킨은 별생각 없이 ‘반지를 돌려주는 여행을 떠나면 되겠네’라며 가볍게 여겼다고 한다.


  <호빗>에서 주인공 ‘빌보 배긴스’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야 했기에, 톨킨은 반지를 돌려줄 인물로 다른 호빗을 내세웠다. <호빗>의 시작이 “호빗이 무엇이지?”라는 질문이었다면, <반지의 제왕>은 “반지를 왜 돌려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럴싸한 답변을 고민하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 소설은 톨킨이 <실마릴리온(Silmarillion)>으로 알려진 신화 연대기 <잃어버린 이야기들(The book of Lost Tales)>을 집필하면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것이다.



  즉 민간에 전승되는 유럽의 옛 설화를 바탕으로 「가운데 땅(The Middle Earth)」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신화적인 전쟁과 이 전쟁을 이끌어가는 호빗족의 영웅 ‘프로도 배긴스’의 영웅담을 그린 장대한 규모의 작품이다


  *톨킨의 역작에 깊은 이해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 영화를 통해 <반지의 제왕>, <호빗>, 그리고 이번에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입소문을 타는 <실마릴리온> 순으로 작품을 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순이나 전체 세계관을 파악하고 진정한 서사를 보고자 하는 분에게는 원작인 <실마릴리온>, <호빗>, <반지의 제왕> 순으로 읽어 보길 추천한다


  <호빗>이 비교적 밝은 분위기의 가벼운 판타지라면 <반지의 제왕>은 좀 더 본격적이고 진지하며 심각한 서사시적 로맨스이다. 이 작품에는 난쟁이, 요정, 마법사, 악령 등 판타지 소설의 필수적 요소와 함께 우리 인간과 실제 사회가 제시됨으로써 작가의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얼핏 <반지의 제왕>이 현실과 무관한 황당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톨킨이 창조한 가운데 땅이라는 세계는 경이로우면서도 낯설지 않고 이상하면서도 기괴하지 않은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이 작품이 제1~2차 세계대전 이후에 출판된 시기도 의미심장하고 기본적으로 선과 악의 대결구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우론’이라는 악마와 그가 만든 절대반지가 표상하는 악의 본질이란 타인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키려는 끊임없는 지배욕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작품 속 메시지이다.


 

지상의 요정 왕들에겐 세 개의 반지,
돌집의 난쟁이 왕들에겐 일곱 개의 반지,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겐 아홉 개의 반지,
어둠의 권좌에 앉은 암흑의 군주에겐 절대반지,
어둠만 살아 쉼 쉬는 모르도르에서.

- J.R.R.Tolkien, 「실마릴리온」, arte, 2022, p. 32. -


  *절대반지는 다른 모든 반지의 힘을 함께 보유하면서 다른 반지를 통제할 수 있어서, 절대반지를 끼는 사람은 하위의 반지를 사용하는 이들의 생각을 읽고 그들의 행동을 지배하며 종국에는 그들을 완전히 노예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이 전 세계적으로 무수한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끊임없이 읽히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상상력으로 창조한 판타지의 세계가 주는 매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톨킨은 무려 수만 년의 역사를 창조, 구성하고 그 속에서 다양한 종족들과 인물들의 계보를 치밀하게 설정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관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장대한 역사의 공간인 ‘가운데 땅’이라는 세계는 초자연적인 마법과 스릴이 넘치는 모험, 그리고 따스한 저녁식사와 우정, 순수, 희생, 사랑이 공존하는 인간적인 곳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접하는 하늘과 바다, 태양과 대지,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모든 것 즉 나무, 새, 물, 들, 포도주, 빵 등이 자연스럽게 배경을 이루는 곳이다. 호빗으로 대표되는 평범한 이들이 웅대한 세계의 격동에서 갖는 가치를 그리고 있으며, 소박한 삶의 중요성은 ‘선과 악’에 대한 성찰적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지금까지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신(종교, 마법)이라는 타자에 의지하며 살았다. 아니 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맡겨버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젠 그 책임 회피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타조가 땅속에 머리를 처박았다고 해서 피하고 싶은 현실이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머지않아(생각보다는 빨리) 앞에서 살펴본 <파운데이션>, <듄>, <반지의 제왕>과 다소 유사하거나 때로는 더욱 당혹스러운 세상을 현실로 마주할 개연성이 높다.


  지금은 알지 못하는, 점점 커져가는 우리의 힘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활용할지 모른 채 아무런 합의도 없이, 옛 미소 냉전시대의 군비경쟁 마냥 앞으로만 가고 있다. 나는 앞선 「꿈꾸는 책들의 여행(1)」에서 ‘유발 하라리’가 농업혁명에 대해 “몇몇 곡물이 친 덫에 인간이 걸린 격”이라는 표현을 인용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인간들은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치명적인 계산 오류를 범했을까?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중략)

그렇다면 왜 계획이 빗나갔을 때 농경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사회를 바꾸는 데는 여러 세대가 걸리고, 그때쯤이면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것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중략)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9, pp. 133-135(발췌 인용). -


  초 과학기술로, 또는 유전자 교배와 특수한 훈련을 통해, 혹은 마법이라는 신의 선물로, 아니면 제국(황제)이라는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서 전 인류를 구원해야 할 운명의 짐이자 권한이 누군가(우리)에게 주어지거나 아니면 스스로 찾아냈을 때, 그는 그 어려운(유혹적인) 숙제를 풀어낼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그 숙제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라는 데 거의 일치된 의견을 피력한다. <로마제국 쇠망사>가 그 실증적 근거가 아닌가?


  <듄>의 저자 허버트는 이런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슈퍼 히어로는 인류에게 재앙이다. 이런 나의 지론에서 <듄>이 만들어졌다. 설사 진정한 영웅이 있다손 치더라도 결국에는 오류투성이의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며 권력구조를 장악해버린다. 영웅의 실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재앙에 빠뜨린다. ‘퀴사츠 해더락’과 같은 초인적인 존재가 인류에게 미치는 힘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위험한 신의 영역이다. 한낱 인간 하나가 통제하고 감당할 수 없다."


  그 이유가 인간의 본성 때문인지, 신의 의도인지, 아니면 우주 대폭발(빅뱅) 때 이미 그리 되도록 정해진 우주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이그노라무스)'라는 전제하에 '우리는 제어할 수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될 수 있다'라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윤리적이면서 생명 우호적인 서로 간의 합의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일지 모를 시기에(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 내에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라고 희망한다. 그러나 그건 그 사람들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자신의 모습에서, 환경에서, 제도에서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땐 너무 늦었음을 탄식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편리함이 세속적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도, 뛰어내릴 용기도 가질 수 없도록 우리를 몰아붙일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그 무엇이!


  그렇다손 치더라도 저 멀리 먹구름만 보고 비가 올 거라 예상하여 나가지도 않은 채 집안에서 문을 닫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소중한 순간을 허비하는 또 다른 우(愚)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 속에서 나에겐 오히려 아시모프의 열정(변명)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인터뷰) 아닌가?


“저는 일반 사람들보다 더 이상주의자는 아니에요. 제가 하는 말은 인간들이 서로를 정말 사랑해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만약 인간에게 일말의 제정신이 있다면, 손 놓고 무기력하게 있을 때 초래될 결과를 두려워할 정도의 제정신이 있다면 뭔가를 할 거란 얘기죠. 인류가 살아남는다면 그건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라는 겁니다. 뒷짐 지고 앉아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 수는 없어요.”


  드디어 끝냈다. 목표했을 때의 기대와 걱정이 이젠 허탈과 평안으로 바뀌었다. 한동안은 나에게도 안식의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들의 꿈꾸는 여행(2)-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