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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Sep 13. 2022

최후의 승자는 누구?

역사 속 인성

  사람들은 모두 사마의가 야심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마의는 길게 탄식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게 걱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뭔가 바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구나!’(중략)

  궁의 대신들은 사마의가 승상직을 사양하는 것을 보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백관보다 높은 직위에 있고, 천하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충성심으로 어린 군주를 도왔다. 그렇다면 그가 '조상' 집단을 주살했을 때 썼던 독하고 악랄한 수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략)

  사마의가 조정에서 수십 년 간 있으면서 불패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엄청난 인내력과 신중한 태도 덕분이었다. 그는 역사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스스로 해야 하는 일과 자손이 하도록 남겨둘 수밖에 없는 일, 자손을 대신해 길을 만들어줄 수 있는 일과 길조차 깔아주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중략)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누구나 다 열심히 하지만 끝까지 계속해서 잘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 친타오, 「결국 이기는 사마의」, 더봄, 2021, pp. 529-532.




  나도 또래 친구들처럼 중국 역사소설을 즐겨 읽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면서 <손자병법>,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수호지> 정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많이 읽고 재미있게 보았던 책은 역시나 ≪삼국지≫였다.

 

 ‘아니, 도대체 삼국지가 뭐길래,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자꾸 삼국지, 삼국지 하는 걸까?’ 혹 누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냥 한 번 읽어 봐!”




  누가 제갈량의 무용담을 꺼내기라도 하면 서로 달려들어 밤새 떠들어도 끝나지 않을 만큼 할 얘기들이 많았다. 유비, 관우, 장비가 맺은 ‘도원결의’에서부터, 동탁을 토벌하기 위한 18로 제후 연합군의 ‘조조’, 적토마의 ‘여포’와 그의 구애를 이간계한 ‘초선’, 장판교의 ‘장비’, 조조를 뿌리치고 유비를 찾아 나서는 ‘관우’, 유비의 적장자 유선을 구한 ‘조운’, 적벽대전 동남풍의 ‘제갈량’과 불우의 아이콘 ‘주휴’ 등 수많은 인물과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내 경험상 삼국지를 보는 관전 포인트는 독서 횟수와 나이에 따라 차이가 났던 것 같다. 삼국지를 처음 접했을 땐, 유비, 관우, 장비에 마음을 뺏겨 조조의 '자만'과 손권의 '신의 없음'에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각 장수들의 능력(주로 무력) 치에 대해 나만의 분석 결과를 설명하면서 친구들과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열을 올렸던 것 같다(당시 난 관우가 삼국지 세계관에서 거의 신과 같은 존재라 생각했었다).


  두세 번 읽었을 땐 제갈량의 귀신같은 계책을 실제 중국 지형과 대조하면서 따져보기도 했다. 한중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자오곡은 정말 천혜의 요새였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난세의 영웅이자 천하의 간웅’이라고 욕하던 조조의 뒷모습에 왠지 측은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제갈량과의 정정당당한 전투를 피하고 수비만 했던 겁쟁이이자 권모술수의 사마의가 사실은 삼국지라는 대장정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삼국지 관련 중국 드라마도 트렌드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듯하다. 2010년에 제작된 중국 드라마 「삼국지」 는 기존과 같이 촉한 정통론에 입각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기본 줄거리로 삼아 당시 돈 250억 원을 들여 초호화 캐스팅으로 제작되면서 화제를 낳았다.


  그러다가 조조를 재조명한(거의 ‘평전’에 가까운) 드라마인 「조조: 제왕을 꿈꾼 남자」가 2014년에 방영되었다. 최근인 2017년에는 사마의의 일생을 그린 「사마의: 미완의 책사」와 그 속편인 「사마의: 최후의 승자」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방송을 탔다. 그 인기에 힘입어 삼국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요 몇 년간 ‘사마의’에 대한 삼국지 마니아들의 집중 러브콜은 당사자인 사마의조차 어리둥절하지 않을까? 한때 사람들은 제갈량이 보낸 ‘여인의 옷과 장신구’를 보고도 싸움에 응하지 않은 그를 겁쟁이라 비난했었다.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쫓았다”라고 노래를 부르며 욕했던 이들이 사마의에게서 교훈을 얻자고 그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 보고 있다.




  얼마 전 다시 읽은 <결국 이기는 사마의>라는 책도 비슷한 취지에서 출간되었다. 



  조조를 철저히 속이고 제갈량을 죽음에 이르게 하여,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 사마의의 인생과 처세술!(책의 뒷 커버 페이지에 적힌 문구이다).


  이 책은 사마의의, 사마의에 의한, 사마의를 위한 책이다. 사마의를 제목으로 내세워놓고 실상은 사마의 대신 제갈량이나 조조 이야기를 하는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략)

  사마의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던 사람들, <삼국지>에 국한되지 않고 정사나 기타 사료를 반영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책이다.


  저자 '친타오'는 책의 곳곳에서 사마의에 대해 기존의 평가에서 벗어나 사료에 근거해 공평무사하게 내놓으려 노력한 흔적을 보여 주었다.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 준 문장들 중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을 책 인용으로 대신하려 한다.


  모사(謀士)란 젊음을 무기로 하는 직업이었다. 젊은 모사는 넘치는 정력과 지력으로 빈틈없고 신묘한 계책을 낼 수 있다. 반면, 나이 든 모사는 경험과 신중함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일반적인 모사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사마의는 달랐다. 사마의의 인생은 ‘수렴’하는 방식이었다. 사마의는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경험과 교훈을 차곡차곡 모았다. 눈덩이를 굴리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험과 교훈이 쌓이게 된 것이다.


  사마의의 성격과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독서 범위와 관심사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오경’ 중에서 사마의가 즐겨 읽은 책을 추측해보자면 <역경>과 <춘추>를 꼽을 수 있겠다. (중략) 사마의는 “현명한 사람이면 기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 경솔하게 움직이거나, 기회가 눈앞에 왔을 때와 가만히 있을 때를 놓치면 안 된다”라고 조조에게 간언 했다. (중략) 만년에 그는 자녀들에게 훈계했다. “가득 차는 것은 도가에서 꺼리는 바이다.” 사마의의 인생을 쭉 관찰해 보면 그의 도가적 권모술수와 기개를 엿볼 수 있다.


  ‘간언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지만 주군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내 모습을 보여주고 내 능력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계속해서 간언 한다면 주군은 분명 언짢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것이 첫째다. (중략) 간언 할 줄만 알면 평생 탁월한 모사밖에 될 수 없다. 간언 하지 않는 현묘함을 알아야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걱정이 사라진다.


  사마의가 보기에 '유엽'의 진짜 문제는 나라의 이익을 도모할 줄만 알고 스스로를 도모할 줄 모르는 데 있었다.(중략) 유엽은 뛰어난 예지 능력만 믿고 사사로운 인간관계나 정치적 투기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네 하나만 똑똑한 사람이고 우리는 모두 바보란 말인가? 우린 억지로라도 자네 말을 듣지 않겠네!’


  사마의만 놓고 보았을 때는 능력 면에서 확실히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그는 지략이 뛰어나고 군사를 다루는 데 능했고, 은인(隱忍)과 도광양회(韜光養晦)가 특기였다. 정치 투쟁을 파악하는 능력은 한나라 말기 삼국을 통틀어 따를 자가 없었다.


  마의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인생에서 매 수를 정성스럽게 두었기 때문에 거의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와 대치하고 음으로 양으로 맞대결을 펼친 적수로는 조조, 제갈량, 조상, 맹달, 공손연, 왕릉 등이 있었다. 하나같이 당대의 준걸이었지만 사마의는 이들 중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최근의 나도 사마의에게 하트를 날려 주었다. 정치적 도의니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니 시대적 요구니 아무리 부르짖어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 그 위업은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은가? 덧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고매한 인물보다는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아 제 뜻을 펼친 “결국 이기는 사마의”가 진정한 영웅이 아닌가?




  날 포함해서 세상인심이 점점 박해져 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도덕적 기풍이라는 말은 그 이미지를 찾기도 힘들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지금 디디고 있는 이 자리를 보전하며 버티는 게, 내 가치관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대정신이라도 거스르면 내게 상처가 나기에 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찌 보면 비겁하고 달리 보면 현명하다.


  그러함에도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역사 속 인성"이라는 부제로 독자들에게 한 마디 던진다. 책의 내용을 좇아 쭉 따라왔는데 돌연 가던 길 방향을 살짝 틀어버린 저자의 변심에 당혹스러우면서도 그 마음이 새삼 고맙다.


  삼국지를 또다시 읽어봐야겠다.


  사마의는 아무런 사상적 준비도 없이 이 난세의 한가운데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영혼을 포기할지 생명을 포기할지 선택해야 하는 잔혹한 상황을 직시하고, 먹느냐 먹히느냐의 피비린내 나는 갈림길을 마주해야 했다.

  이 운명의 갈림길에서 삼국시대의 가장 뛰어났던 두 인물, 사마의와 제갈량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제갈량은 평생 사회의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정도(正道)를 걷기 위해 힘쓰고 공덕을 우선했지만,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천추의 한을 남겼다.

  사마의는 평생 시대의 흐름에 순응했다. 권모술수로 살길을 모색하고 사덕으로 입신했다. 개인적인 사업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었고, 자손들을 위해 대진 강산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역사를 길게 늘여보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은 생전에 실패했지만 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고, 사마의는 생전에 성공했지만 후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실패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 둘의 어떤 점이 성패를 갈랐을까?  
  
  이것이 바로 '역사 속 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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