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성
사람들은 모두 사마의가 야심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마의는 길게 탄식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게 걱정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뭔가 바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구나!’(중략)
궁의 대신들은 사마의가 승상직을 사양하는 것을 보고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백관보다 높은 직위에 있고, 천하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충성심으로 어린 군주를 도왔다. 그렇다면 그가 '조상' 집단을 주살했을 때 썼던 독하고 악랄한 수단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략)
사마의가 조정에서 수십 년 간 있으면서 불패하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엄청난 인내력과 신중한 태도 덕분이었다. 그는 역사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스스로 해야 하는 일과 자손이 하도록 남겨둘 수밖에 없는 일, 자손을 대신해 길을 만들어줄 수 있는 일과 길조차 깔아주면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중략)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누구나 다 열심히 하지만 끝까지 계속해서 잘하는 사람은 적었다. 그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 책은 사마의의, 사마의에 의한, 사마의를 위한 책이다. 사마의를 제목으로 내세워놓고 실상은 사마의 대신 제갈량이나 조조 이야기를 하는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중략)
사마의라는 인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었던 사람들, <삼국지>에 국한되지 않고 정사나 기타 사료를 반영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책이다.
모사(謀士)란 젊음을 무기로 하는 직업이었다. 젊은 모사는 넘치는 정력과 지력으로 빈틈없고 신묘한 계책을 낼 수 있다. 반면, 나이 든 모사는 경험과 신중함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일반적인 모사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사마의는 달랐다. 사마의의 인생은 ‘수렴’하는 방식이었다. 사마의는 70 평생을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의 경험과 교훈을 차곡차곡 모았다. 눈덩이를 굴리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험과 교훈이 쌓이게 된 것이다.
사마의의 성격과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독서 범위와 관심사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오경’ 중에서 사마의가 즐겨 읽은 책을 추측해보자면 <역경>과 <춘추>를 꼽을 수 있겠다. (중략) 사마의는 “현명한 사람이면 기회가 무르익지 않았을 때 경솔하게 움직이거나, 기회가 눈앞에 왔을 때와 가만히 있을 때를 놓치면 안 된다”라고 조조에게 간언 했다. (중략) 만년에 그는 자녀들에게 훈계했다. “가득 차는 것은 도가에서 꺼리는 바이다.” 사마의의 인생을 쭉 관찰해 보면 그의 도가적 권모술수와 기개를 엿볼 수 있다.
‘간언 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지만 주군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 내 모습을 보여주고 내 능력을 드러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계속해서 간언 한다면 주군은 분명 언짢은 마음이 들 것이다. 이것이 첫째다. (중략) 간언 할 줄만 알면 평생 탁월한 모사밖에 될 수 없다. 간언 하지 않는 현묘함을 알아야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걱정이 사라진다.
사마의가 보기에 '유엽'의 진짜 문제는 나라의 이익을 도모할 줄만 알고 스스로를 도모할 줄 모르는 데 있었다.(중략) 유엽은 뛰어난 예지 능력만 믿고 사사로운 인간관계나 정치적 투기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네 하나만 똑똑한 사람이고 우리는 모두 바보란 말인가? 우린 억지로라도 자네 말을 듣지 않겠네!’
사마의는 아무런 사상적 준비도 없이 이 난세의 한가운데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영혼을 포기할지 생명을 포기할지 선택해야 하는 잔혹한 상황을 직시하고, 먹느냐 먹히느냐의 피비린내 나는 갈림길을 마주해야 했다.
이 운명의 갈림길에서 삼국시대의 가장 뛰어났던 두 인물, 사마의와 제갈량은 서로 다른 선택을 했다.
제갈량은 평생 사회의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다. 정도(正道)를 걷기 위해 힘쓰고 공덕을 우선했지만,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천추의 한을 남겼다.
사마의는 평생 시대의 흐름에 순응했다. 권모술수로 살길을 모색하고 사덕으로 입신했다. 개인적인 사업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었고, 자손들을 위해 대진 강산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역사를 길게 늘여보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갈량은 생전에 실패했지만 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고, 사마의는 생전에 성공했지만 후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실패했다는 것을 말이다. 이 둘의 어떤 점이 성패를 갈랐을까?
이것이 바로 '역사 속 인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