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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Sep 21. 2022

그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람? 유령?

  우연히 보게 되었다. 평소 관심 분야도 아니어서 원픽(One pick)할 개연성도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다가 어느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내가 미처 판단하기도 전에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재미있을 것 같다며 클릭을 하고 들어갔다.


  브로드웨이 최장 공연 ‘오페라의 유령’, 35년 만에 막 내린다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오랜 기간 공연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내년 2월 막을 내린다.
  9월 16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는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오페라의 유령’이 내년 1월 35주년 기념 공연을 마친 뒤다. NYT는 “(이 작품이) 영원히 브로드웨이의 풍경의 일부일 것처럼 여겨졌다.”라고 평했다.
  
  이번 결정은 공연계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탓이 크다.(후략)


 - 2022. 9.18일모 일간지 기사 중 일부 인용




  내 문화적 소양이 그리 대단치 않아 뮤지컬이나 오페라 같은 공연은 거의 가보지 못했다. 어깨너머로 ‘캣츠’나 ‘시카고’, ‘위키드’,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등의 풍문을 들었고, 공연 실황이나 영화를 통해 살짝 느낌만 맛보았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이쪽에 관심도 많고 결혼 전에는 공연장도 자주 갔었다고 하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공연 보러 가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워낙 티켓 값이 비싸다 보니 마음 약한 아내가 선뜻 보러 가지 못했나 보다. 내가 적극 호응했으면 좀 더 관람했을 텐데 좀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다음에 그런 계기가 생기면 같이 가자고 말해야겠다.


  오페라에 대해 잘 모르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에 갑자기 빠져 든 이유는 아마도 오페라의 원작인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 생각나서일 것이다. 



  책 뒤 커버지에 쓰인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는 다음과 같다.  


  「오페라의 유령」은 파리 오페라 극장을 배경으로 시종일관 공포, 불안, 긴장감, 신비, 마법, 의문,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전형적인 추리 소설이자, 순수하고 아름다운 크리스틴(여주인공)을 두고 흉측한 괴물과 라울 샤니 자작이 사랑을 다투는 흥미진진한 연애 소설이다.

  호기심, 긴장감, 박진감, 치밀한 구성 등 추리 소설의 진수를 보여 주는 이 작품이 지금까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소외, 증오, 질투, 연민, 사랑, 희생, 화해 등 인생의 본질적인 주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가스통 르루’는 ‘머리말’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렇게 소설을 시작한다.


  이 독특한 이야기를 쓴 작가는 독자 여러분에게 오페라의 유령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확신한 경위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오페라의 유령은 실제로 존재했다......


  마치 자신도 다른 이가 쓴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처럼 전개 방식을 꾸몄다. 참 재미있는 구성이다. 이런 걸 ‘액자식 구성’이라고 했던가?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것 같은데 자신은 없다.


  작자는 기자 출신답게 간결하고 명쾌하며 박진감 넘치는 기사체로 치밀하고 정교하게 작품을 구성하는 프랑스 최고 추리 소설가이자 극작가이며 시나리오 작가였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의 유령」은 나중에 뮤지컬,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어 재생산되고 더욱 유명해졌다. 영국의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지난 1986년 10월 런던에서 초연된 이래 파리, 뉴욕, 시드니, 토론토 등 19개 국 100여 개 도시에서 성황리에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12월에 LG 아트 센터에서 막을 올린 적이 있다고 한다.



  영화 <오페라의 유령>은 1925년 유니버설 사에서 최초로 흑백 무성 영화로 제작했고, 1936년 영국의 해머 스튜디오에서 다시 만들었으며, 1987년에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영화는 20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석공 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에릭(‘오페라의 유령’으로 불린다.) 끔찍한 외모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어머니조차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가장 먼저 가면을 선물로 주었을 정도였다.


  해골 같은 얼굴, 눈동자 없이 휑하니 뚫린 두 눈, 코, 입, 그 네 개의 까만 구멍에서 뿜어 나오는 분노와 광기, 밤에만 이글거리는 눈빛, 입술 없는 입, 죽은 살, 앙상하고 축축한 손에서 나는 죽음의 냄새, 시체 안치소처럼 불길하고 음산한 그의 거처, 침실로 이용하는 망자의 관, 심지어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괴물인 에릭은 살아 움직이는 시체에 불과했다.


  부모, 가족,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에릭은 인간에 대한 어떤 의무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어떤 범행을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괴물은 아니었다. 


  신의 피조물들 중 가장 완벽하고 가장 아름다운 제1 천사였던 루시퍼가 신에게 도전했다가 지옥의 왕으로 전락한 악마였던 것처럼, 에릭은 초인적인 재능을 소유한 괴물이었다.


  음악 천사처럼 웅장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를 지닌 천재적인 음악가, 프랑스의 전설적인 마술사인 로베르 우댕을 능가하는 마술사, 뚜껑 문과 고문실 같은 괴기스러운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비상한 발명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복화술사까지.


  에릭은 어린 나이에 가출한 이래, 유랑극단에 들어가 전 유럽을 떠돌았고 페르시아로 넘어가 권력자들의 수하에서 동류 인간을 괴롭히고 고문하며 죽이는 일에 몰두한다.


  모험(?)으로 가득 찬 기구한 자신의 인생에 너무 지친 에릭은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 보통 건축가가 되어 파리 오페라 극장의 몇몇 공사를 따내고는 그 속에서 자신의 지하 소굴을 마련하고 오페라 극장을 악마처럼 지배한다.



  역설적이게도 에릭의 꿈은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평범한 삶이다. 일상의 행복과 가족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보통의 창문과 문이 달린 조용한 집에서 사랑스러운 여인과 함께 살고 일요일마다 같이 산책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던 중 에릭은 공연장에서 자신의 이상형인 순수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금발 여인(크리스틴)을 발견하자 사랑에 빠지고 갈망한다. 그는 자신의 흉측한 몰골을 감추고 천사의 음성처럼 감미로운 목소리로 크리스틴을 매료시켰으나 그의 가면 속 진짜 얼굴을 보게 된 크리스틴은 겁에 질린다.


  오페라의 유령은 크리스틴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오, 크리스틴! 당신은 울고 있구려. 당신은 나를 두려워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야. 나를 사랑해 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 나도 사랑만 받는다면 얼마든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나는 양처럼 온순해질 것이고, 또한 나는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할 거야.”


  하지만 그의 꿈은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사랑과 질투, 고통과 분노로 분열되는 에릭은 최후의 수단으로 크리스틴에게 혼인 서약을 해주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연인(‘라울’)과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하게 된다.


  그래도 신은 마지막에 에릭에게 축복을 내려 에릭이 난생 처음으로 여자를 포옹하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진정한 사랑이란 강압적이고 이기적이며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언제나 함께 나눈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유를 돌려줌으로써 에릭은 질투와 갈등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전체적인 얼개가 흥미롭다고 느끼신 분은 원작소설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도 확인하면 좋을 듯하다.




  처음 책을 다 읽고 나서 뮤지컬을 보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우선 본 것이 영화였고, 그다음에 실황 공연 영상을 감상하였다. 텍스트로만 되어있는 책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음악을 듣고 실제 움직이는 오페라의 유령을 보면서 그의 고뇌와 절망을 더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지상에서 가장 순수한 감정 때문에 오히려 괴물이 되어가는 에릭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일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괴물이 될 잠재요인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버림받은 불행한 아이에게 있어서 세상은 분노와 증오의 표출 대상일 뿐이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패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사랑받지 못한 어린 자아가 있었다.


  괴물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삐딱한 시선과 편견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내 안에 괴물을 품고 있다. 다만 스스로를 적절히 ‘통제’하면서 내면을 다듬어 나가기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나는 과연 사람일까? 아니면 그 무엇의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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