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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Oct 05. 2022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비극과 희극의 공존



  개구리 올챙이 적 시절인 취업 준비를 할 때 일이다. 모의고사 국어 과목 문제에 이런 게 나왔다.


다음 중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아닌 것은?

①리어왕 ②맥베스 ③오셀로 ④로미오와 줄리엣 ⑤햄릿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는 말은 수업시간에 들어본 것 같은데 도통 알 길이 없었다. 평소 셰익스피어 여러 작품을 읽어 봤으면 맞췄을 수도 있었겠지만 수험생 주제엔 한가하게 외국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까?


  지문에서 들어 본 거라곤 ‘로미오와 줄리엣’뿐이었다. 게다가 영화 등을 통해 두 주인공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닌 것 같으니 제쳐 놓고. 잠깐 고민하다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맥베스’나 ‘오셀로’ 중에서 선택하였을 것이다.


  물론 보기 좋게 틀렸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당연히 답이 아니라고 제쳐놓았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정답이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뭘 기준으로 비극이니 희극이니 정하는 거야? 내가 시험 붙고 시간이 생기면 그놈의 4대 비극을 꼭 읽어보리라. 아니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다 읽어서 이 무식함의 민망함을 씻어 내리라’고 마음먹었다.


  수험생활이 끝나고 사회인(?)이 되었지만 지난날의 내 결심은 옷장 밑에 켭켭이 쌓인 먼지처럼 바쁜 일상 속에서 잊혔다.


  입사하고 몇 년 후 ‘도서관’과 관련한 업무를 맡게 되었다. 도서 관리만도 버거운데 시설까지 신축하거나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일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자연스럽게 사무실 책상에 문학 서적들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업무를 위한다는 핑계로 책 읽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갔다.


  어느 날 우리 부서에서 주관하는 어떤 특별행사 준비를 위해 자료를 찾다가 우리 행사일이 마침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줄여서 “세계 책의 날”)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5년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세계적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날(1616년 4월 23일)을 기념하여 ‘세계 책의 날’로 지정하였다. 게다가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의 수호성인 ‘세인트 조지 축일’과 '세르반테스의 서거일'이 겹치는 이 날, 사랑하는 연인끼리 남성은 여성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여성은 남성에게 책 한 권을 선물하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좌)와 세르반테스(우)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작가에 대한 흥미로운 비교나 평가가 많은데 대부분 그들의 작품과 관련이 깊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풍차를 향해 돌진하던 돈키호테의 모습과 연결하여, 현실을 무시하고 공상에 빠짐으로써 자기 나름의 정의감에 사로잡혀 분별없이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의 유형을 ‘돈키호테 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햄릿이 부왕의 복수를 지나치게 망설인 것에 빗대어 모든 일에 깊이 생각하고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결여되고, 사색적·회의적·내성적 경향이 강한 인물형을 ‘햄릿형’ 인간이라 칭한다.


  돈키호테형과 햄릿형은 서로 대립되는 극단적인 인물형이므로 모든 사람을 이 두 부류로 나누기는 어렵지만, 자신의 성격이 두 인간형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편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셰익스피어와 만나면서 서양 문학의 큰 토대가 된 그의 작품을 더는 못 본체 피하기 힘들어졌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것이 「햄릿」, 「맥베스」, 「리어왕」,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등이다. 그의 작품들을 통해 서양 문학사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자 전형적인 인간의 본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어서요, 어서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명상 또는 사랑의 생각만큼이나 빠른 날개로 복수를 향해 날아갈 수 있어요.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건 그저 잠자는 것일 뿐, 잠들면 마음의 고통과 육신에 따라붙는 무수한 고통은 사라지지.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 「햄릿」 중에서 -

[햄릿, 아버지의 유령을  보다] 외젠 들라크루아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 후부터 복수를 준비하는 햄릿은 왕(숙부)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일부러 실성한 척 연기를 한다. 그러나 ‘복수의 지연’으로 일컬어지는 햄릿의 우유부단함은 세계의 부조리와 인간의 심리적 깊이를 드러내는 언어, 특히 풍부한 은유와 역설적 표현들이다. 이 작품의 표면적 모티프인 ‘복수’는 햄릿의 고뇌와 사유를 작동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햄릿에게 삶은 곧 죽음, 죽음은 곧 삶과 같았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불안, 허무와 사투를 벌인 자였다. 따라서 햄릿의 갈등은 그저 복수로 끝나고 마는 욕망의 갈등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걸고 삶의 진실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뱅코: ... 이것들은 뭐지? 이렇게 말라비틀어지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어서 도저히 이 땅 위의 생물이 아닌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이 땅 위에 앉아 있는 이것들은? (중략)

맥베스: 대답하라, 할 수 있다면. 너희는 누구냐?

마녀 1: 맥베스 만세! 그래미스 영주님, 만세!
마녀 2: 맥베스 만세! 코도어 영주님, 만세!
마녀 3: 맥베스 만세! 앞으로 왕이 되실 분

뱅코: ... 너희는 내게는 말을 걸지 않는구나. 만약 너희가 시간의 씨앗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어떤 씨가 자라고 어떤 씨가 자라지 않을지 말할 수 있다면 내게도 말해 다오.

마녀 1: 맥베스보다 못하지만 더 위대하신 분.
마녀 2: 맥베스만큼 운이 좋지는 않지만 더 좋은 운을 타고나신 분.
마녀 3: 왕이 되지는 못하지만 자손들이 왕이 되실 분.

 -「맥베스」 중에서 -

[맥베스와 세 마녀들] 터오도르 샤세리오


  「맥베스」는 예언과 운명에 깊게 빠져들어 간 한 인간의 타락과 파멸을 그린 작품이다. 맥베스와 함께 마녀를 만난 뱅코가 말하듯이 “우리를 해치려는 어둠의 졸개들이 몇 가지 하찮은 사실로 유혹하여 깊디깊은 구덩이에 빠트리는” 이야기다.


  극 중에서 마녀들의 예언은 맥베스의 욕망을 자극하여 인간의 역사 속으로 침투한다. 맥베스의 고삐 풀린 욕망은 최고 권력을 향해 직진하며 생명을 포함한 모든 가지들을 파괴하고, 마침내 그 자신까지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이렇게 극적으로 인생의 희비가 교차될 수 있을까?




리어왕: 너희들 가운데 누가 짐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겠느냐?

고너릴: 전하, 제 사랑은 말로 표현 못 합니다... 입을 열고 말하면 빈약해질 사랑으로 모든 한계를 다 넘어 전하를 사랑하옵니다...

리건: ... 저는 가장 민감한 인간의 감각이 누리는 다른 모든 기쁨을 적이라 공언하고 오로지 전하의 귀중한 사랑 속에서만 행복해진다는 사실이옵니다...(중략)

코델리아: 아무것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전하. (중략)

리어왕: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 「리어왕」 중에서 -

[코델리어를 애도하는 리어왕] 제임스 베리


  살아가면서 우리는 리어왕과 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시험하여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 옆에서 ‘고너릴’이나 ‘리건’과 같이 속마음을 감추기도 하고, ‘코델리아’처럼 자신을 포장하지 않아서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게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갖가지 모습이다.


  문학은 인간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아닐까? 사람들은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을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몇 백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우리의 본질적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아고: 오, 주인이시여, 질투를 조심하십시오. 질투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며 먹이로 삼는 녹색 눈을 한 괴물이니까요. (중략)


오셀로: 이건 이유가 있단다, 이유가 있단다, 내 영혼아, 저 순결한 별들에게 밝히지 않겠지만 이건 이유가 있단다.(중략)     장미를 꺾으면 내가 생장의 힘을 다시 주진 못할 테니, 시들 수밖에 없는 법. 살았을 때 냄새 맡자. (입 맞춘다) 향기로운 숨결이다. 정의의 여신조차 설득당해 칼을 꺾을 만하구나. 다시 한번. 이렇게 치명적인 향내는 절대로 없었어. 난 울어야 하지만 내 눈물은 잔인하다. 이 슬픔은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내려치는 천벌과 같구나.

- 「오셀로」 중에서 -

[오세로와 데스데모나] 테오도르 샤세리오


  주인공인 오셀로는 ‘무어인’이기 때문에 작품 곳곳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며, 자기 자신도 백인들의 한가운데의 유일한 ‘무어인’이라는 것과 옛날의 노예 생활 기억 때문에 깊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이아고’는 작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악의만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 동시에 관객들에게 자신의 악의와 음모를 까발리며 계획을 진행시킨다. 그는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오셀로가 사랑한 부인)’를 사랑하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열등히 여긴다는 것을 알고 그 열등감을 자극한다.




  사람의 감정을 꿰뚫어 보고 거기에 맞춰서 교묘히 서로를 이간질시켜 자기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결국 모두가 모두를 믿지 못하고 오해하여 파국에 이르게 되는 일련의 과정. 이게 바로 악마가 인간을 지옥으로 이끄는 방법이 아닐까?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씁쓸한 입맛을 다지게 만든다.


  내 인생에도 4대 비극이라고 칭할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화석같이 말라붙은 비극으로 각인된 장면이지만 앞으로 시간이 지났을 때 희극으로 바뀌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인생은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용광로’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 C(Choice)의 연속이라고 한다. 지난날 내 결정들이 모두 희극이 될 수 없듯이 앞으로의 내 삶도 모두 비극은 아닐 것이다.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시간선 상에서 의지와 관점에 따라 앞으로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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