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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Sep 19. 2022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넌 뭐니?

MBTI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

  며칠 전 회사 지인들과 점심식사를 했다. 예전에 근무했던 어떤 업무로 맺어진 인연이었다. 한 분은 내 전임자(A)였고 다른 분은 후임자(B)였다.


  합석한 적은 자주 있었지만 이렇게 셋만 모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같은 위치에서 같은 업무를 했다는 것, 일하면서 생기는 고민과 고충을 누구보다 공감할 수 있는 사이라는 연대감이 오늘 이 자리를 이끌었나 보다.  


  B가 얼마 전에 승진을 했는데 A가 아직 축하인사를 안 했다는 이유가 오늘 모임의 표면적인 계기였다. 식당으로 가기 위해 약 20여 분간 차로 이동했다. A와 만나자마자 서로 짓궂은 농담이 이어진다. 늘 그런 식이다. 직장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렇게 편하게 말하기도 쉽지 않다. 가끔은 너무 편한 대화에 살짝 민망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 생각한다.

 

  B는 원래 성격이 착한 데다 나머지 두 사람의 독설에 기를 못 펴고 있다. 업무를 꼼꼼히 잘해서 무슨 일을 맡겨도 신뢰가 가는 데다 여간 예의 바른 게 아니다. 입의 혀처럼 듣기 좋고 예쁜 말만 하니 다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점심은 주꾸미 정식이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주꾸미에 불맛을 제대로 살린 듯 매초롬한 양념이 입에 착 감긴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간다. 인간의 감정이 그렇듯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최근 회사 동정이나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 회사 게시판에 올라있는 흥미로운 소문들부터 특정인에 대한 험담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로 끝이 없다.


  그러다 문득 A가 B에게 묻는다.


  “○팀장은 MBTI가 뭐야?”

  “저는 ISTP요. ○과장님은 뭔데요?”

  “나는 ISTJ야.”


  난 속으로 생각했다. ‘또 시작이구나!’




  A는 MBTI 신봉자라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A는 누구와 만나든 상대의 MBTI를 확인하고 그것에 맞춰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MBTI를 종합하여 최종적인 평가보고서를 만들어낸다. ‘인사’ 관련 업무를 해서인지 회사의 거의 모든 직원에 대해 상세한 인적사항을 줄줄 외우고 있다. 그런 A에게 MBTI는 상대를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유능한 Tool이다.


  MBTI가 최근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에는 혈액형이나 별자리로 성격을 파악했다면 지금은 MBTI가 대세다. 처음 사람을 사귈 때, 심지어 면접장에서도 MBTI를 묻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다. 재미와 흥미를 넘어 MBTI가 일종의 ‘성격 증명서’로 활용되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MBTI가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과연 MBTI는 과학적인 검사일까?


  한국 MBTI연구소에 따르면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하여, 1944년 미국 작가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보다 쉽고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유형 지표’라고 한다.


출처  망망로그  블로그


  사람들이 MBTI를 선호하는 이유는 16개 성격 유형의 결과가 직관적이고 폭넓은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총 93개 문항을 토대로 사람을 크게 두 가지 유형, 즉 인식(P)’을 중시하는 사람과 ‘판단(J)’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전자는 ‘감각(S)’을 좋아하는 사람과 ‘직관(N)’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누고, 후자는 사고(T)’하는 사람과 감정(F)’을 느끼는 사람으로 나눴다. 이 네 가지 유형은 다시 태도에 따라 내향(I)’외향(E)’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MBTI의 대립적 유형 범주가 자리 잡혔다.


  내가 생각해도 MBTI는 사람을 판단하는 데 쉽고 용이하게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MBTI가 두루 애용되는 또다른 이유는 검사 결과가 자신의 성향을 알게 해주는 데다가 한편으론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해 준다는 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할 때 여러 반응을 보일 때가 많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틀려먹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나와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때 갈등이 유발된다. 이런 이유로 인간관계가 멀어지거나 불협화음이 생기는 게 아닐까?


  “저 사람은 모든 일에 너무 감정적이야.”

  “그는 인간미가 없어. 무슨 일이든 너무 타산적이고 냉정해.”

  “나는 어떤 일이든 빨리빨리 결정하는데 저 인간은 늘 꾸물거린단 말이야.”  


  MBTI 검사 결과는 인간의 유형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려 준다. 마주하는 사람과의 각종 불만을 대해 “아, 나와 유형이 달라 그랬었구나.”라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레고 조각’ 하나를 이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퍼진 MBTI에 대한 맹신은 좀 과한 듯하다. 얼마 전 미국 CNN이 한국 젊은 세대 사이의 MBTI 열풍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한국의 ‘MZ 세대’는 데이트 상대를 찾는 데 MBTI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중략) 2030 세대가 상대를 알아갈 때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MBTI가 잘 맞는 사람을 골라서 만난다.


  CNN은 한국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MBTI의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속감을 얻고자 하는 심리가 강해진 것이라 설명했다. 치솟는 집값과 취업 경쟁 등의 상황으로 내몰린 한국 MZ 세대 사이에서, MBTI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전략적인 수단으로 자리 잡았단 것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보고 있다.


  처음 만날 때에 서로 MBTI 유형부터 밝혀서, 성격이 서로 맞는 타입이면 좀 더 친밀감을 빠르게 형성하고, 정반대의 경우가 나오게 되면 이미 감정을 미리 차단해 버리면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에 대한 어떤 진심을 보기보다 일단 보이는 외형적인 모습의 전부로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각종 상품 마케팅, 그리고 채용시장에서도 기업들이 직원을 뽑으면서 다양하게 MBTI를 보기 시작했다. 또한 여행기업은 MBTI 유형에 따라서 어울리는 여행지를 추천하기도 한다.


  이처럼 어떤 포괄적 마케팅을 통해서 마치 내가 그 그룹에 속해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소속감으로 좀 더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기업들이 전하는 MBTI의 마케팅인 것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브릭스-마이어스 모녀가 공식적인 심리학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MBTI 결과에 일관성과 정확성이 없다는 비판들이 꾸준히 제기돼 다. MBTI 업체인 마이어스-브릭스 컴퍼니 기업마저도 현재 한국의 MBTI 활용법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MBTI는 이분법적인 측정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가 보고식으로만 구성돼 있어 타당도에도 한계가 있다. 자신의 성격마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MBTI로 평가된 하나의 틀 안에 가둬버리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내가 20대 때는 혈액형으로 새로 만나는 관계나 연인의 관계에서 묻고 판단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혈액형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배제하거나 배척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저 “그 사람의 성격이 그래서 그렇구나” 정도로 이해하고 새로운 인연에 대해서 함부로 판단하진 않았고 그저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십거리 중 하나였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사회풍조는 정말로 MBTI에 집착하고 있다. 마치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 군주들이 전쟁을 준비하면서 적국에 대한 분석보다는  델포이 신탁  결과에만 온 신경을 썼던 것과 비슷하다면 과장일까?


  나와 다른 사람은 잘못된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다양성을 수용할 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념과 지역, 세대 간의 차이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특히 심하다.


  '다름'을 틀림으로 인식하고 선입견과 편견에 사로잡힐 때 혐오와 분열은 증폭된다. 다름을 인정하면 갈등이 줄어든다. 화합은 다름을 수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심리학의 기본 전제는 모든 인간에겐 타고난 기질, 뿌리가 존재하며 이는 바꿀 수 없고 다만 보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보완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인데, 내 경험상 그것은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만들고 바꾸어 나가는 일이야말로 ‘나’라는 존재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격 유형 검사라는 유형화 도구의 '애용자'가 되어도, 그걸 '믿지 않는' 사람이어도 마찬가지이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나 자신’이 고민하고 알아가고 또한 바꾸어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16가지 성격 중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 각자의 자아정체성은 본인의 주된 유형과 별개로 다른 유형의 특징들, 고유성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기에 필요할 때마다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하다.


  이는 MBTI의 또 다른 인식인 '8 기능 이론'이나 '애니어그램'의 종합적 통합 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두 이론 모두 궁극적인 목표는 본인의 유형을, 본인을 이해하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 강화할지를 인지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평생에 걸쳐 노력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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