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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Sep 06. 2022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진화의 결과가 우울, 불안이라면?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그대의 귀신같은 전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기묘한 계략은 땅의 지리를 통달했구나.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 한국 최고(最古)의 오언고시(五言古詩)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려 전한다. 서기 612년(고구려 영양왕 23년), 수(隋) 나라가 수륙(水陸) 양군으로 침공(제2차 고구려 對 수 전쟁)하여 왔을 때에, 을지문덕 장군이 적의 마음을 해이하게 하고자 살수(薩水:지금의 청천강)까지 추격하여 온 적장 우중문(于仲文)을 희롱한 이 시를 지어 보냈다고 한다.


  을지문덕 장군은 우중문이 이 시를 받으면 때마침 피로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수나라 군사들이 싸울 의욕을 잃고 회군(回軍)할 거라 예상하고 수나라 군사들을 추격, 대승을 거두는데 이것이 바로 '살수대첩(薩水大捷)'이다.




  ‘역대급’ 태풍이라고 연일 언론에 「힌남노」에 대한 경계심리가 점점 그 절정을 향해 가던 그즈음, 우리 가족은 바로 그 적의 예봉(銳鋒)을 가까스로 피하면서 여름의 마지막을 쥐어짜듯 억지로 만들어 강원도 한 물놀이장에 다녀왔다. 


  안면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오긴 했지만 아이가 물놀이장에도 가고 싶다는 말에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급하게 예약한다는 것이 비상시국과 맞물려 버렸다. 누가 보면 이 무슨 해괴망측한 행동인가 말하겠지만, 비가 아직 오지 않은 영향인지 그날 물놀이장에서 보았던 수천 명의 인파를 생각하면 나만 상종 못할 별종은 아닌 듯싶다.


  아침잠을 설치며 한참을 달렸건만 팔당댐 앞에서 길게 늘어선 차들을 보고 절로 탄식이 나왔다.


팔당댐 수문 연 광경

 집에서 도보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유명한 물놀이장을 놔두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생각하다가, 이렇게라도 나와야 가족끼리 드라이브도 하고 집 밖에서 오랜만에 하룻밤도 잘 수 있겠다 싶어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길이 막혀 멈춰진 차에서 아직 열지 않은 팔당댐 수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여수장우중문시>, 이 시구가 떠오른 건 어떤 연유에서 일까? 내가 생각해도 참 뜬금없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것 같긴 한데, 한문 시간에 배운 거 같기도 하고 도통 확신이 안 선다. 기억나는 건 수업시간에 꽤 신나 있었다는 것. 시구의 표현이 참신한 데다 적장을 놀려먹는 한시의 내용이 재미있었다. 또한 중국의 대군을 거의 전멸시킨 전과를 배우며 고대사에서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던 몇 안 되는 장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통틀어도 이 만큼 대규모 병력이 동원된 전쟁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수서》 권 4, 제기, 제4, <양제 하편>에 따르면 이때 동원된 총병력은 113만 3천8백 명인데 식량 운반자는 그 배(倍)였다고 한다. 만약  서술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기록은 1,300년이 지난 제1차 세계대전에서야 깨지게 된다.


「여 수장 우중문 시(與 隋將 于仲文 詩)」, 직역하면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내는 시’쯤 되겠다. 제2차 고구려 對 수 전쟁에서 고구려군의 철저 항전(요동성 전투) 때문에 공격에 난항을 겪고 있던 수양제는 우중문을 총지휘관으로 삼아 병사 30만 5천 명을 뽑아서 별동대를 편성하여 평양으로 곧장 내려 보내게 된다.


  을지문덕은 이들의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항복 사신으로 가장하여 수나라 진영에서 우중문을 만났다. 을지문덕은, 굶고 지친 수나라 군대의 상황을 샅샅이 살핀 후, 우중문에게 이 시를 보낸다.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그대의 귀신같은 전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


  당시 수나라의 출병 시점은 음력 6~7월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7~8월 즈음이었다. 즉, 한여름이었다. 삼국지나 역사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지휘관들은 여름에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심히 꺼렸다.


  그 이유는 여름은 농번기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야 할 농부들을 병사로 징집하면 그해 농사는 망치는 것이었고, 장기적인 국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자충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또한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갑주나 병장으로 꽁꽁 무장한 병사들의 피로도가 상승하고 열사병을 유발하였다.


  게다가 수군(水軍)은 그다음 해 1월, 즉 한겨울에 출병하였다. 만주의 기록적인 겨울 기온을 감안하면 하늘의 이치를 무시한 수양제의 과도한 허세와 자만심에서 나온 악수(惡手)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기묘한 계략은 땅의 지리를 통달했구나.


  우중문의 군사들은 보급선의 한계를 넘어 지나치게 진격하는 바람에 군량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병사 개개인에게 군량을 비롯한 보급품을 스스로 운반하게 하고 있었다. 몇 주치 식량을 짊어지고 갑주에 창까지 꼬나든 채, 변변한 냉방기구도 없이 장마철에 산과 언덕, 습지대를 행군한다면 어떤 상태에 놓일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병사들은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아사(餓死)와 병사(病死)에 시달렸다고 한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


  내용만 보면 “싸움에서 이긴 공적이 높다”라고 칭찬하는 것이지만, 전쟁 내내 우중문은 고구려를 상대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정작 세운 공이라는 게 거의 없는 상황을 반어법으로 칭찬한 것이니, 을지문덕의 계산에 따라 의도된 승리를 거두고 있었던 수나라 입장에선 그야말로 허탈한 기분. 


  게다가 이걸 이 전쟁의 없는 전공을 칭찬한 게 아니라, 우중문이 그동안 대장군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쌓아야 했던 전공을 칭찬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우중문의 처지는 훨씬 더 처참해진다.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


  언뜻 글만 보면 적을 칭찬하고 추켜세우는 글로 보이지만 전황을 파악 못하는 바보가 아닌 이상 글에 담긴 뜻은 명백했다. 너희는 이미 졌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 도발에 우중문도 분노했겠지만, 지피지기 해보니 더 이상 작전 속행이 불가하다고 판단, 퇴각을 명령했다.


  그러나 수나라 군의 상황은 이미 군량도 바닥나고 더 이상 싸움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로 전황이 어려워졌던지라, 퇴각하는 과정에서 30만 별동대가 살수에서 몰살당하다시피 하는 대참패를 당한다.




  지족(知足)이라......


  우리가 그 경지를 어떻게 다다를 수 있을까? 만족(滿足) 보다 더 다가서기 힘든 영역이 아닐까?


  노자의 <도덕경>에는 ‘지족’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禍莫大於不知足(화막대어부지족)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없고,
咎莫大於欲得(구막대어욕득)   욕심을 내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故知足之足 常足矣(고지족지족 상족의)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알아서 얻는 만족이야말로 늘 함께할 수 있는 만족이다.


   물고기는 배부름을 느끼는 신경 기관이 없어서 먹이를 주는 대로 먹는다. 내가 잠깐의 정(情)에 이끌려 우리 집 수조의 구피들에게 너무 많은 먹이를 주면 쉼 없이 먹다가 그다음 날 배불뚝이로 죽어 있는 녀석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것 또한 내 욕심 때문에 무고한 구피들이 죽음을 당한 것이다. 늘 과욕을 인식하고 살아갈 수 없을까?


  다행스럽게도 인간을 포함한 고등 동물은 포만감을 느낄 수 있기에 배가 부르면 먹기를 멈춘다. 그러나 명예나 재물의 욕심, 타인에게 인정받고 섬김을 받고 싶은 심리적인 욕구에 대한 포만감을 느끼는 기관은 갖지 못했다.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부종을 만드는 것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끊임없이 추구하다가 배불뚝이 구피처럼 죽어 간다.



  남을 속이고 비방하고, 아흔아홉 마리 양을 가진 자가 한 마리 양을 보고 군침을 흘린다. 재물이 많을수록, 명예를 애걸할수록 사람은 추해지고 타락하여 결국 심신이 피폐해지고 다.




  더욱 안타까운 건, 큰 욕심을 부리기는커녕 지금 있는 그대로 가만있고 싶은 데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갖가지 상념에 괴롭고 불안하고 노심초사하는 우리의 상황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음에 쏙 드는 답은 못 찾았지만 나름 설득되는  답변은 “인류 진화의 결과”라는 주장이다. 불안, 우울, 슬픔 같은 감정은 그 나름대로 쓸모가 있기에 자연선택 과정에서 살아남았고, 고통이 인류의 유전자에는 이로울 때가 많다고 진화 정신의학은 분석한다.


  당신이 수렵채집 시대에 사는 원시인인데 어제 '사자'를 가까스로 피했다고 상상해보자. 바로 옆 수풀에서 뭔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건 내가 찾는 ‘사냥감’일까? 아님 나를 사냥하려는 ‘사자’일까?오늘 당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현명할까?


  아마  현존 인류의  조상들은 사냥감을 찾았다고 행복해 한 원시인이라기보다는 사자일 거라 불안해하며 도망간 사피엔스들이 살아남아 진화한 결과일 거다.


  brunch의 어느 구독 작가님의 글을 보다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보았다.


마음이 과거에 있는 사람은 우울을,
미래에 있는 사람은 불안이라......


  감정은 순간적이다. 집착하지 않고 털어버려야 한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인간은 행복이나 기쁨 같은 긍정적 감정은 쉬이 잊고 지나치면서, 고통이나 상실감 같은 부정적 감정은 오래 기억하면서 상처를 남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작고 사소한 거라도 즐겁고 기쁜 것을 지속적으로 찾아서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가져야 한다. 아니, 자꾸 연습하고 의식적으로 기억해서 굳은살처럼 내 몸에 새겨야 한다.


  그것만이 현재의 나에 만족하고 지족을 느낄 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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