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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ug 29. 2022

지금은 로딩 중

여름과 가을 사이 길찾기

  개학한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딸애는 아직도 여름방학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학 시작하고 들뜬 마음에 엄마, 아빠와 놀다가 밤늦게 자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겨우 일어나던 패턴이 아이 몸에 돌솥밥 누룽지처럼 눌어붙었다.


  게다가 올해는 이상하게 학원들(딸애는 영어, 피아노, 미술 학원을 다닌다) 방학 시기가 서로 달라 2주를 어영부영 보냈다. 그 사이에 우리 가족 여름휴가까지 겹치면서 아이의 생활리듬은 그 존재조차 희미해졌다.


  오늘도 딸애는 침대라는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철퍼덕거리고 있다. 이렇게 뒹굴거리다가는 곧 등교시간에 늦었다고 온갖 불평을 나에게 늘어놓으며 아침밥도 안 먹고 갈게 뻔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끌어안고 일으켜 세우려 해 봤지만 흐느적거리는 해파리처럼 손에서 미끄러져 다시 침대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아, 이제 일어나야지. 거실에 TV도 켜 놓고 이불도 깔아놓았어. 아빠가 안아 줄 테니 어서 눈뜨고 가자.”

  “나아. 로오. 디잉. 주웅.”

  “뭐라고?”

  “지금 로딩 중이라고!”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가 곧 웃음이 나왔다. 기가 막혔다. 알파벳 ‘L(엘)’과 ‘I(아이)’도 구별 못하는 아이가 ‘로딩’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알고 상황에 맞게 사용하였을까? 뭐, 답은 뻔하다. 유튜브가 가르쳐 주었겠지. 이렇게 조금씩 커가는 자녀를 보며 부모는 삶의 고단함을 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나 보다.




  그렇게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 오늘도 겨우 지각만 면하게, 빠듯하게 회사에 도착했다. 미안한 맘에 머리를 긁적거리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나만 빼고 모든 직원들이 벌써 업무 삼매경이다. 민원 전화에, 보고서류 출력에, 팀 회의에 전념하느라 나란 존재는 무색해졌다.


  책상에 앉자마자 PC 전원 스위치를 급하게 눌러 부팅을 시작했다. PC는 보조기억장치에서 운영체제를 불러들이는 작업을 하면서 시스템의 시동을 거는데, 그 특유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이제 내 PC도 로딩이 끝났다.


  난 이미 늦어버린 내 시작을 만회하려는 듯 곧바로 회사 내부망으로 들어가 급히 결재할 사항을 처리하고 게시판에 들러 밤사이 새로 올라온 여러 공지사항을 제목 위주로 휙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오늘은 별 다른 게 없다. 우리 팀 직원들도 아침부터 딱히 협의할 사항이 없는지 각자 PC 모니터에 머리를 박고 자신만의 일거리에 몰두하고 있다.


  잠시 숨을 돌려 내 책상을 훑어보았다. 그리 깨끗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보이지 않는 패턴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모니터에 붙어 있는 갖가지 메모지에는 업무 관련 숙지사항도 있고 하릴없이 끄적거려 놓은 글귀도 있었다. 이것들을 적어서 굳이 붙였을 때는 나름 이유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왜 붙였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과연 이 책상이 내 자리인가 싶어졌다.


  갑자기 현기증 비슷한 어지러움이 일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는데, 유채색의 사무실에서 내가 차지하는 공간만 아직까지도 무채색의 무언가로 남아 있었다. 내가 헛것을 보는가 싶어 당혹스러웠다. 나를 제외한 모든 시공간이 눈에는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그 무엇처럼 느껴졌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5차원 공간처럼 말이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올 7월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한 회사는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누구와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 중이었다. 새로운 진영을 짜고 오와 열을 맞추고자 인사이동까지 끝내고 힘차게 나아갈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영혼까지 빨아들일 기세로 몰려오는 무더위에 모두들 할 일을 버려두고 휴가를 떠났다. 가혹한 열기는 모든 회사 일을 미루어도 면책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광복절이 지나자 거짓말처럼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무실을 떠났던 이들이 하나, 둘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휴양지에서의 추억이나 느슨해진 마음은 한동안 책상 서랍 맨 구석에 넣어두어야 할 판이다.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에 나온 날, 책상에 쌓인 먼지를 털며 다시금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다른 직원들은 각자의 시간과 장소로 돌아와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나만 아직도 제 자리를 못 찾고 있었다.


  회사 업무통신에는 오늘 하루에도 수많은 메일이 계속 올라왔다. 거친 숨을 내쉬며 메일을 보낸 담당자들의 숨결이 모니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로 글자 하나하나에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2023년도 주요 업무계획 제출’, ‘2023년도 본예산 편성 요구서 제출’, ‘2023년 신규사업에 대한 검토 요청’, ‘2021년도 결산 검토자료 제출’, ‘간부 현장방문 일정 확인’ 등이 ‘긴급’ 또는 ‘즉시’라는 표제어와 함께 쉴 새 없이 쌓이고 있었다.


  어떤 성질 급한 메일은 이제 막 열어보는 찰나에 ‘서식 변경’이라는 심히 불쾌한 분위기를 풍기는 추가 메일을 마치 「테트리스」의 한 장면처럼 계속 쌓고 있었다. 보낸 걸 또 보내고 미처 열어보지 못한 직원들에게 강조용으로 확인 메일 보내고......



  이유 없는 짜증과 울적함에 보고 있던 메일함을 닫고 나왔다. 요즘 내가 왜 이럴까. 내가 봐도 요즘 통 회사 업무에 전념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집에 와서도 편안한 휴식을 느끼거나 가족과 화목한 시간을 가지기보다는 맞벌이 부부의 바쁜 일정과 여기저기 정리되지 않은 집안 모습에 자꾸 잔소리만 나오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이곳저곳 아픈 데도 많아 병원 몇 곳을 계속 다니는 데, 치료를 받아도 별 차도가 없는 내 몸에 슬슬 지쳐가고 있다. 내 몸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모두가 정상이 아닌 듯싶다. 내가 온전히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더욱 알아차리기 힘든 것 또한 내 맘인가 보다. 이제 보니 아직도 로딩 중인 사람은 내 딸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정엽’이 쓴 책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에 보면 다음과 같은 상담사례가 나온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돈도 잘 벌고, 아내와 사이좋고, 자식들도 공부를 잘하니 딱히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는 삶이라고 준태 씨는 생각했다. 다만 아직 부족한 것 같아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코너로 몰아붙일 뿐이다. 잠이 들 수 있는 약만 있으면 이것도 어느 정도 괜찮을 것만 같다.


  저자는 이런 유형을 ‘나는 아직도 부족해’라는 생각을 가진, ‘엄격한 기준’의 뿌리를 둔 사람들이라고 조언한다. 엄격한 기준은 타인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불쾌한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주위에서 아무리 잘했다고 말해준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고가 되어도 항상 압박감을 느낀다.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끊임없이 좌절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는데, 좌절을 반복하면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고,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이들에게 성취는 당연한 일일 뿐이다. 잘 처리한 일에도 만족감을 못 느끼고 다음번 과제를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들은 항상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삶의 무게와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세상에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인생의 잔혹함,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성취의 공허함에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중략) 이런 유형은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 사용에 민감해지는 경향을 띠게 된다.


  내가 보기에, 난 위 사례의 인물만큼 성공하지도, 모범적인 가정생활이나 인간관계를 잘 이루지도 못했지만, 생각하는 패턴이 일부 닮아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유형에 속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당시에는 잘하고 있다는 안정감을 얻었지만 결국에는 허무함과 공허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종종 발견하였다. 그럼 어떡해야 생활의 활력을 유지하면서 과정 하나하나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러한 엄격한 기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먼저 시간의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시간에 선택당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의 기준을 사회에서 인정하는 가치로 둔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즐거운지 알지 못하기에 타인의 인정, 우수한 성과, 높은 지위, 효율, 쓸모를 좇는다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표현은 나에게도 맞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만, 대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개연성만 있는 일이나 계획을 미리 당겨서 고민하고 걱정하는 편이다.


  요즘 내가 중심을 못 잡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에 벌여 놓은 여러 가지 일들이 하나같이 마무리되는 기미도 없이 계속 가지를 밖으로 뻗어 나가 혼란스럽기만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요즘 생각이 많아졌다. 누구와 만날 때는 물론이고, 이동 중에도 산책할 때도 생각하는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혼자 텅 빈 공간에서 멍 때리고 싶은 때가 많지만, 그럴수록 더욱 사변적인 생각들로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뇌’라는 기관이 자동적으로 생각을 만들어내는 기관이지만, 대부분의 생각이 부정적으로 흐르는 요즘 같아서는 더더욱 의식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미래를 잘 준비하는 일도 물론 필요하지만, 삶이 놓여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살거나 낙담 속에서 시들어 버린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빨리 추워졌으면 좋겠다.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게 말이다. 지난 더위에 흐물흐물해진 내 정신 상태를 다시 팽팽하게 조율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안일한 과도기적 혼란에서 벗어나, 순간의 작은 즐거운 가치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현재에 살면서 상냥하고 주의 깊게 길가의 작은 꽃들을 보며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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