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현 Nov 02. 2022

연금술사(鍊金術師)

하루하루가 연금술



  지난주에 정신없이 이사를 마쳤다.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포장이사 업체에 맡겼는데 왠지 내가 다 한 것 같은 억울함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많은 책을 지인들에게 주거나 정리하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이 거실 벽을 가득 채웠다. 다행히 딸애 책은 그 방에 다 집어넣어 거실이 한결 정돈된 느낌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책장을 쓰다듬고 있는데, 이게 뭐야! 책들이 뒤죽박죽으로 마구 꼽혀 있었다.


  스멀스멀 끓어오르는 화를 삼키면서 책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서가 규모가 도서관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난 내 기준에 따른 총류 별로 책 정돈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책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할 수 있고, 갑자기 어떤 책이 보고 싶을 때 바로 찾을 수도 있으니까.


  우선 책들을 모조리 바닥에 내렸다. 그런 다음 마치 1,000피스짜리 직소퍼즐을 맞추듯 책들을 차근차근 꼽기 시작했다. 한참 분류하고 있는데 문득 어느 책이 눈에 띄었다. 그 책을 집어 올리면서 어떤 추억이 떠올라 내 얼굴에 빙그레 웃음이 번졌다.



  

  내 기억으로 이 책은 딸애가 최초로 타인에게 자신의 금쪽같은 돈을 쓴 역사적인 기념물이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전자책으로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구매하려고 작정한 상황이었다. 작년 내 생일 즈음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빠, 생일 선물로 뭐 받고 싶어? 내가 예쁜 책갈피 만들어 줄까?”


  “그것도 좋은데, 아빠는 너한테서 받고 싶은 책이 있어.”


  작년에는 그냥 예쁜 말에 넘어갔는데 계속 이대로 당하면 안 될 것 같아 무리수를 던졌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받고 싶은 책을 보여주자 대뜸 딸애가 못마땅하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빠, 이건 아니지. 너무 비싸잖아!”


  “뭐가 비싸니? 지난 크리스마스에 넌 할머니, 아빠, 엄마 따로 이 책보다 훨씬 비싼 선물 받았잖아. 얼마 전 네 생일에도 또 선물 받았잖아. 설날엔 세배 돈도 다 받고. 넌 받기만 하고 안 쓸거니? 네 금고에 돈 엄청 많은 거 다 알거든.”


  “내가 그 돈 모으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 그 돈으로 나중에 커서 필요할 때 쓸 거야.”


  “그때가 언젠데?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매주 용돈도 주는데 네가 돈이 왜 필요해? 커서 쓸 돈은 네가 벌어 써야지.”


  “아빠는 지금 돈을 버는 사람이고 나는 아니잖아. 자꾸 이러면 나 커서 돈 벌어도 아빠 선물 사주지 않을 거야.”


  딸애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에는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돈이 없으면 세상 큰일 날 것처럼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마음속으로는 딸애의 말과 행동이 귀여우면서도 겉으론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땐 기세가 센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선물로 준 책에 축복을 내리는 '물주', 내 딸!


  결국 딸애의 금고에서 만 원짜리 지폐가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딸애는 순진했다. 요즘 같으면 그 절반도 안 나올 것이다. 아니면 ‘5분짜리 안마 쿠폰’으로 때울 수도 있고.




  그 책은 세계적인 머니코치(Money coach)이자 밀리언셀러 작가인 ‘보도 섀퍼’가 쓴 「멘탈의 연금술」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목표를 이루고 원하는 삶을 사는 법’에 대한 통찰 깊은 메시지들을 전한다.


  수십 년 동안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온 그는 부자와 빈자,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정적 한 가지는 바로 ‘멘탈(mental)’이라고 제언한다.


  글로벌 리더, CEO, 슈퍼리치, 셀럽, 밀리언셀러 작가에 이르기까지 강철 같은 멘탈을 가진 사람들을 ‘멘탈의 연금술사’라고 부르며 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실력, 행운, 재능과 노력은 분명 우리를 일정한 성공으로 이끈다. 하지만 그 성공을 지속적으로 확장 해나가지 못하면 우리의 꿈과 목표는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룻밤 꿈에 불과해진다. 멘탈의 연금술사들은 시련을 견디고,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티며, 실패에서 배우고, 끝까지 해내며, 마침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취를 손에 넣는다.


  이 책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 여러 매체에서 자주 거론되는 소재가 ‘연금술(鍊金術)’이다. 연금술은 유럽과 아랍권에서 유행한 학문으로, 보통 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기원은 고대 이집트에서 황금을 만들려는 시도가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의 이론들을 만나 정교화된 것이다.




  연금술과 관련된 책 중에 ‘파울로 코엘료’가 쓴 「연금술사」가 있다. 전 세계 170개국 이상 81개 언어로 번역되어 2억2천5백만 부가 넘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린 소설이자 인생의 지침서 같은 책이다.

  스페인의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주인공)’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그 아래 숨겨진 보물의 꿈을 계속 꾼다. 산티아고는 그 꿈이 일종의 예언이라 믿고 그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양치기의 소박하고 낯익은 삶을 뒤로한 채 긴 여행길에 오른다.


  산티아고의 모험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이다. 산티아고는 매번 그들과 겪은 일화에서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그들이 건네는 충고를 에너지 삼아 다음 여정을 계속 이어간다. 꿈을 좇아가는 여정 속에서 산티아고는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깨닫는다.


  우주의 좋은 기운을 키우는 건 바로 자신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나의 모습에 따라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질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 버린 사랑이나 잘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 속에 묻혀버린 보물 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 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 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연금술사들은 어떤 금속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가열하면 그 금속 특유의 물질적 특성은 전부 발산되어버리고 그 자리에는 오직 만물의 정기(正氣)만이 남게 될 거라고 믿었다.

'만물의 정기'를 만들어 낸 연금술사(?)


  그들은 이 최종 물질이 모든 사물들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언어이므로, 이 물질을 통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발견한 물질을 ‘위대한 업’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액체와 고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액체로 된 부분은 '불로장생의 묘약'이라 불리며, 만병을 치유할 뿐만 아니라 연금술사가 늙지 않게도 해준다.


  반면 고체로 된 부분은 '현자(철학자)의 돌’이라 불리는데 동양의 '불로신단(진시황이 찾아 헤맨 불로초를 정제한 것)'에 비견되는 서양 쪽 오컬트의 궁극 비기이기 때문에 마법이나 연금술이 나오는 매체에서는 어디든지 등장한다.




  연금술을 토대로 현자의 돌을 메인 테마 삼아 “인체 연성(연금술로 인간을 만들어내는 행위)"이라는 무거운 주제로까지 아주 깊게 파고 들어간 작품이 있다.


  내 브런치 북 《좀. 멋. 한. 글》의 「사노라면 언젠가는」에서 이미 소개했던 ‘아라카와 히로무’가 쓴 <강철의 연금술사>이다.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인물들 총 등장! 빨강색 망토 입은 자가 에드워드.


  천재 연금술사 엘릭 형제는 죽은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연금술의 절대 금기인 인체 연성을 범하지만 실패하였다.


  세상의 이치를 거스른 대가로 형 ‘에드워드 엘릭(주인공, 당시 11세)’은 왼쪽 다리를, 동생 알폰스 엘릭은 전신(全身)을 빼앗겼다. 에드워드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오른쪽 팔마저 희생하면서 가까스로 알폰스의 혼을 갑옷에 정착시킨다.


  엘릭 형제는 잃어버린 원래의 몸을 되찾기 위해 전설로만 전해지던 현자의 돌을 찾는 모험을 시작하였고, 그 속에서 밝혀지는 현자의 돌에 얽힌 커다란 음모에 휘말린다.


   마지막으로 에드워드는 자신의 잘못으로 잃어버린 동생 알폰소의 육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진리의 문(작중 ‘신’에 해당하는 존재)에 다시 들어간다.

 

진리의 문(왼쪽)과 에드워드(오른쪽)
진리의 문: 네 동생을 데려가려고 온 거냐? 그런데, 무슨 수로 인간 한 명을 끌어내려나? 대가는? 네 몸뚱이라도 내놓게?

에드워드: 칫. 대가라면 여기 좋은 게 있잖아. 엄청 큰 걸로.(에드워드는 진리의 문을 가리킨다.)

진리의 문: (자기 머리를 치며 크게 웃는다.) 그렇게 나오시겠다? 흐하하하하하. 근데 괜찮겠어? 연금술을 쓰지 못하는 보통 인간으로 전락할 셈이냐?

에드워드: 원래부터 보통 인간인데, 전락하고 자시고 할 게 어디 있겠어? 키메라가 된 여자아이 하나 구해주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인간이라고.

진리의 문: 정말로 괜찮겠어? 저게 없어도.

에드워드: 연금술 같은 거 없어도, 모두가 있으니까!

진리의 문: 정답이다, 연금술사! 네 녀석이 날 이겼다. 가져가라, 모든 것을! 출구는 저쪽이다, 에드워드 엘릭!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금속이나 물질의 제련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더 높은 상태로 이끄는 것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금속(철, 구리, 납 등)을 완벽한 금속인 금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영혼도 같이 완벽해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행해진 것이다.


바로 그게 연금술의 존재 이유야. 우리 모두 자신의 보물을 찾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게 연금술인 거지. '납'은 세상이 더 이상 납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납의 역할을 다하고, 마침내는 '금'으로 변하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지금의 우리보다 더 나아지기를 갈구할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도 함께 나아진다는 걸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지.

- 파울로 코엘료,「연금술사」, 문학동네, 2018, pp.241~242.


  철이 구리와 비슷해지거나 구리가 금과 똑같아질 필요는 없다. 각각의 물질은 그 고유한 개별성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는 그를 위해 준비된 기회(꿈, 보물)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런 것들을 용감히 해보겠다는 용기와 열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은 그저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세상은 진짜 험난한 것으로 변해 버린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 기로에서 나를 이끌어 주는 현재의 표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 해답 또한 현재에 있다고 본다.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면, 현재를 더욱 나아지게 할 수 다. 현재가 좋아지면, 그다음에 다가오는 날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지는 것이다.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기회라는 게 결정론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이 주신 선물 상자들이 이이 내 앞에 줄줄이 놓여있어도 어디까지 뜯어볼지는 내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난 반드시 연금술사가 될 테다! 그리고 이 나에게 준비한 그 기회를 만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과 독수리의 제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