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
숙면을 취해 본 적이 없다. 대개 잠을 설친다. 잠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잠든 내내 꿈에 시달린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다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한참을 뒤척인다. (중략)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슬슬 걱정이 된다. 잠을 설친 다음 날 아침이면 신경이 칼끝처럼 곤두서기 때문이다. 위염이 도져 위도 쿡쿡 쑤신다. (중략)
수면제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중독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불면 때문에 당장 닥쳐올 다음 날의 불편함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하는 수 없이 약을 털어 넣는다. 그렇게 한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
“불면의 원인은 불안이에요.” 고심 끝에 찾아간 의사는 내게 말했다. “세상에 잠을 오게 하는 약이라는 건 없어요. 신경을 안정시킬 뿐이지요. 마음속 불안의 원인을 찾아내 없애는 것이 불면을 치유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내 불면의 가장 큰 원인이 ‘불안’이라...... (중략)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매일매일이 불안하다. (중략)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에서 실패하게 될까 봐 불안하다. 내 삶에 ‘성공’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막연한 그 청사진은 있다. 이를테면 안온한 가정과 안정된 사회적 지위, 그로 인한 행복감 같은 것이다. 서른이 되면 그런 것들이 주어질 줄 알았는데 서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중략)
모든 것이 평화로운 속에서 오직 나 하나만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 새벽 세 시의 고독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그 어느 모퉁이에선가 다시 불안의 그림자가 불거질 것이다.
<달>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이 은화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책 속 화자는 그가 문명과는 멀리 떨어진 원시의 섬에서 낙원의 비전을 보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