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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Nov 22. 2022

그림이 나에게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



  그 새벽이 가끔 생각난다. 새벽 세 시쯤인데도 거실이 칠흑처럼 어둡지는 않았다. 건너편 아파트와 대로(大路)에서 들어오는 빛들이 거실 창을 지그시 데우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몇 시간째 잠을 못 자고 시달려서인지 머릿속은 꽉 막힌 무언가에 눌린 듯 무겁고 피곤했다.


  여느 때도 그렇지만 그날은 더욱 창백하고 힘들었다. 이대로 무의미하게 밤을 새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더 비참해질 테니까. 가족들이 모두 곤히 자고 있는데 소리를 내는 뭔가는 해서는 안 되었다. 나만 깊은 구덩이에 떨어진 것 같은 마음에 서글프고 외로웠다.


  거실에 있는 책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늘 나의 마지막 보루는 책이다.


  이 책 저 책 뒤적이는데 읽은 적이 없는 어떤 책이 보였다. 아내가 가져온 책인가 보다. 후루룩 책을 넘겨보았다. 예쁘장한 글들 가운데 명화들이 보였다. 아는 그림은 별로 없었지만 수록된 그림들이 왠지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그 책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숙면을 취해 본 적이 없다. 대개 잠을 설친다. 잠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잠든 내내 꿈에 시달린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다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한참을 뒤척인다.   (중략)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슬슬 걱정이 된다. 잠을 설친 다음 날 아침이면 신경이 칼끝처럼 곤두서기 때문이다. 위염이 도져 위도 쿡쿡 쑤신다.   (중략)

  수면제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중독이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불면 때문에 당장 닥쳐올 다음 날의 불편함을 방지하기 위해 나는 하는 수 없이 약을 털어 넣는다. 그렇게 한지가 벌써 여러 날이 되었다.

  “불면의 원인은 불안이에요.” 고심 끝에 찾아간 의사는 내게 말했다. “세상에 잠을 오게 하는 약이라는 건 없어요. 신경을 안정시킬 뿐이지요. 마음속 불안의 원인을 찾아내 없애는 것이 불면을 치유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내 불면의 가장 큰 원인이 ‘불안’이라......   (중략)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매일매일이 불안하다.   (중략)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에서 실패하게 될까 봐 불안하다. 내 삶에 ‘성공’의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을 세워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막연한 그 청사진은 있다. 이를테면 안온한 가정과 안정된 사회적 지위, 그로 인한 행복감 같은 것이다. 서른이 되면 그런 것들이 주어질 줄 알았는데 서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중략)

  모든 것이 평화로운 속에서 오직 나 하나만이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 새벽 세 시의 고독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그 어느 모퉁이에선가 다시 불안의 그림자가 불거질 것이다.  


 - 곽아람, 「그림이 그녀에게」, 아트북스, 2016, pp.46 ~ 51.


  독서를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대개 위로받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 속에서 주인공의 외로움과 아픔을 읽어낸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한다.


  불면이 나만의 주홍글씨가 아님에 반가웠다. 이 책을 계기로 작가를 따라 고심 끝에 의사를 찾았다. 그렇게 복용하기 시작한 의학적 기제는 내 일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세상은 둥글고 주어진 일은 생각하기에 달려 있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가수 '이소라'의 애잔하지만 서러운 흐느낌 같은 노래들을 BGM으로 틀면 작가의 감성이 잘 전달될 것 같다. 커피보다는 '캐모마일'이, 조명은 조금 어둡게 하고.


  책 표현을 그대로 가져오면, 79년생인 작가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취직을 하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2000년대 초 신문사 기자라는 직업은 여성 사회 초년생에게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나 보다. 작가는 그 느낌을 책 군데군데 많이 써 내려갔다.  


  그런데 작가 ‘곽아람’이 여성이어서 일까? 책에 있는 서른 점의 그림 대부분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그림에 작가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그녀 눈에는 굳게 닫힌 사회라는 담벼락과 그 너머에 보일 듯 말 듯 산들바람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중에서 특히 내 눈에 드는 그림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내 맘을 가져가 버렸다. 그림 속의 여인(초상화)은 매혹적이다. 도도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데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은 굳게 닫혀있다.



  단순히 ‘아름답다’라는 표현은 표피에 불과하다. 모든 남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그녀임에도 그 내면에는 닿을 수 없는 좌절감이 보인다. 그래서 더욱 자유분방하고 과장된 생활을 하였나 보다.   


  자꾸 생각이 나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결국 ‘타마라 드 렘피카'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일명 ‘녹색 부가티를 탄 타마라’)」을 구입했다. 작품을 내 손으로 받기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초조하게 배송 조회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작품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사무실 책상 에 걸려 있었다.



 

 위대한 화가의 일생을 이야기한 책 중에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가 있다. 「달과 6펜스」는 중학교 여름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쓰기 위해 처음 읽었다. 읽었다기보다는 숙제를 위해 ‘서평’이나 ‘작품 해설’을 참고했다는 표현이 사실에 더 가깝다. 그래서인지 책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우연히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책 제목이 왜 「달과 6펜스」인지 알게 된 것이 이번에 게 된 여러 것 중에 가장 큰 소득이었다.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또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이 은화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책 속 화자는 그가 문명과는 멀리 떨어진 원시의 섬에서 낙원의 비전을 보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믿음사, 2022, pp.309 ~ 310.




  책이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이지만 고갱은 고흐하고도 많은 접점이 있는 데다가 이름도 비슷하니 역시나 좋아하지 않을까?


  책 중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는 실제 고갱의 그것과 유사한 점도 있지만 고갱의 삶보다 훨씬 단순하면서도 극적으로 꾸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일상적 괴로움은 과감히 지웠다.


  '서머싯 몸'은 고갱의 낭만적 요소를 최대한 신비하게 만들었다.  책 속에서 찰스 스트릭랜드는 유한한 존재였으나 공간의 무한성과 시간의 영원성을 창조했다. 그는 죽었으나 영원히 살아남았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닿는 문장을 찾으면 무척 설렌다. 줄을 긋고 책갈피로 표시한다. 그러면서 ‘나는 언제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하는 부러움이 남는다. 「달과 6펜스」에서 찾은 오늘의 명문장이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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