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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Dec 06. 202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고양이가 바라보는 인간 세상

     

  요즘 고양이 관련 글들이 참 많다. 당장 브런치(brunch)만 해도 하루에 수십 편의 냥집사들 글이 올라온다. 그뿐이랴, 고양이 소재 책은 또 얼마나 많은지. 외계에서 지구를 침공한 쥐 괴물을 고양이와 함께 물리친다는 초등도서에서부터, 한국인이 사랑하는 ‘베르베르 베르나르’가 얼마 전 쓴 「고양이 1, 2권」,「문명 1, 2권」도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언젠가 내가 「문명」을 읽고 있었을 때 일이다. 내가 재미있게 보는 책이 뭔가 궁금해하던 딸애는 책 표지에 고양이가 있는 걸 보더니 한번 읽어보겠다는 것이다. (우리 집 ‘헛똑똑이’ 딸애가 고양이 팬덤이라는 것은 알만한 분은 아는 사실이다)


  난 좀 보다가 그만두겠지 생각하면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주었는데 딸애는 그날 저녁에 뚝딱 다 읽어 버렸다. 정말 고양이의 위대한 힘이 그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이 놀라운 현상을 좀 더 체험하고자 난 더욱 높은 단계의 고양이 책을 딸애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마땅한 책을 검색하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았다.


  여러 지면이나 사람들로부터 추천받았던 책이라 진작부터 읽겠다고 작정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책을 주문했다. 과연 딸애는 이 책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나는 고양이,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선가 어두컴컴하고 축축한 곳에서 야옹야옹 울던 기억만 남아있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람이라는 동물을 보았다.(중략) 그때 참 묘하게 생겼다고 느꼈는데, 그 느낌이 지금도 남아 있다. 우선 털로 장식되어야 할 얼굴이 반들반들하여 마치 주전자처럼 생겼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 한가운데가 너무 돌출되었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예출판사, 2021.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는 문학으로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대표적인 작가이다. 일본에서는 천 엔 지폐(1984~2004)에 초상이 실렸을 정도로, 그가 현대 일본인의 정신에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등단작이자 출세작이다. 본인이 직접 말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고양이로 대신하여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자전적인 글이다. 당시 서유럽의 ‘교양주의’ 열풍으로 개인주의와 위선적인 지식인들의 뻔뻔함을 드러내는 일본 사회를 풍자한 소설이라는 평가도 있다.


  책 속 고양이도 스스로는 자신을 '교양'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세상만사를 관찰하고 평가하는 고양이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공감이 가고 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차부(인력거) 집 검둥이라면 이 동네에서 모르는 자가 없는 깡패 고양이다. 그러나 차부라서 힘만 셌지 전혀 고양이 없으므로 교제하려는 이가 거의 없다. 교양 있는 고양이끼리 동맹하여 멀리 따돌리는 놈이다. 나는 그 이름을 듣고 좀 꼬리가 간지러운 느낌이 일어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소 경멸감도 생겼다.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모르는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영어 교사인 ‘구샤미’ 선생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면서 겪는 일과 구샤미 선생의 생활 그리고 선생을 찾아오는 친구, 제자,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생이란 정말 편한 직업이구나.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선생이 되는 것이 좋겠다. 저렇게 매일 빈둥거리며 지내면서도 선생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고양이라고 하지 못하란 법도 없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면서 고양이의 생활과 인간 생활을 묘사하며 사회를 풍자하고 인간들의 모순된 성향을 꼬집는다.


  인간은 무엇보다 다리가 네 개 있는데도 두 개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부터가 사치다. 네 다리로 걸어 다니면 그만큼 더 잘 갈 텐데, 언제나 두 개만 사용하고 남은 두 개는 머리와 꼬리를 뗀 포장용 대구처럼 어깨에 쓸데없이 늘어뜨리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이것으로 보면 인간은 고양이보다 훨씬 한심한 자들로, 지루한 나머지 그 같은 장난을 고안해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 책에서는 관찰 대상인 규사미 선생과 그 주변 인물들의 언행을 통해 삶, 고독, 사회 등에 관한 작가의 사색과 고찰을 엿볼 수 있다.


  지금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내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자나 깨나 생각하니까 자연히 탐정이나 도둑처럼 자각심이 강해지지. 종일 두리번두리번, 살금살금,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잠시도 안심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야. 문명의 저주야. 궁지에 빠진 꼴이지.


  옛사람들은 자기를 잊으라고 가르쳤었지. 지금 사람들은 자기를 잊지 말라고 가르치니까 정말 달라. 한시도 자기라는 의식을 내려놓지 못하고 늘 충만해 있지. 그러니 항시 태평할 때가 없잖은가. 언제나 초조하고 뜨거운 지옥이라네. 천하에 무엇이 약이라고 해도 자기를 잊는 것보다 좋은 약은 없는 걸. 초승달 아래 무아지경에 들어간다는 말은 이 지경을 읊은 것이네. 지금의 사람들은 친절을 베풀어도 자연스러움을 숨기고 있어.


  세상에는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일이 종종 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있으면 이겼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사이, 당사자의 인물로서의 가치는 훨씬 하락해버린다. 이상하게도 완고한 본인은 죽을 때까지 스스로는 면목을 세웠다는 참일 테지만, 그때 이후 남들이 경멸해 상대해주지 않을 거라고는 꿈에도 깨닫지 못한다. 당사자는 행복할 것이다. 이런 행복을 돼지의 행복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특히, 당시 군국주의 일본이 국민들에게 강요한 "대화혼"(大和魂, 일본 민족 고유의 용맹스러운 정신을 일컫는 말로, ‘야마토 다미시’라고 함)에 대해 고지식해 보이는 구샤미 선생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대화혼! 하고 외치며 일본인이 폐병 환자 같은 기침을 했다.
대화혼! 하고 신문기자가 말한다.
대화혼! 하고 소매치기가 말한다.(중략)

입에 담지 않는 이 아무도 없으나 누구도 본 것은 아니다. 모두가 들은 적은 있으나 아무도 만난 자가 없다. 대화혼 그것은 도깨비 같은 것인가?


  이야기 속 지식인들을 관찰하던 고양이는, 세상사에 관심 없는 척 초연해하면서도 삶에 대한 끈질긴 애착을 갈구하던 이 인간들을 조롱하듯 바라본다. 마지막 순간에 오히려 인간보다 더 삶과 죽음을 달관하여 생을 이별한다. 주인을 비웃고 세상을 풍자하던 고양이였지만 죽음을 대하는 그의 모습에 숙연함과 측은함이 솟아올랐다.


  죽는 것은 괴롭다. 그러나 죽을 수 없다면 더욱 괴롭다. 신경쇠약 국민에게는 살아 있는 것이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야. 따라서 죽음을 걱정하지. 죽는 것이 싫어서 고통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좋을지 걱정하는 거야.


  나는 죽는다. 죽어 태평을 얻는다. 태평은 죽어야 얻을 수 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모든 것이 고맙고 기쁘도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사실은 ‘나쓰메 소세키’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인생에 대한 담론이 담긴 철학서이다. 일본이라는 '공간'과 메이지 유신이라는 '시간'을 넘어 지금 우리들에게도 많은 사색을 전하고 있다.


  당대부터 지금까지 많은 아류작을 탄생시키며, 영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일본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이 작품이,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책 전체에 녹아들어 있는 유머러스하게 표현된 한바탕 지적 유희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겠지만, 끝으로 갈수록 점차 피력되는 국가와 개인, 근대 문명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야말로 이 책을 ‘고전’의 반열에 끌어올린 원동력이 되었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을 보며 인생에 대한 보편적 정감과 한계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반면, 딸애는 아니었나 보다. 처음 도입부는 재미있게 보는가 싶더니 중반으로 가면서 흥미를 잃고는 결국 책을 놓았다. 점점 심오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생각을 이제 열 살인 딸애가 이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다. 책은 책장에 계속 꽂혀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다시 딸애의 손에 들어 올려질 것이다. 그게 세상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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