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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Dec 14. 2022

크리스마스 선물

오 헨리. <동방 박사의 선물>


1달러 87센트. 그게 전부였다. 그중 60센트는 1센트짜리 동전들이었다. 식료품점이나 야채 가게, 정육점에서 어찌나 값을 깎았는지 구두쇠라는 무언의 비난 속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한두 개씩 모은 것들이었다. 델라는 동전들을 세 번이나 세어 보았다. 분명 1달러 87센트였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말이다.


   - 오 헨리, ' 헨리 단편집' 중 동방 박사의 선물 중에서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부부. 이 은 아내 ‘델라’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인데 남편 ‘제임스’에게 근사한 선물을 사주고 싶지만 돈이 부족하다는 것. 아끼고 아꼈지만 고작 1달러 87센트가 전부인 처량한 자신이 견디기 힘들다.


  서로를 자신보다 더 아끼는 이 부부에게는 크게 자부하는 재산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바의 여왕’이 가진 보석들도 무색하게 만드는 라의 <머리카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부에게서 물려받은, ‘솔로몬 왕’이 보았다면 부러워서 수염을 뽑아 뜯었을 제임스의 <금시계>였다.


  주급 8달러와 연봉 백만 달러의 차이가 뭘까? 수학자나 지혜가 풍부한 사람도 틀린 답을 줄 것이다. 동방 박사들은 값진 선물들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정답은 없었다.

   - 동방 박사의 선물 중에서



   

  이야기의 결말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내 라는 자신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의 금시계에 맞는 <시계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했는데, 남편 ‘제임스’는 자신의 금시계를 팔아 아내의 매력적인 머리카락을 장식할 <머리핀 세트>를 샀던 것이다.



  그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보관해 두어야 할 것이다. 바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좋은 것들이니까. 머리카락은 자랄 것이고 시계도 다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그들이 서로에게 준 사랑은 지금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서로를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희생한, 싸구려 아파트에 사는 어리석은 부부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를 서툴게 들려주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자 한다. 선물을 준 사람들 중에서 이 두 사람이 가장 지혜로웠다고, 선물을 주고받은 모든 사람들 중에 이 두 사람이 가장 지혜롭다고, 어느 곳에서든 이런 사람들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로 동방 박사들이다.

   - 동방 박사의 선물 중에서





  참으로 애통하고 답답할 일이다. 억울하고 원망스럽다. 지금 내 심정을 감히 일찍이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 선생께서 쓰신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에 비견하다고 말한다면 가당치도 않다고 호통치시려나.


  내게 나쁜 의도는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데 그 끝을 추측할 수 있겠는가. 해결책을 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일이 어찌 우리 집에서 일어났을까? 피할 수만 있다면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체하고 싶다. 생각할수록 의혹 투성이지만 곱씹어보면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미 한 번의 광풍이 지나간 들판에 우리 집이 아직까지 운 좋게 피해있었던 것이리라. 과연 우리 집은 이 태풍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광풍이 지나간 들판에서 나무들이 이리저리 갈피를 못잡고 있다. 마치 우리집처럼.




  “아빠, 나 올해는 산타할아버지한테 어떤 선물 달라고 기도할까?”


  “그건 네가 1년 동안 얼마나 착한 일을 했는지 산타할아버지가 판단해서 주시겠지.”


  “엄마는 너무 비싼 건 산타할아버지가 싫어할 거라고 하던데.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


  “그걸 아빠가 어떻게 아니! 아빠는 너처럼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아보지 못해서 그런 거 몰라.”


리차드 커티스가 만든 특별한 그림책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딸애의 무신경하면서도 속눈썹 아래 감춰진 날선 눈으로 나를 시험하는 듯한 물음에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대강 얼버무렸다. 그런 대답을 할 거라고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날 보면서 딸애는 아빠의 우둔함을 비웃듯이 직격탄을 날렸다.


  “우리 반 친구들이 그러는데, 나보고 동심(童心)이 아직도 남아 있다네. 산타할아버지는 모두 거짓말이고 부모님이 주는 거라는데!”


  “아빠가 아는 거라곤 이것뿐이야. 이 세상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고 생각하는 대로 이끌어  거라는 거지.”


  딸애는 지난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서 노래를 불렀다. 엄마, 아빠, 할머니 등에게 금액이나 목록을 보여주면서 미수금 받아내듯 당당하게 요구했다. 뭐 그거야 응해줄 용의도 있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카톡을 보낼 수도 없고. 온 세상이 다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주어야 한다는데 왜 나는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까?




   산타 할아버지는 왜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시지 않았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착한 일을 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부모님한테도 선물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별 게 없는 그저 어두컴컴했던 내 유년시절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떠오를 만한 선물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일 년에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 때만 선물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벌써 사단(事斷)이 나도 열두 번은 더 났을 것이다. 내 삶에 그 많던 위기와 문제 속에서도 지금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내 주위의 많은 분들의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신이기도 하고, 부모형제이기도 했다.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는 어느 서점 주인이기도 했고, 학교 친구이기도 했다. 물론 아내와 딸애는 현재진행형이다.


  소소했지만,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히 빌려 본 <비디오테이프>도 있었고, 신문지에 대충 포장해주었던 그 뜨거운 <옛날 통닭>도 있었다.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지만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던 <겨울 패딩>도 있었고, 얼마 안 되지만 유용하게 썼던 <용돈>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에 많이 있었다. 따뜻했던 그 마음들이.



  딸애만큼이나 나도 정말 궁금하다.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딸애에게 어떤 선물을 주실지. 아이가 생각하는 세상은 어떤 모양인 건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서로 아끼며 살아갈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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