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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선물

오 헨리. <동방 박사의 선물>

by 태현


1달러 87센트. 그게 전부였다. 그중 60센트는 1센트짜리 동전들이었다. 식료품점이나 야채 가게, 정육점에서 어찌나 값을 깎았는지 구두쇠라는 무언의 비난 속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한두 개씩 모은 것들이었다. 델라는 동전들을 세 번이나 세어 보았다. 분명 1달러 87센트였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말이다.


- 오 헨리, '오 헨리 단편집' 중 「동방 박사의 선물」 중에서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부부. 이 글은 아내 ‘델라’의 고민으로 시작한다. 크리스마스인데 남편 ‘제임스’에게 근사한 선물을 사주고 싶지만 돈이 부족하다는 것. 아끼고 아꼈지만 고작 1달러 87센트가 전부인 처량한 자신이 견디기 힘들다.


서로를 자신보다 더 아끼는 이 부부에게는 크게 자부하는 재산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시바의 여왕’이 가진 보석들도 무색하게 만드는 델라의 <머리카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조부에게서 물려받은, ‘솔로몬 왕’이 보았다면 부러워서 수염을 뽑아 뜯었을 제임스의 <금시계>였다.


주급 8달러와 연봉 백만 달러의 차이가 뭘까? 수학자나 지혜가 풍부한 사람도 틀린 답을 줄 것이다. 동방 박사들은 값진 선물들을 가지고 왔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정답은 없었다.

- 「동방 박사의 선물」 중에서



이야기의 결말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내 델라는 자신의 풍성한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의 금시계에 맞는 <시계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비했는데, 남편 ‘제임스’는 자신의 금시계를 팔아 아내의 매력적인 머리카락을 장식할 <머리핀 세트>를 샀던 것이다.



그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보관해 두어야 할 것이다. 바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좋은 것들이니까. 머리카락은 자랄 것이고 시계도 다시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 그들이 서로에게 준 사랑은 지금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서로를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희생한, 싸구려 아파트에 사는 어리석은 부부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를 서툴게 들려주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자 한다. 선물을 준 사람들 중에서 이 두 사람이 가장 지혜로웠다고, 선물을 주고받은 모든 사람들 중에 이 두 사람이 가장 지혜롭다고, 어느 곳에서든 이런 사람들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로 동방 박사들이다.

- 「동방 박사의 선물」 중에서





참으로 애통하고 답답할 일이다. 억울하고 원망스럽다. 지금 내 심정을 감히 일찍이 ‘황성신문’의 주필 장지연 선생께서 쓰신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에 비견하다고 말한다면 가당치도 않다고 호통치시려나.


내게 나쁜 의도는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데 그 끝을 추측할 수 있겠는가. 해결책을 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런 일이 어찌 우리 집에서 일어났을까? 피할 수만 있다면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체하고 싶다. 생각할수록 의혹 투성이지만 곱씹어보면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미 한 번의 광풍이 지나간 들판에 우리 집이 아직까지 운 좋게 피해있었던 것이리라. 과연 우리 집은 이 태풍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광풍이 지나간 들판에서 나무들이 이리저리 갈피를 못잡고 있다. 마치 우리집처럼.




“아빠, 나 올해는 산타할아버지한테 어떤 선물 달라고 기도할까?”


“그건 네가 1년 동안 얼마나 착한 일을 했는지 산타할아버지가 판단해서 주시겠지.”


“엄마는 너무 비싼 건 산타할아버지가 싫어할 거라고 하던데.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


“그걸 아빠가 어떻게 아니! 아빠는 너처럼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아보지 못해서 그런 거 몰라.”


리차드 커티스가 만든 특별한 그림책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딸애의 무신경하면서도 속눈썹 아래 감춰진 날선 눈으로 나를 시험하는 듯한 물음에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대강 얼버무렸다. 그런 대답을 할 거라고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날 보면서 딸애는 아빠의 우둔함을 비웃듯이 직격탄을 날렸다.


“우리 반 친구들이 그러는데, 나보고 동심(童心)이 아직도 남아 있다네. 산타할아버지는 모두 거짓말이고 부모님이 주는 거라는데!”


“아빠가 아는 거라곤 이것뿐이야. 이 세상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이고 생각하는 대로 이끌어 갈 거라는 거지.”


딸애는 지난 11월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서 노래를 불렀다. 엄마, 아빠, 할머니 등에게 금액이나 목록을 보여주면서 미수금 받아내듯 당당하게 요구했다. 뭐 그거야 응해줄 용의도 있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연락해야 하지?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카톡을 보낼 수도 없고. 온 세상이 다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산타 할아버지가 주어야 한다는데 왜 나는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을까?




산타 할아버지는 왜 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시지 않았을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착한 일을 하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일까, 가만 생각해보니 부모님한테도 선물을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별 게 없는 그저 어두컴컴했던 내 유년시절의 크리스마스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떠오를 만한 선물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일 년에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 때만 선물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벌써 사단(事斷)이 나도 열두 번은 더 났을 것이다. 내 삶에 그 많던 위기와 문제 속에서도 지금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내 주위의 많은 분들의 선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분은 신이기도 하고, 부모형제이기도 했다. 지금은 기억도 잘 안 나는 어느 서점 주인이기도 했고, 학교 친구이기도 했다. 물론 아내와 딸애는 현재진행형이다.


소소했지만, 크리스마스라고 특별히 빌려 본 <비디오테이프>도 있었고, 신문지에 대충 포장해주었던 그 뜨거운 <옛날 통닭>도 있었다.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지만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해 주었던 <겨울 패딩>도 있었고, 얼마 안 되지만 유용하게 썼던 <용돈>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에 많이 있었다. 따뜻했던 그 마음들이.



딸애만큼이나 나도 정말 궁금하다.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딸애에게 어떤 선물을 주실지. 아이가 생각하는 세상은 어떤 모양인 건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가족이 어떻게 서로 아끼며 살아갈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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