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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an 19. 2023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앨버트 앨리스'의 인지이론


앨리스가 계속 말을 이었다.
“여기서 나가는 길 좀 가르쳐 줄래?”
“그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달렸지.”
고양이가 대답했다.
“어디든 상관은 없는데…….”
앨리스가 말했다.
“그럼 아무 데나 가면 되지.”
고양이가 대꾸했다.
“어딘가 도착하기만 한다면야…….”
앨리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럼, 넌 분명히 도착하게 돼 있어. 오래 걷다 보면 말이야.”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인디고, 2020.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디즈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1951년)이나 ‘팀 버튼’ 감독의 실사 영화(2010년) 등으로 익숙하다. 게다가 작품 특유의 은유나 수학적 서사, 언어유희가 여전히 영화, 드라마, 온라인게임 등의 수많은 매체에 엄청난 영감을 주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명성에 비해 전체적인 전개나 줄거리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을 것이다. 원작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이다. 왜냐하면 책의 제목처럼, 이 소설의 스토리 전개나 인물들의 대화가 너무나도 ‘이상’하기에 좀 읽다가 대부분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중학교 1학년 때 이 작품을 읽어보려 시도해 보았지만 조금 보다가 재미없어 그만두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좀 전에 읽은 내용이 무엇인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얼마 거실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딸애의 책이 눈에 띄었다. 전에 <어린 왕자>와 함께 선물로 주었는데 정작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갑자기 읽고 싶어져서 책을 뽑아 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완독 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읽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나에게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이렇다 할 개연성 없는 상황들이 비논리적으로 계속 전개된다. 앞뒤 문맥이나 서사가 전혀 이어지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된 이야기의 나열이라 읽는 이가 혼란을 느끼고 더 나아가서는 불쾌함마저 느낄 수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전부 이상하다. 정상적인 면이 하나도 없다. 모험의 주인공인 앨리스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앨리스는 시계토끼를 발견하기 전부터 자신만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언니와 함께 강둑에 앉아 점점 따분해하던 앨리스는 어느 순간 조끼에서 시계를 꺼내는 토끼를 호기심으로 쫓아가면서 계속 기묘한 상황들에 맞닥뜨린다.


  토끼굴에 들어가면서도 빠져나올 생각보다는 토끼를 따라가려는 생각만 한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간 앨리스는 그곳에서 물약이나 음식을 먹으면서 몸이 커졌다가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동물들과 나누는 대화도 정신이 없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문의 말장난과 언어유희가 어색한 번역으로 인해 다른 문화권에 속한 나에겐 그 함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나 보다.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상식과 통념이 적용되지 않는 세상이 낯설다.


  책 속에서 앨리스 또한 이상한 나라를 이해하기 포기한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우려대로 판단 능력 자체를 상실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눈앞의 것들에 대해 화를 내거나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오히려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자약하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책을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이상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상한 진행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이상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오히려 내가 이상해서 그러지 않을까? 아니면 이상했으면 하는 이상한 내 머리가 이상할 수도 있다.


  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일 수 있다. 나에게 익숙한 세상에서 고정되고 편엽한 시각 속에 갇혀버린 내가 보인다. 난 좀 새로워지고 싶다.


  "이상함이 이상하다고 없어진다면 이상함이 아니지."



  

  <심리학> 이론 중에 ‘앨버트 앨리스’의 「ABC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앨리스는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REBT, Rational Emotive Behavior Therapy)를 정립하였는데 그 내용 중의 핵심이 「ABC이론」이다.


앨버트 앨리스


  앨리스 인지이론의 기본가정은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인 ‘에픽테투스(Epictetus)'의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보는 우리의 관점”이다.


   우리가 겪는 정신적 걱정의 원인은 부정적인 상황 때문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본인의 생각과 믿음으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만약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면 결과는 유익하거나 보통이겠지만, 사고가 비이성적이라면 결과는 나쁘고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A] (Activated events) : 선행 사건 (결과를 유발하는 사건)

[B] (Beliefs) : 신념체계 (특정 사건에 대해 개인이 지닌 사고방식이나 경험)

[C] (Consequences) : 결과 (선행 사건에 대해 개인이 경험하는 정서적 결과)

  

  우리가 받아들이는 결과[C]는 선행 사건[A]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태도 등의 신념체계[B]를 매개로 한 인지 과정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후에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해 보자.  앨리스에 따르면 우울증이라는 결과[C]는 이별이라는 선행 사건[A]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거부당했다는 실패에 대한 신념[B]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실을 알고 보니 사실은 몹쓸 병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택한 경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앨리스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인지와 정서, 행동을 바꾸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우리 자신이 (A)에 몰두하는 것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결과지점인 (C)에  함몰되어 세상에 대해 눈을 감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비합리적 신념인 (B)를 파악하여 도전하고, 수정하고, 뿌리째 뽑아내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이론의 시사점이다.




  앨버트 앨리스는 사람들이 가진 신념을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으로 분류했다.


  합리적인 신념체계를 갖춘 사람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른 행동의 결과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후 자신의 신념을 돌아보고 성장하는 기회를 갖는다.


  반면, 비합리적인 신념체계를 가진 사람은 일어난 일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그래서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비극적인 악순환을 지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 혹은 신념체계를 바탕으로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진다고 한다. 내 머릿속에 스치는 수많은 생각과 상념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여 격정적인 감정들은 흘려보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이 두 '앨리스'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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