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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an 29. 2023

겨울방학

잃어버린 놀이 문화

                       보물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는 너무나 짧아.


아침에 눈뜨며 마을 앞 공터에 모여,

매일 만나는 그 친구들.

비싸고 멋진 장난감 하나 없어도

하루 종일 재미있었어.


좁은 골목길 나지막한 뒷산 언덕도

매일 새로운 그 놀이터.

개울에 빠져 하나뿐인 옷을 버려도

깔깔대며 서로 웃었지.


어색한 표정에 단체사진 속에는 잊지 못할

내 어린 날 보물들.



-  강인봉 작사, 작곡. '너에게 난, 나에게 넌’으로 유명한 포크밴드 <자전거 탄 풍경>이 부른 노래.



  우리 집에서 ‘요술방망이’를 부리는 딸애는 요즘 겨울방학 중이다. 방학이라고 좋아하던 모습이 얼마 전인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다행히 딸애가 다니는 학교는 봄방학 없이 2월까지 계속 겨울방학이다. 학생들도 좋겠지만 학교 관계자들도 무척 기쁘지 않을까 싶다. 왜 ‘나때는’ 이런 선진 시스템을 운용하지 않았을까? 부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방학숙제가 별로 없다. 역시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교육적 선택일 것이다. 방학식 날 가져온 안내장 속에는 깨알 같은 글씨들이 가득 적힌 과제물 목록이 있었지만, 실상은 그중에서 원하는 것 한 가지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자기주도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유년기의 ‘창의성’을 고양하고자 하는 학교의 고매한 교육이념에서 나왔을 거라 믿어 의심해(?) 본다.




  방학기간도 길고 숙제도 부담 없는데 정작 딸애의 요즘 생활을 가만히 지켜보면 방학이라고 별로 즐거운 것 같지 않다. 학교를 안 가면서 오히려 친구들을 만나기 어려워졌다.


  집 근처 놀이터에서 친구를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초등생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연유도 있지만, 마음 놓고 자녀들이 집 밖에서 뛰놀도록 허락하기 어려운 사회적 불안감이 아이들을 더욱 고립되게 만든다.


  주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다 보니 자연히 딸애는 스마트폰으로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만나는 세상은 어찌 이렇게 즐겁고 유혹적인지. 한마디로 별천지이다.


딸애의 최애 온라인게임, "포켓몬 유나이트". 5명씩 한 팀이 되어 10분 정도 대전을 하여 높은 스코어를 얻은 팀이 승리한다.

 

  공간을 우회하고 시간을 통과하여 만나는 별천지에서 딸애는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 일어서는 것도 먹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씻는 것도,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잊어버린다. 가끔은 엄마, 아빠도 관심 없는 듯 현실세계로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비단 우리 집만의 모습은 아니겠지만 보는 부모입장에서는 그냥 모른 체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이 불안감에 스스로 무릎 꿇은 부모들의 초조함이 내리는 결론은 결국 자녀들의 자유시간을 줄여 자기 결정권을 빼앗는 것이다.


  자녀들의 학습을 높이고 신체활동의 기회를 더 부여한다지만, 기실 그 속마음은 자신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모들의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에 다니는 영어, 피아노, 미술 학원과 수학 학습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사반대를 외치는 딸애를 겨우 어르고 달래 일부 활동을 추가했다.


  가장 큰 걱정인 딸애의 운동 부족을 메우기 위해 매주 한 번 가던 수영강습을 두 번 가게 했다. 점점 어려워지는 어휘를 배우기 위해 한문 학습지를 추가로 늘렸다. 따로 공부를 안 하던 국어는 서점에서 선행학습 문제지를 사서 하루에 한 장씩 풀게 하였다.


  엄마, 아빠의 ‘당근과 채찍’ 전략에 어영부영 넘어간 딸애였지만 막상 부딪혀 보니 본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빡빡해진 상황에 딸애의 입에서는 ‘킹받네’, ‘하기 싫어’가 절로 나왔다.


  그런 딸애를 보면서 겉으로는 잔소리를 하지만 속으로는 어쩐지 측은함이 생기는 나를 발견한다. 문제의 본질은 학습을 위한 계획이 아니라 놀고 쉬는 시간에 대한 계획의 부재였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딱히 부모가 놀아주거나 무언가를 계획해서 놀잇감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특히 일하러 나가느라 바쁜 부모님은 집에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챙겨 놓으면 그만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숙제를 하고 나서 부모가 돌아올 때까지 뭔가를 하며 놀아야 했다.


  학원도 그리 흔하지 않았던 시절, 혼자 집에서 숙제나 책을 읽기엔 뭔가 심심했다. 학교 운동장이나 동네 공터를 배회하다 보면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가기만 하면 동네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때는 뭘 하든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비싼 장난감 하나 없어도 아이들은 동네 공터나 신작로, 야트막한 동산, 도랑, 철둑길 아래, 논두렁 어디에서든 잘 놀았다. 학교 다녀오면 책가방을 던져놓기 무섭게 집 밖으로 나와 “○○야 놀자~” “○○놀이할 사람 여기 붙어라” 외치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이들이 하나, 둘 골목길로 모여들었다.


  길 위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나무작대기, 고무줄 한 가닥, 버려진 깡통, 우두커니 서 있는 전신주까지도 훌륭한 놀이도구였다. 거의 40여 년 전 내가 놀던 동네 좁은 골목길은 어두워질 때까지 개구쟁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뛰노는 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딱지치기
오징어게임
비석치기

  그래서일까. 내가 어렸을 때는 부모가 곁에 있지 않아도 아이들은 서로 모여 놀았기에 저절로 사회성을 습득하였다. 친구들과 놀면서 나름의 적응력을 키우고 상황에 걸맞게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삶을 배워 나갔다.




  그에 비해 요즘 세상은 무척 갑갑하다. 학생들을 보호한다며 학교는 교문을 높였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교문 앞에 와 있는 엄마 손에 이끌려 바로 집으로 가거나 학원 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딸애는 막 코로나가 터졌을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코로나 세대'이다. 덕분에 1학년때는 거의 등교하지 못했고, 그 이후엔 비록 등교는 했지만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지금은 학사 일정이 거의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왔지만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의 인식은 이미 고착화되었다.


  부모들은 집을 아이들에게 개방하기 꺼리고, 자녀들이 밖에서 노는 것도 조심스럽다. 아주 가까운 친구 엄마들끼리 어쩌다 시간이 맞아 키즈 카페에라도 가는 날은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아이들은 같은 반 학우들의 이름도 다 모른다. 물론 같이 신나게 뛰어다닐 일도 거의 없다. 오히려 학원 셔틀버스로 이동 중에 만나는 친구들과 더 많은 놀이와 대화를 한다. 그리고 그게 전부이다.


  한 달에 몇 번 딸애가 친구를 집에 데려온다. 그래봤자 한두 명이다. 요즘 분위기를 고려하면 그것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모여서 할 수 있는 놀이나 활동은 별로 없다.


  천지개벽에 가깝게 급변한 세상에 살면서 전 생각을 붙잡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는 걸 알면서도 입맛이 쓰디쓴 건 어쩔 수 없다.

  

그 시절 최고의 인기템 "스카이콩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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