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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Mar 19. 2023

나에게 물어 본다

퇴근길의 잔상

많이 닮아있는 건 같으니?
어렸을 적 그리던 네 모습과
순수한 열정을 소망해 오던
푸른 가슴의 그 꼬마 아이와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으려
피해가지 않으려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본다
부끄럽지 않도록
불행하지 않도록
더 늦지 않도록



<물어본다>는 대한민국 뮤지션 이승환이 2004년 발표한 8번째 스튜디오 앨범 'Karma'에 수록된 곡이다. 이승환이 작사, 프로듀서를 맡았고 이승환이 1집을 제작했던 정지찬이 작곡했다.  




  

  사방이 어둑어둑하다. 아직 완전히 칠흑 속에 묻히지 않았지만 그리 되기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거대한 벌레의 체절(體節) 인양 길게 늘어선 덩어리들이 한없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가 한 무리가 움직이고 또 잠시 기다리고.


  자세히 보면 상당히 규칙적이다. 붉은 느낌이었던 각 덩어리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면 좀 더 밝은 느낌을 주면서 뒤따라오는 무리들을 인도한다. 다들 앞만 보고 따라갈 뿐 그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퇴근 무렵의 시내 교통상황은 늘 그렇듯 답답하기 그지없다. 빽빽이 늘어선 앞 차들의 행렬을 보고 있노라면 내 생애에는 이 자리를 못 벗어날 것 같은 숨 막힘이 밀려오다가도 갑자기 시원스럽게 터지는 빈자리를 보며 나도 영혼 없이 그 뒤꽁무니를 따라간다.


 

  무슨 소리라도 나지 않는다면 영원히 이 적막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숨 막힘에 본능적으로 라디오를 켰다. 다행히 바로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운이 좋다. 평소 좋아하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당분간 조금은 위로가 될 것이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서서히 저물어 간다.    




  아무 생각 없이 앞 차 후미등만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라디오에서 들리는 그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부르고 있다. 가수 ‘이승환’처럼 멋지게 샤우팅 하지는 못하지만 내 안의 고민과 한숨을 노래에 맞춰 내 몸 밖으로 보낸다.   


어른이 되어가는 사이
현실과 마주쳤을 때
......


  이 노래는 가끔씩 매너리즘에 빠졌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 들으면 의미 있는 지혜를 준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노래를 듣다 보면 나에게 스스로 물어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 나이어 왔는지
나에게 물어 본다
......


  그래 물어봐야 한다. 격동의 세계는 아니었지만 다른 인생들만큼이나 숨 가쁘게 지나온 내 시간들을 회고해 보면 뭔가 이질적인 거부감이 있다. 과연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던가.


  그저 앞 차 후미등만 좇아 신호등도 안 보고 달려온 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옆 차선의 자동차가 내 앞으로 끼어들까 봐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차에 비해 그리 늦지는 않았지만 왠지 지나온 길에 뭔가 중요한 걸 떨어뜨리고 온 건 아닌지 또 다른 조바심에 시달린다.


  요즘 내가 자주 무력감이나 자괴감에 빠지는 것도 알고 보면 이와 무관치 않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지, 나의 '무엇'을 긍지로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좋다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버티며 살아 왔다.


  그 ‘무엇’에 대한 고민을 해야할  때 미처 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왔기에 막상 이 만큼의 인생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허전하다. 반평생보다 더 살아왔는데 뒤늦게 이런 회의감에 빠져든 내가 어이없다.


  마치 2000피스 직소퍼즐을 어렵게 맞추었지만 몇 조각을 잃어버려 완성시킬 수 없는 허망함만 남았다고 할까.   

 

  그래도 힘들 때마다 끊임없이 물어보면, 적어도 힘든 상황 때문에 어긋난 방향으로 끌려가는 오류는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이 힘들 땐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거기서부터 다시 길을 찾아 떠날 용기와 지혜를 얻게 되리라. 




  몇 달 동안 추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웃음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추위는 일조량을 줄이면서 신경전달 물질인 ‘멜라토닌’의 체내 분비량을 감소시킨다. 이 물질은 신체리듬을 조율하기 때문에 분비량이 줄면 기분이 우울해진다.


  지난겨울은 춥고 지루하게 길었다. TV도 너튜브도 내 우울함을 감당하지 못하자 난 책을 읽었다. 암울한 현실을 되새기는 이야기보다는 현실 너머의 이야기가 더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SF나 판타지 계열만 골라 탐독했다.


  ‘아서 C. 클라크’의「스페이스 오디세이」시리즈, ‘N.K. 제미슨’의 「부서진 대륙」 시리즈,  '발터 뫼르스'의  「잃어버린 은띠를 찾아서, 책들의 꿈꾸는 미로, ‘켄 리우’의 「제국의 위엄」 시리즈나 「종이 동물원」 같은 단편들 그리고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까지.

 



  잠시라도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가상의 세계로 도망쳤지만 알고 보니 그 세계도 현실의 연장선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구축해도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과 고민과 아픔과의 인연을 끊을 수 없나 보다.


 

  인간만이 이야기를 짓고 들려주고 기억한다고 한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가 만든 장대한 판타지의 주인공이다.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일을 이해하도록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시간의 강을 건너가는 동안 길잡이가 되어 준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짓고 있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야심 차게 시작한 도피행위도 결국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나는 어느새 예전의 내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약간의 서글픔이 다가온다. 내면의 내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음을 기약하자고 손을 내밀어 준 것이다.


  또 한 번의 ‘마음의 감기’를 치른 것이다.  




  이제는 진짜 봄이 왔나 보다. 업무 핑계로 공원에 나가보면 새싹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지난겨울 동안 꽁꽁 얼었던 그 땅을 어떻게 어루만졌는지 가늠도 할 수 없게 한 점 부드러운 곳을 비집고 연신 반가운 숨을 드러냈다. 나도 모르게 엷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웃음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만병통치약이다. 웃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양을 줄여주고 대신 우리 몸에 유익한 엔도르핀, 엔케팔린, 인터페론감마, 내추럴킬러 세포(NK)등의 분비를 증가시킴으로써 암 등 각종 질병을 예방한다고 한다.


  그저 웃기만 해도 얼굴의 수많은 근육이 움직이면서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 밝은 표정으로 이미지 변화와 혈액순환을 개선해 준다. 무엇보다 웃음은 고민을 잊게 하고 긴장감을 없애 성격을 밝게 하고, 마음에 평안을 준다.


  옛말에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로일로(一怒一老)’라는 말이 있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성내면 한 번 늙는다는 뜻이다.


  서로 좋은 말과 미소를 주고받으며 살기에도 인생은 결코 길지 않은데 화내며 살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그 또한 쉽지 않다.




 요즘 우리 집엔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애 덕분에 웃음이 줄어들고 근심이 늘어났다. 그동안 우리 집 엔도르핀이었던 딸애가 오히려 ‘초4병’의 감염원이 되어 집안을 어둡게 만든다. 아내와 나는 무서운 바이러스 균에 넘어지고 쓰러졌다가 힘겹게 일어서려는 중이다.


 

  그러나 이것도 반드시 거쳐야 할 삶의 단계이리라 믿어본다. 어디 맘껏 그 위세를 떨쳐 보라고 조언까지 한다. 혹시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 보았는가? 


  모든 것엔 다 그만큼의 숙명이 있다. 어쭙잖게 시간의 진리를 회피하고자 하다간 나같이 다 큰 어른이 '오춘기'에 걸려 웃기지도 않은 청승을 떨게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시간은 조물주와 밀접히 관련이 있다. 모든 시간대 속에서 존재하는 조물주는 우리에게 시련이자 기회를 주었다. 각자에게 각자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그것도 단 한 번만.


   과연 나는 조물주의 기회를 잘 헤아려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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