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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pr 06. 2023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걱정은 '용'과 같다.





  어찌 보면 ‘시조’의 한 구절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기도문’의 한 부분처럼 보이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은 금본위제도에서 제시된 경제학 이론이다.


  16세기 영국 근대화를 이끈 엘리자베스 1세는 날로 증가하는 영국의 해외무역 결제수단으로 은을 사용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은이 품귀현상을 보이는 것을 보고 당시 금융업자이며 재정고문으로 있던 토마스 그레샴에게 이 원인을 밝히라는 명을 내렸다.


  당시 영국은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순도가 낮은 은을 생산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상인들은 순도가 높은 은은 자신이 보유하고 순도가 낮은 은만 거래에 이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악화(순도가 낮은 은)가 양화(순도가 높은 은)를 구축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과학적인 주조 및 위폐방지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의, 전근대에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이었다. 금화 끝을 미세하게 갈아내거나 성분을 달리 해서 주조하는 등 화폐 위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어났다.


  따라서 근대 이전 은행과 금융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직업 중 하나는 화폐 및 금속 감별사였다. 또한, 화폐를 위조하는 일은 국가경제를 혼란에 빠트리는 일이므로 매우 엄하게 다스렸다.




  그 후 지폐 시대가 열리면서 경제학상의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역선택이나 정보 비대칭성 등으로 같은 종류의 정책 또는 상품 중에서 나쁜 것이 좋은 것을 압도하는 사회 병리 현상에 대한 역설을 설명할 때 관용적으로 그레샴의 법칙을 여전히 예로 든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동등하게 취급된다면 시장에서 좋은 것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불법 다운로드가 일상화되면서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정품이 사라지고, 인력관리에 소홀한 회사에서 자질이 우수한 인재는 떠나고 열등한 인력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관리자가 정책을 결정할 때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정책(양화)을 택하지 않고, 단기적이고 정형화된 쉬운 정책(악화)만을 고집해서 조직이나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도록 그냥 방치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나 또한 진실한 사람이 아니다. 정의란 과연 구현 가능한 개념인가?





  세상이 참 험악해졌다. 교육의 기회가 넓어지고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정보접근이 보다 용이해진 세상에 살기에 사람들의 심성도 발전할 것 같은데 오히려 퇴보한 느낌이다.


  그레샴의 법칙은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악한 사람, 후안무치의 철면피한 사람이 양심 바르고 착하고 마음 여린 사람을 구축한다. 원색적 표현, 음해성 루머들이 무서운 속도로 떠돌아다니면서 선량한 피해자들을 만든다.


  더 나아가 생각이 같지 않거나 자기 뜻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우리와 같지 않으니 틀리다’ 식으로 편 가르기를 한다. 상대방에 대한 원색적 비난은 물론 부정적인 집단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SNS의 발달과 비대면 기술은 타인을 저주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악플이 대표적이다. 그로 인해 정치인에서부터 유명 연예인, 심지어 어린 학생까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등지는 일까지 종종 발생한다.

  

  아주 가끔씩이지만 딸애가 자기 주변 얘기를 들려줄 때가 있다. 겉으론 심드렁하게 별 관심 없는 듯 듣고 있지만 마음속으론 여간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악화로부터 구축되지 않기를......




  세상이 점점 복잡하고 현란해져 간다. 과연 내가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게 옳은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요즘 들어 회사에서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이나 방식들이 과연 적절했던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알고 행했던 남편이나 아버지의 역할이 잘못되었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나는 습관적으로 뭔가를 걱정한다. 걱정은 뭔가가 자신이 원치 않는 특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걸 상상하는 것이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현상에 대한 짐작이다. 그러다가 실제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결과를 예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쾌한 결과를 가져다주는 일은 세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려면 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걱정은 ‘용’과 같다.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실존하지는 않는 용 말이다. 내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용(악화)을 구축해야겠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할 일은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현실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걱정들의 공격을 견디는 게 아니라 내 믿음이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바라는 것, 하고 싶은 열망이  올바른 기회를 얻기까지 버텨 보자.


  포스당신과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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