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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an 02. 2025

고도를 기다리며

#표지 그림: 가브리엘레 뮌터, <새들의 아침식사>, 1934.



에스트라공: 나는 이런 짓을 계속할 수 없네.
블라디미르: 그것은 자네 생각이지.

블라디미르: 우린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네.
에스트라공: 어딜 가도 마찬가지지.
블라디미르: 고고, 그런 소리 말게. 내일이면 다 잘 될 거니까.
에스트라공: 잘 된다고? 왜?
블라디미르: 자네 그 꼬마가 하는 얘기 못 들었나?
에스트라공: 못 들었네.
블라디미르: 그 놈이 말하길 '고도가 내일 온다'는군. 그게 무슨 뜻이겠나?
에스트라공: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지, 뭐.

블라디미르: 내일 같이 목이나 매세. 고도가 안 온다면 말이야.
에스트라공: 고도가 오면?
블라디미르: 그럼 사는 거지    


-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중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중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인 『고도를 기다리며』 는 1969년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대표적인 부조리극이다. 그는 작품에서 인간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드러내어 인간에게 존재의 부조리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했다.


  이런 부조리극은 사회적 위치나 역사와 격리되어 있는, 환경에서 단절되어 버린 인간이 자기 존재의 근원적 상황과 대결하고 또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절박한 행위나 행위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시시포스가 신의 형벌을 받아 평생 바위를 산 정상을 향해 밀어 올리는 것처럼, 작품 속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50년 동안이나 오지도 않는 '고도(Godot)'를 계속 기다리고 있다.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밝혀지지 않은 채 ‘고도’라는 인물은 끝내 등장하지 않고 단지 소년 전령을 통해 오늘은 못 오고 내일은 꼭 온다는 전갈로 극이 마무리된다.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1969.



     

  요즘 합리적인 토론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가 나아갈 수 있는 여러 방향성을 열어놓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의 방향이 무조건 옳다고 확신하며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닫고 있다.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고통인 우리들의 일상!


  정치의 유일한 목적은 내 편의 승리와 상대 진영의 섬멸이 되었다. 극성 지지자들은 특정 정치인이 마치 ''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받든다. 그 인물의 나쁜 면모는 모두 신비로운 인식의 필터를 거치면서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 혹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현대에서도 종교는 전혀 쇠퇴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 곧 종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는 언제나 온갖 맹신이 존재해 왔다. 각종 사이비 과학부터 시작해서 극단적인 철학 사상이나 포퓰리즘 정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일은 계속 있어 왔다.


  사실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크고 위협적인 동물을 마주친 상황에서 도망칠지 아니면 맞서 싸울지 순간적으로 결정해야 했다.


  이밖에도 생존을 위해서는 결론을 열어놓고 계속 고민하기보다는 확실한 결정을 내리고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을 거다. 따라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종결 욕구를 발전시켰다.

      

  결국 인간은 심리적 안정감이 떨어지는 상황보다는 확실성을 좇고 어떤 체계를 맹신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쉬워 보이는 해결책, 당장 확실한 미래를 약속하는 해결책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렇게 포퓰리즘과 선동에 취약한 사회, 근시안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바로 이런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치사회적 불안정은 비단 '대한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독일'은 총리가 불신임되어 조기총선이 결정되었고 '프랑스'도 총리가 불신임되어 대통령  퇴진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캐나다'는 부총리 사퇴에 따른 총리 사퇴 압박이 가중되고 있고, 심지어 '미국' 같은 초강대국에서조차도 극단주의 정치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소통이 점점 줄어드는 문제의 원인이 '공감능력'의 상실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성공을 유일한 최상위 가치로 여기며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서 인정과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의 실패가 나의 성공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의 실수나 실패에 위로와 격려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쾌재를 외치는 분위기가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다.      

     

  개인의 이익과 욕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이 감소하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적 유대감이 약화되고, 사회적 연대와 협력이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여느 해처럼 올해도 회사에서는 종무식이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서일까, 연신 시계만 볼 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올 한 해도 결국 해내지 못한 많은 것들을 헤아리며 무거운 마음으로 행사장인 대강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점심때 먹은 음식이 체한 것처럼 이 답답하고 속을 조여 오는 불쾌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먼저 한 해 동안 각 분야별로 열심히 근무한 부서나 팀들을 위한 시상식이 있었다.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직원들이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회사와 주민들 위해 맡은 바 업무를 성실히 하고 있음에 절로 박수가 쳐졌다.


우리 회사 종무식

  한 해를 마감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짧게 제작된 자체 동영상 시청 후에 곧 사장님의 직원들에 대한 종무식 인사가 있었다. 원래는 미리 작성된 원고를 읽기로 되어 있었으나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는지 담담히 즉석으로 자리에서 떠오르는 말씀을 하셨는데 들을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니 울적해졌다.


  "올 한 해를 돌이켜보니 지난 어느 해보다도 중요하고도 이루기 힘든 일들을 여러분과 해왔다는 생각에 정말 여러분들에게 자랑스럽고 감사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허나 우리들이 지난 1년간 해온 그 많은 일들을 과연 주민들은 기억이나 할까요? 12월에 갑자기 벌어진 계엄과 탄핵 그리고 무안 항공기 참사까지, 모두의 기억에 2024년은 12월만 남을 것 같아 안타깝고 서글픈 마음뿐입니다."




  또 그렇게 새해가 왔고 언제나처럼 신년 '해맞이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새벽에 산에 올랐다. 예년과 다른 것은 무안 항공기 참사로 인해 회사에서 진행하는 행사는 취소되었고 다만 혹시나 자발적으로 오는 주민들의 안전사고 예방차원에서 차출되었을 뿐이었다.


  올해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새해 첫날은 아왔으나 기다리던 일출은 볼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동해 바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리산 천왕봉도 아닌 그냥 아파트 뒷동산에 오르면서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매년 허탕 치면서도 매년 올라오는 '그들'은 과연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들'에게서 희망을 찾고 싶다. 저기 여의도에 있는 그 잘난 사람들이 아닌, 우러러 볼만한 경력도 부러워할 만한 능력도 없지만 순리대로 상식에 맞게 사는. 새해에 또다시 자신의 '고도(Godot)' 기다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기다림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2025년 새해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고도는 끝없는 기다림이다. 우리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다. 쉽게 행복하거나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고도가 왔는데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도를 마냥 기다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부터 고도를 잊고 살았을까? 나의 고도는 무엇이었을까? 우리 가족의 건강? 일상의 평온함? 직장에서의 원만한 근무?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모습? 무도(無道)사람들을 이상 안 보게 외국으로 이민?


  희곡을 읽은 나는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50년 동안이나 오지도 않는 '고도'를 서로 동문서답하며 계속 기다리는 모습에 답답하다 못해 불쌍함을 느꼈지만, 정작 안타까운 사람은 바로 자신만의 '고도' 하나 없이 매 순간을 살아가는 내가 아닐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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