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 밥돌이

진양호(晉陽湖) 둘레길

by 무우

1.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은 밥돌이


마당의 석류가 불쌍해 보인다. 겨울 한기 북쪽으로 밀려나면 언 땅 밑의 뿌리로 봄이 스며들고 물오르면 새로운 눈을 틔울 것인데, 지난여름의 절정을 아쉬워하는지 흙색으로 변해버린 메마른 꽃송이를 떨치지 못하고 서 있다. 장인어른이 키우던 곰솔(해송) 분재가 나에게 왔다. 고슴도치 가시 같은 뾰족한 이파리로 투명한 한기(寒氣)를 찔러 겨울의 피를 내 얼굴 위로 쏟았다. 볼이 맵고 따갑다. 며칠째 날이 춥다. 어젯밤 암막커튼 뚫고 들어온 한기가 어깨를 짓눌러 몸이 어 실어 실 했다. 오리털 패딩으로 부풀어진 어깨가 자꾸 수그러진다.


새로 산 카메라를 시험한다는 핑계로 집을 나섰다. 등 뒤 대문 닫힘의 날카로운 금속음이 발길을 되돌릴 수 없도록 체크밸브가 되었다. 어둠 걷힌 동쪽하늘의 햇살 광선이 부챗살 모양으로 퍼졌다. 앞집 지붕의 붉은 기와 처마 아래서 쏟아져 나온 참새들이 전깃줄 위에 나란히 앉았다. 깃털 속에 스며든 어둠을 떨치기 위해 연신 날개깃을 다듬었다.


'내일은 나의 몽매함과 살아 있는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탐미하려 집을 나선다'라는 거창한 목표를 지난밤에 세웠었다. 교대근무 후유증인지 나이트 근무를 4일 하는 것이 어느덧 습관화되었다. 그렇게 밥벌이 내 교대근무 인생이 증발되고 있었다.


아내가 2층 창가에서 손을 흔들었다. 거금을 주고 산 카메라를 들어 보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쉬는 날 매 끼니의 밥상을 차려라 하는 교대근무 밥돌이 남편의 까탈로부터 하루라도 해방하는 마음이 우선하는 것으로 포장했다. 아내를 구박하는 반 페미니스트는 아닌데 아내를 위한 작은 배려로 보이기 위한 이중적 행위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양호 아래 남강습지 생태공원길을 걸었다. 사진 찍기라는 낭만적 도전으로 내 삶의 기쁨이 발견될 수 있기를 바라며 세상을 카메라의 틀 안에 담았다. 영화 '아바타'에서 제이크의 아바타가 촉수로 식물이나 동물들과 교감하는 것처럼 내 딱딱한 발바닥 피부 저 안의 세포들이 말미잘 촉수처럼 자연의 돌과 흙을 잡으려 애쓰는지 발바닥이 간질거리고 땀이 났다.



2. 디지털 철기시대를 맞다.


나는 내 아이들이 훌쩍훌쩍 자라는 것이 때론 두려울 때가 있다. 아이들의 세상에 대한 넓어진 동경(憧憬). 즉, 지적욕망의 탐구활동이 내가 가진 지식을 훌쩍 뛰어넘을 때가 점점 많아졌다. 내가 가진 지식의 밑바닥이 확인되는 남루한 순간이 올까 겁이 났다. 그러나 다행히도 디지털 청동기 시대를 커버할 수 있는 Dr' 네이버와 Dr' 구글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채워 줄 충분한 지식을 가졌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미래 세상을 살아갈 내 아이들이 그저 디지털의 감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지 약간은 걱정이 앞선다. 디지털의 발전 속도가 사회적, 인간적 관계를 끊어버리면 안 되는데 디지털 철기시대를 잘 살아가길 기도해 본다.


디지털 청동기 시대가 마감되고 있다. 열정적인 세상의 선구자들이 다이내믹한 디지털 철기시대를 알리기 위해 내놓은 스마트폰의 등장은 디지털 기계치인 나에게 쓰나미급 현기증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아직도 디지털 청동기 시대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나로서는 스마트폰 부적격자가 되진 않을까 하는 조바심마저 든다. 다행히 새로 산 카메라가 디지털 철기시대를 여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니 마음의 위안이 되기에 충분하다 자만했다. 자연의 시간적 질감과 표정들을 사진틀 속에 가두고자 시작된 나의 사진 찍기 활동이 내 생애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 단정 지으며 지금을 프레임에 가두었다.



3. 지리(地理)


'지리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다'라고 써진 글귀를 책에서 읽었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자기 과신이 오판을 불러일으키고 과대해석을 낳을 수 있다는 조용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진주문고 매대의 40% 세일 표지판 아래 가득 쌓여 있었다. 나의 과오(過誤)조차도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인 내가 겸손이라는 한 조각 편린을 배낭에 담을 수 있는 행운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이 남은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인데 저렴한 가격에 좋은 글을 얻으니 통장에 쌓여가는 잔고처럼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산들의 부푼 기운이 파란 한기에 눌러져서 산등성이와 골이 뚜렷했다. 멀리 북쪽 하늘아래 늙은 산 정상의 흰 눈이 우뚝하게 빛나서 경계의 푸른빛을 갈랐다. 지리산은 웅장했다. 물박물관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등산로 아래는 남강(南江)의 자유사행을 이끄는 암벽 단애(斷崖)가 멋졌다.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연결된 작은 오솔길은 오름과 내림을 반복했고 볕이 잘 드는 산 밭에는 매실꽃이 개화를 서둘렀다.


진주 진양호(晉陽湖)는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80리 물길인 경호강과 지리산 천왕봉 아래 샘물에서 시작되어 곰도 떨어져 죽는다는 웅석봉 협곡을 지나온 덕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다. 칠봉산 정상에서 본 경치는 낯선 육지 속의 바다였다. 정자에 앉아 프레임 속에 시공(時空)을 담았다. 바위나 돌멩이 같은 객관적 사물이 아니라 사람인 타인의 시공(施工)에 의해 만들어진 콘크리트 덩어리 숲도 LCD 화면 속에 담았다. 급경사면으로 이루어진 단애(斷崖) 암벽을 따라 강이 자유사행하며 낙동강으로 흘러갔다. 돌아오는 길 세월에 굳어버린 단단함을 벗겨내고 있는 하성충적지(河成沖積地) 위에 시공(施工)된 신석기 유적지 발굴현장을 찾았다. 벗겨 낸 지표면 위로 살았던 흔적들이 재단을 한 것처럼 또렸했다. 21세기와 신석기시대 시공(時空)의 가장자리에 섰다. 그리고 삶의 영원성을 카메라 메모리에 차곡차곡 저장했다. 살았던 것들과 살아있는 것들의 무늬를 만든 강의 수면에 빛의 파편들이 난반사되었다.



4. 일신(日新)


현재의 나는 일상의 의미를 박탈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지라 나의 삶에서 지속적인 의미 탐색의 기회를 가지고 싶었다. 별날 것도 없는 메마르고 사실적인 겨울의 일상을 사는 내가 오늘의 이벤트에 대하여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는 이유였다.


「매일이 새로워야 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다. - 아산 정주영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폐쇄적인 지리적 울타리에 집착하다 보면 심리사회적 박탈감을 겪게 될 것이 자못 분명하다.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도록 부유하게 살고자 한다면 착한 일을 하고, 아름다운 인연을 맺고, 나날이 적고, 때론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살아야 한다. 직선과 곡선, 단순함과 복잡함, 우직함과 예민함의 극단에 대한 탐구를 위해 세상 생명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자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볼 것이다.


2011년을 시작하며『이기는 정주영, 지지 않는 이병철 - 박상하 著』을 나의 망막에 새기고 가슴에 넣었다.

강요된 시선과 제도의 틀 속에 갇힌 채 매일(每日)을 살아서 그런지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에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 항상 오늘 충실히 살겠다’는 정신적 좌우명이 몸속에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되었다.


강산이 바뀌어도 한결같은 친구들, 삶의 터전이 달라도 꾸준히 교류를 이어가는 지인들,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동창들, 신입사원 시절 호되었던 고참 선배들과의 오래 삭은 소중한 인연은 내게 무엇보다 소중하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께 안부인사라도 드려야겠다.



5. 지금(只今)


잎이 다 떨어진 나무와 나무사이가 헐겁다. 휑한 바람이 그 사이를 쓸고 갈 때 숲은 마른 소리를 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약수암 비포장길을 택배차량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허연 먼지를 물안개처럼 피웠다. 전화벨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고개 들어 단애(斷崖) 암벽의 켜켜이 쌓인 단수를 눈으로 세었다. 얼굴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바위덩어리가 위태롭게 붙어 있었다. 지난봄에 무너진 바위를 덮은 그물망이 바위에 붙은 이끼 같았다.

강이 반짝이 천을 띄운 듯 반짝였고 흘러간 과거와 흘러올 미래와 흘러가는 현재를 담고 있었다.


"당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내가 데리러 갈까?"

"아니야! 거의 다 왔어. 강 건너 희망교 비포장 길이야"


오늘 하루 아내를 편하게 해 주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생태공원길, 징검다리, 오솔길, 산길, 비포장도로, 다리 위를 걸었다. 그러나 이 또한 아내를 걱정하게 만든 가벼운 사건이 되었다.


어떤 이는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책 속에서 길을 본 적이 없다. 책 속에는 글자가 있다. 지식은 있으나 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는 땅 위에 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내 아이들, 친구와 지인들 사이에 길이 있다. 분명 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세 개의 금(金)이 있다. '황금, 소금, 지금'이다.「아름다움을 보는 눈, 행복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는 눈, 형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육안과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뇌 안, 마음의 창으로 보는 심 안, 그리고 영혼의 소통 창구인 영 안 - 이외수」으로 지금(只今)을 살고 싶다. 다음 주에도 길을 걸을 것이다. 해묵은 인연을 찾아 막걸리도 한잔하고 그리고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고 담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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