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가 아닌 인생의 연주

오늘은 마시지 않았다

by 이타

나는 술 때문에 무너진 적이 있다.

정확히는 술보다

술에 기대던 나 자신 때문에.


처음엔 위로였다.

그다음엔 습관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선택이 아니라 자동 반응이 됐다.


그래서 지금도 불안하다.

다시 마실까 봐.

아무 일도 없는데,

괜찮은 날인데,

문득 예전으로 돌아갈까 봐.


“이제 완전히 끊은 거야?”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춘다.


완전히라는 말은

미래까지 약속하라는 뜻처럼 들린다.

나는 아직

그만큼 단단하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마시지 않는다.


불안은 주로 저녁에 온다.

하루가 끝날 무렵,

몸은 지쳤고

머리는 쓸데없이 또렷할 때.


그 시간에

나는 달린다.


러닝이 술을 이긴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만 달리면

몸이 나에게 말해준다.


아직 살아 있다고.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숨이 차오르면

생각은 단순해진다.

심장이 빨라질수록

불안은 설 자리를 잃는다.


달리는 동안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 한 발씩

내딛을 뿐이다.


그 단순함이

지금의 나에겐 필요하다.


술은 나를 과거로 데려가고,

불안은 나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데려가지만,

달리기는

늘 지금으로 돌아오게 한다.


러닝은 나를 고쳐주지 않는다.

대신

오늘에 붙잡아 둔다.


나는 아직 회복 중이다.

완치가 아니라,

진행형으로.


다시 무너질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 불안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가능성 때문에

오늘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늘도 달렸고,

오늘도 마시지 않았다.


이 두 문장만으로

하루는 충분하다.


내일의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의 나는

술 대신 러닝을 선택했다.


그 정도면

아직은

잘 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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