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빨리 가도 되지 않을까.
호흡은 아직 괜찮았고,
다리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발을 조금 더 멀리 내밀었다.
속도는 그렇게 올라갔다.
그날 이후로,
몸은 서서히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신발은 앞으로 나를 밀어줬다
러닝화를 바꾸고 나서부터였다.
쿠션은 두터워졌고,
반발력은 분명해졌다.
신발은 마치 말하듯
“더 갈 수 있어”라고
나를 앞으로 밀어줬다.
숨은 편해졌는데,
러닝이 끝난 뒤에는
다리가 먼저 지쳐 있었다.
정강이는 묵직했고
무릎 바깥쪽은 이유 없이 예민해졌다.
그땐 몰랐다.
좋은 신발이
항상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걸.
나는 지면을 ‘누르며’ 달리고 있었다
부상 이후,
나는 내 발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발은 착지하자마자
지면을 오래 누르고 있었다.
마치 땅을 붙잡고
밀어내기보다는
버티고 있는 느낌에 가까웠다.
지면을 누르는 주법은
안정감이 있다.
천천히 달릴 땐 편하다.
하지만 속도를 올리면
그 눌림은 곧 부담이 된다.
지면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충격은 고스란히
정강이와 무릎에 쌓인다.
나는 그렇게
땅 위에 오래 남아 있는 러너였다.
떼는 주법은 ‘힘’이 아니라 ‘리듬’이었다
반대로, 잘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발이 지면을 오래 붙잡지 않는다. 닿고,
곧바로 떠난다. 지면을 세게 밀어내는 게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빌리고 미련 없이 떼는 느낌이다. 떼는 주법은
힘으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리듬이었다.
회전수가 올라가고 몸 아래에서 착지가 이루어질수록 발은 자연스럽게 지면을 빨리 떠났다.
그제야 알았다. 속도는 누르는 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머무르지 않는 데서 나온다는 걸. 더 빨리 가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었다
예전의 나는 속도를 올릴 때마다
보폭을 늘렸다.
앞으로 더 내딛으면 더 빨라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지면을 더 세게 더 오래 누르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다르게 간다.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가볍게.
회전수를 먼저 올리고
보폭은 따라오게 둔다.
그러자 발은
땅에 오래 머물지 않게 되었다.
속도는 천천히,
하지만 덜 아프게 올라갔다.
신발은 능력이 아니라 확대경이었다
이제는 안다.
러닝화는 나를 대신 달려주지 않는다.
지면을 오래 누르는 사람에게는
그 눌림을 더 크게 만들고,
리듬이 좋은 사람에게는
그 흐름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신발은 능력이 아니라
내 주법을 비추는 확대경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기록보다 먼저
‘이 신발을 신고도
오늘의 내가 가볍게 뗄 수 있을까’를 묻는다 여전히 나는 조금씩만 빨라진다
지금도 가끔 욕심이 난다.
오늘은 4분대 초반으로 가볼까,
그런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는 걸.
지면을 오래 누르지 않아도,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가도
달리기는 충분히 멀리 데려다준다는 걸.
페이스는 숫자지만,
러닝은 결국
지면과 맺는 관계라는 걸.
덧붙이며 혹시 지금
더 빨리 달리고 싶은데
몸이 먼저 걱정된다면,
그 불안은 틀리지 않았다.
부상은 실패가 아니라
몸이 건네는 가장 솔직한 대화다.
그 이야기를
조금만 더 천천히 들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