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심해에서 발견된 어떤 물질은, 시간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심해는 소리를 삼킨다.
그리고 가끔, 시간을 삼킨다.
수심 8,200미터.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 JAMSTEC의 심해 탐사선 아마테라스는 태평양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일본 해구 남쪽, 사람이 거의 내려가 본 적 없는 깊이였다.
빛은 이미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물의 압력과 금속의 미세한 울림뿐이었다.
조종석 안에서 **하야카와 신지(早川 真司)**는 계기판을 조용히 훑고 있었다.
“압력 정상.”
“산소 정상.”
“추진기 정상.”
그는 심해 탐사를 18년 동안 해온 연구자였다.
이 정도 수심에서 놀랄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모니터에 보이는 것은
그의 경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장면이었다.
해저가 찢어져 있었다.
지진 단층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칼로 바다 바닥을
조용히 갈라 놓은 것 같은 균열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다.
심해에서 빛은 존재할 수 없다.
“광원 확인.”
하야카와가 중얼거렸다.
카메라 확대 버튼을 눌렀다.
빛은 단순한 발광이 아니었다.
마치 흐르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하다.”
그때였다.
조종석 뒤에서 엔지니어가 말했다.
“하야카와 박사님.”
“왜?”
“시간 기록이… 이상합니다.”
그는 모니터를 가리켰다.
탐사선 내부 시간.
03:14:22
03:14:23
03:14:24
그리고 갑자기
03:14:51
하야카와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뭐야?”
“27초가 사라졌습니다.”
“계기 오류야.”
그는 바로 말했다.
심해 장비는 가끔 이런 오류를 낸다.
하지만 엔지니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뭐가?”
“영상 기록에도 27초가 없습니다.”
조종석 안의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하야카와는 영상 기록을 재생했다.
영상은 분명히 정상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단 하나의 문제만 빼면.
영상 속 탐사선은
이미 균열 안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
하야카와는 화면을 멈췄다.
그는 아직
그곳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때 통신이 들어왔다.
“여기는 지상 관제실.”
잡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현재 좌표 확인 바랍니다.”
하야카와가 대답했다.
“균열 상공에서 정지 상태입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관제실이 말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탐사선 기록상으로는…”
짧은 정적.
“…이미 27초 전에 균열 내부로 진입한 상태입니다.”
심해의 압력이 갑자기 더 무겁게 느껴졌다.
하야카와는 균열을 바라봤다.
빛이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겹쳐지고 있었다.
마치 여러 순간이
한곳에 포개진 것처럼.
그때 탐사 로봇 카메라가 균열 바닥을 비췄다.
검은 암석 사이.
그곳에 결정 하나가 박혀 있었다.
투명했다.
하지만 투명한 물질은 아니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샘플 채취합니다.”
하야카와가 말했다.
로봇 팔이 움직였다.
집게가 천천히 결정을 향해 내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모든 장비가 동시에 멈췄다.
소리도.
화면도.
심지어
심박수 기록도.
조종석 안의 시계가 멈춘 시간.
03:16:02
하야카와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세상이 잠깐
숨을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장비가 다시 움직였다.
“복구됐습니다!”
엔지니어가 외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왜 그래?”
엔지니어는 화면을 가리켰다.
샘플 보관 컨테이너.
그 안에는
이미 결정이 들어 있었다.
하야카와는 천천히 말했다.
“…우리가 채취했나?”
“아닙니다.”
“그럼?”
엔지니어가 말했다.
“…기록에 없습니다.”
하야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 물질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인간이 보고 있는 이 순간은
정말
지금 일어나는 일일까.
아니면
이미 일어난 시간을
뒤늦게 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날 이후
세계의 물리학자들은
처음으로 이 질문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한다.
만약 미래가 이미 존재한다면
우리는 선택을 하는 존재일까.
아니면
이미 기록된 시간을 따라 걷는 존재일까.
그 질문은
태평양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