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부른 이유
태평양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고요하고, 넓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구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곳도
바다였다.
인류는 달 표면의 대부분을 지도에 그려 넣었지만
바다의 바닥은 아직도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
그리고 어떤 빈칸은
우연히 발견되는 법이 없다.
그것은
문제가 먼저 나타난다.
처음 이상 현상이 보고된 것은
두 달 전이었다.
태평양을 지나던 해저 통신 케이블에서
이상한 신호가 감지됐다.
신호는 단순한 잡음이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간 왜곡 패턴이었다.
처음에는 장비 오류로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구간을 지나던
다른 관측 장비에서도 동일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시간 기록이
짧게 사라지는 현상.
12초
19초
3초
그리고 어느 날은 41초
마치 누군가가
세계의 기록에서
일부 시간을 지워버린 것처럼.
이 데이터를 처음 진지하게 분석한 곳이
Japan Agency for Marine-Earth Science and Technology
였다.
심해 연구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관 중 하나.
그들은 문제의 좌표가
일본 해구 남쪽 심해 단층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수심 약 8,000미터.
사람이 거의 내려가 본 적 없는 곳.
그리고 그 분석 보고서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현상은 물리적 원인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 보고서를 읽은 사람 중 한 명이
하야카와 신지였다.
하야카와 신지는
바다를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도쿄대 물리학과에서
그의 전문 분야는
상대론적 시간 측정이었다.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연구.
GPS 위성에서 사용하는
원자 시계 보정 연구.
그는 평생
시간이 얼마나 정확하게 흐르는지를 측정해 왔다.
그래서
그는 이 보고서를 읽자마자 알았다.
이건 단순한 장비 오류가 아니다.
시간이
물리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심해 탐사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학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바다를 싫어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14년 전
그의 동생이 해양 연구선에서 일하고 있었다.
남태평양 심해 탐사.
평범한 연구 항해였다.
하지만 그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기록에는
단순한 폭풍 사고라고 적혀 있다.
잔해도 발견되지 않았다.
시신도 발견되지 않았다.
바다는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하야카와는
바다를 연구하지 않았다.
시간을 연구했다.
적어도 시간은
사라진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JAMSTEC에서 연락이 왔다.
“하야카와 박사님.”
전화 속 목소리는
차분했다.
“해저에서 이상한 현상이 발견됐습니다.”
“지질학 문제라면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셔야죠.”
“시간 문제입니다.”
하야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상대가 말했다.
“기록에서 시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데이터를 이메일로 받았다.
하야카와는
10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패턴은
자연 현상이 아니었다.
너무 정확했다.
너무…
의도적인 것처럼 보였다.
일주일 뒤
그는 연구선 위에 서 있었다.
탐사선 아마테라스가
크레인에 매달려 있었다.
깊은 바다로 내려가기 위해 만들어진
강철 구체.
목적 수심
8,200미터.
선체 위에서 바람이 불었다.
하야카와는
태평양을 바라봤다.
어두운 물결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는 순간
동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혹시 그날
바다에서
무언가가 발견됐던 걸까.
혹은
무언가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배가 돌아오지 못했던 걸까.
“출항 준비 완료!”
갑판에서 외침이 들렸다.
크레인이 움직였다.
아마테라스가
천천히 바다 위로 내려왔다.
잠수 준비까지
30분.
하야카와는
조종석 안으로 들어갔다.
금속 문이 닫히는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엔지니어가 말했다.
“박사님.”
“왜?”
“이상한 질문 하나 해도 됩니까?”
“뭔데요?”
“만약…”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시간이 실제로 어딘가에서 깨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걸 고칠 수 있을까요?”
하야카와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아마 아닐 겁니다.”
“왜요?”
그는 조종석 창문 밖의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시간은
우리가 만든 게 아니니까요.”
“잠수 시작합니다.”
갑판 위에서 신호가 왔다.
아마테라스가
천천히 물속으로 내려갔다.
바다가
조종석 창문을 덮었다.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심
120미터
350미터
920미터
바다는 점점
어두워졌다.
그리고 하야카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잠수가
단순한 탐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 잠수가
인류가 처음으로
시간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3시간 뒤
탐사선은
수심 8,200미터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빛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