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쳐진 좌표
수심 5,200미터
아마테라스는 여전히 내려가고 있었다.
속도는 느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조종석 안의 공기는
조금씩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압력 때문이 아니었다.
아야세 미나는
카메라 화면을 보며 말했다.
“지형이 바뀌고 있어요.”
화면에는
완만하던 해저가
갑자기 경사를 만들며 떨어지고 있었다.
“해구 외곽입니다.”
나카무라가 말했다.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죠.”
하야카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쪽 아래의 작은 화면만 보고 있었다.
시간 기록 장치
03:58:11
03:58:12
03:58:13
정상이다.
하지만
그는 이제 숫자를 믿지 않았다.
수심 5,800미터
조명이
해저를 비추기 시작했다.
검은 암석.
균열.
그리고
기묘하게 평평한 구간.
아야세가 말했다.
“…저거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저 지형.”
그녀는 화면을 확대했다.
바닥 일부가
마치 깎여 나간 것처럼
매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자연적인 침식이 아니었다.
나카무라가 웃었다.
“용암 흐름 아닙니까?”
“아니에요.”
아야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너무 정확해요.”
하야카와가
처음으로 화면을 봤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좌표 값.
현재 위치
북위 31.7421
동경 142.5583
그는
기록 로그를 열었다.
그리고
이전 데이터를 확인했다.
북위 31.7421
동경 142.5583
같다.
그는 다시 확인했다.
3분 전 기록.
북위 31.7421
동경 142.5583
“…이상하군.”
“뭐가요?”
나카무라가 물었다.
“우리는 계속 내려오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좌표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잠시 침묵.
아야세가 말했다.
“GPS는 심해에서 안 잡히잖아요.”
“그래서 관성항법을 씁니다.”
하야카와가 말했다.
“그리고 그건…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움직이고 있는데
위치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조종석 안이
조용해졌다.
나카무라가
시스템을 확인했다.
“센서 정상입니다.”
“오차는?”
“0.02% 이내입니다.”
“그럼…”
아야세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움직이지 않는 건가요?”
하야카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는 창 밖을 가리켰다.
“우리는 분명히 내려가고 있습니다.”
빛이
해저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움직이고 있다.
분명히.
그런데
좌표는
같다.
그때였다.
틱.
아주 작은 소리.
하야카와는
본능적으로 시간을 봤다.
04:02:17
그는 로그를 열었다.
04:02:17
04:02:17
04:02:18
“…또다.”
아야세가 물었다.
“멈췄어요?”
“아니요.”
하야카와가 말했다.
“…겹쳤습니다.”
수심 6,300미터
해저 지형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균열.
그리고 또 균열.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땅을 안쪽으로 찢어 놓은 것처럼.
아야세가 숨을 죽였다.
“…여기입니다.”
“확인.”
나카무라가 말했다.
“목표 지점 접근.”
하야카와는
말없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이 장면을
이미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로그를 다시 열었다.
그리고
손이 멈췄다.
파일 목록
TIME_ANOMALY_01
TIME_ANOMALY_02
TIME_ANOMALY_03
그는
세 번째 파일을 열지 않았다.
만든 기억이 없었다.
“…이거 누가 만들었습니까?”
나카무라가 돌아봤다.
“뭘요?”
“이 파일.”
아야세도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 보는 건데요?”
하야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파일을 열었다.
기록 시작 시간
04:31:52
현재 시간
04:07:13
조종석 안의 공기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아야세가 속삭였다.
“…이거… 미래 기록 아니에요?”
하야카와는
화면을 스크롤했다.
영상 데이터가 있었다.
그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 속 아마테라스는
균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영상이 끊겼다.
로그 마지막 줄
“TIME LOSS : 27s”
하야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창 밖을 봤다.
아마테라스 아래
거대한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균열.
그리고 그 안에서
희미한 빛이
흐르고 있었다.
아야세가 말했다.
“…저기서 시작된 거예요.”
나카무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야카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니.”
그리고 말했다.
“…저기서 끝난 겁니다.”
아마테라스는
균열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 안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