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같은 동아리였던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친구아버지가 아는 분께서 엔터테인먼트일에 종사하시는데 나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친구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했다. 서울의 한 사무실주소였는데 약속 시간은 친구가 중간에서 조율해 알려주었다.
대형 엔터테인먼트처럼 사옥이 있는 회사를 기대했지만 찾아가 보니 낡은 건물 4층에 위치한 작은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다. 내 이름을 물으며 직접 방 한 켠으로 안내한 대표님은 업무가 한가로운 덕분인지 노년의 여유로움 덕분인지 무척이나 편하게 나를 맞이해 주셨다. 혹시 몰라 노래 몇 개도 연습해 갔고 작곡한 노래도 악보로 챙겨갔는데 내 음악이나 나에 대해 그렇다 할 관심은 보이지 않으셨고 자신의 친구의 부탁으로 선심 쓰는 자리임을 강조했다.
“요즘은 개인적으로 오디션을 봐서 캐스팅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회사들이 그런 인재들을 하나하나 캐스팅하고 키워 내는 데에는 너무 큰 리스크가 있거든. 차라리 본인들 힘으로 팀을 꾸려서 밴드라던지 그룹활동을 하고 있으면 간혹 눈에 띄는 멤버들을 위주로 캐스팅하고 재정비시키는 게 우리 쪽에서는 더 이득이지.”
이때만 해도 인디밴드가 조금씩 인기를 얻어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아이돌로 데뷔를 할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는 본인이 직접 팀을 구성해 자신만의 색깔로 활동을 하는 게 더 가능성이 높을 거라는 설명을 해주셨다. (훗날에는 이렇게 팀 단위로 회사에서 계약을 맺어 대중적인 큰 인기를 끄는 형태의 리소싱이 흔해지게 된다.) 20대 중반을 향해가는 나를 보니 다른 회사의 오디션을 연결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고 더구나 특별한 끼가 보이지 않아 일찌감치 밴드 쪽으로 방향을 돌리라는 이야기를 넌지시 하고 계셨다.
“그런데 보아하니, 활동하려면 비주얼이 중요한데 지금 그쪽의 상태로는 어려워요. 살을 많이 빼든 성형이라도 하던지 해야 돼. 못생긴 가수를 대중들이 원하지 않잖아.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이 쪽 하는 일들이 그래. 서운해는 말고.”
당시 연예계나 가요계에서는 실력보다 비주얼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했고 나조차 그러한 것에 설득된 상태였기에 서운한 감정까진 가지 않았다. 사실 이런 지적을 받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한약도 먹어보고 식욕억제제도 먹고 주사도 맞아봤지만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었고 거울을 보며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에 푸념만 늘어갈 뿐이었다. 대학에서 인물 좋은 연극영화과 동기들을 볼 때면 한없이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고 외모지적을 서슴없이 해대는 교수님들을 만날 땐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우울하기도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다들 내 노래나 음악, 내면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내 영혼은 더 짓밟히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요 발라드를 부르기엔 비주얼이 아쉽다고 하는 이들에게 난 뭘 더 해줄 수 있을까?
나는 내 외모가 노래에 도움이 안 된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어딘가에 분명 이 내 외모와 이미지와 맞는 음악 스타일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요즘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차별에 외모가 무슨 상관이냐며 음악만 잘하면 된다 주의가 만연한 건강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음악성보다 중요한 건 비주얼과 스타성인 고로 내가 설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수해 왔던 내 음악스타일을 제쳐두고 더 다양한 음악스타일을 찾기 시작했다. 유로뮤직부터 아프리칸, 레게, 탱고 등등 많은 음악을 듣고 탐색하던 중 우연히 엘라 핏제랄드의 노래를 듣고 마음을 먹었다. 재즈를 해야겠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