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 핏제랄드는 어두운 과거를 안고 태어났다. 엘라는 홀로 키워주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되자 여러 고아원을 전전해야 했다. 그녀의 결혼생활마저도 순탄하지 않았다. 세 번의 결혼이 끝나고 남은 건 그녀의 음악뿐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던 베이시스트 레이브라운은 평생 그녀의 음악적 동반자가 되어준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인지 무대 위가 훨씬 편했다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알고 노래를 들으니 난 더 깊이 그녀의 음악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재즈를 시작하고 나서 난 더 이상 내 외모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재즈를 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몸매가 준비되어 있었고(재즈 보컬 중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가수가 더 많지만) 고음에 집착하지 않는 편안한 노래를 할 수 있어 만족감이 매우 높아졌다. 이젠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기도 전에 이렇게 말을 건넨다.
“노래 듣기도 전인데 보기만 해도 진한 재즈가 나올 것 같아 기대돼요.”
재즈의 장점 중의 하나는 유행을 타지 않고 여러 장르와 결합시킨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힙합이 유행일 땐 재즈힙합으로, 락이 유행일 땐 락재즈로, 발라드가 유행일 땐 재즈발라드로 어떤 것이든 변형이 가능하다. 게다가 재즈는 오래될수록 와인처럼 깊어지기 때문에 나이가 먹을수록 스킬적인 노련미가 더해져 더 오래 노래할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무대 위에 서서 고즈넉한 재즈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의 연륜과 노고, 세상의 경험, 깊은 사랑 그 모든 것이 담겨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엘라의 노래를 스트리밍 한다. 그리고 촘촘히 그녀와 나 사이의 커넥션을 찾는다. 그녀의 목소리 위에 슬며시 내 목소리를 얹어 노래를 불러본다. 이 순간만큼은 나룻배 위에 누워 바다 위를 표류하는 기분이 든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간다. 급할 것 없다. 천천히 내 삶이 곧 음악이 될 수 있도록 서서히 그렇게 흘러가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