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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법 딴따라 같은 인생

by 디아쏭

한국에서는 공연을 거의 하지 않았다. 방송과 콘서트 일을 제외하고서는 공연을 즐겨하는 타입도 공연을 즐겨보는 타입도 아니었다. 내적 불안도가 높아 공연을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심리적 문제가 개선된 건 베트남에서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한 공연을 매일 하면서부터 이다. 매일 공연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레퍼토리를 준비하는 일이며 피아노 연습이며 무대 위에서 쓸 멘트를 짜는 일, 고객을 상대하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매일 공연해야만 하는 습관이 내 오랜 아킬레스건이었던 공황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했다. 이렇듯 습관은 무서운 힘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일하는 것의 장점은 낮은 물가와 생활비, 그리고 달러를 벌 수 있다는 점이다. 원래는 달러로 페이를 받는 것이 불법적이기는 했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고려해 일급을 100달러씩 지불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상류층 고객이 찾아올 땐 직접 테이블로 가서 인사를 하고 그 덕에 팁을 받기도 하고 처음 보는 베트남 게이커플에게서 내 목소리를 걱정해 주는 말도 듣고 퇴근길에 동료들과 나누는 야식과 시원한 얼음 위에 담긴 맥주 한잔을 하고 있자니 제법 현지에 잘 적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베트남 생활에 안주하지 말아야 지하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베트남의 아픈 역사 가운데 곳곳에 잔존하는 프랑스의 흔적들을 발견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난 곧 프랑스로 떠나야 한다.


이 안락함을 뒤로하고 유학을 떠나자니 내심 갈등도 커졌다. 내 나이 서른 살에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프랑스까지 유학을 다녀와야 하나 싶기도 했고 20대에 비해 부쩍 체력도 떨어져 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앞으로 살아갈 세월도 길지만 지나온 세월도 만만치 않게 흘러가버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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