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씨. 제가 재미있는 얘기 해드릴까요?
벌써부터 재밌어지네요. (웃음)
겨울씨 턱에 꽃받침 해보실래요?
이렇게요? (웃음)
(웃음) 너무 예쁘십니다. 뭘 설명하려 한건데 그냥 이대로 보고 싶네요.
(웃음) 빨리 얘기하세요.
네 지금 겨울씨 양 손끝이 지하철 입구에요. 편의상 오른쪽 손끝이 1번 출구, 왼손 손끝이 2번 출구라고 할게요. 그리고 제 사무실은 여기, 겨울씨 이마쪽에 있어요.
겨울은 은근슬쩍 손가락으로 겨울의 이마를 콕 찍는다.
아 이제 내려도 되요.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셨죠? 지하철 입구에서 대각 방향으로 저희 회사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가 위치해있고..지하철 1, 2번 입구로부터의 거리는 엇비슷한데 1번이 약간 가까워요.
네..
그 약간의 거리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1번 출구로 내렸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지하철 공사에서 1번 출구 정비 공사를 하더군요. 현수막에 4개월 후 재개통 예정이라고 안내돼 있고.
재미있는 얘기 맞아요? (웃음)
음..말하다보니 그닥 잼있진 않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네요. (웃음) 그래도 시작했으니..
그 뒤부터 당연히 사람들은 2번 출입구로 나와 출근을 하는데..전 사실 놀란게 2번 출구로 나왔지만 1번 출구쪽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그냥 2번 출구로 나가서 쭉걸어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놀랍지 않아요?
여름씨. 놀라운 게 아니라 놀리는 거 아닌가요? (웃음) 모르겠네요. 그게 왜 놀라운건지.
전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1번 출구는 비옥한 땅이었던거에요. 그동안은. 물이 그쪽으로 흘렀거든요. 근데 어떤 이유에서건 물길이 2번 출구로 틀어진거에요. 이제 비옥한 땅은 갑자기 2번 출구로 이어진 길이 되는거죠. 기술의 트랜드가 바뀌거나 어떤 영향력 있는 환경적 변화가 있거나 하면..두 땅의 운명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는..어쩌면 당연한 일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해야 하나..뭐 저에겐 소름이 약간 돋는 경험이었어요.
아..잼있는 얘기라기보단 새길만한 얘기네요. 옮길 수 없다는 것이 한 때는 프리미엄이었지만 어떤 변화의 시점에서는 큰 리스크가 되는 거네요. 부동산의 가치란 건 그리 변할 수도 있겠군요.
네 물론 그 변화는 단기간에 일어나진 않겠죠. 1번 출구의 땅은 물이 지하화되어 한동안은 그 비옥함을 유지할 테고..2번 출구의 황무지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기엔 시간이 필요할 테지만요.
변하지 않는 것은 없군요. 사물도 이럴진데 하물며 하루에 열두번도 바뀌는 사람 마음을 두고 어떻게 영원을 얘기할 수 있을까요?
겨울씨 말에 반박 불가입니다. 봄날은 간다..유명한 대사가 생각나네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겨울은 읊조렸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거..불안하기도 하지만 희망이 될 수도 있죠. 겨울씨 향한 제 마음이, 혹은 제게 갖고 있는 겨울씨의 아주 작은 호감이 변할 수 있다는 건 불안한 점이지만..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님의 마음도..그래요. 변할 수 있는거죠.
4개월이라고 했죠? 겨울은 하늘을 보며 물었다.
네 뭐가요?
공사기간이요..
아..네 맞아요. 4개월..그리 기억해요.
그 땐 봄이겠네요. 서둘러야겠어요. 2번 출구의 땅은..공사가 끝나서 사람들이 다시 1번 출구로 나가기 전에..2번 출구로 나가도 충분히 좋은 길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끔..봄이 오면 그 때 사람들은 어느 길로 걷게 될까요.
여름은 겨울을 쳐다봤다. 가끔 이 사람은 몇 수 앞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 봄이 오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아마도 높은 확률로, 사람들은 다시 옛 길을 찾을 것이다. 새롭게 걸어본 길에 발걸음이 머물지 않는다면..
아마도 높은 확률로, 겨울은 가을의 손을 잡을 것이다. 여름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