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결혼식

by 정자까야

토요일은 늦잠을 자고 싶은 날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겨울도 이불을 더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었지만 알고 있었다. 곧 알람이 울릴 거란걸.


겨울의 몇 남지 않은 미혼 친구 경희가 결혼하는 날이다. 경희는 같은 대학 친구다. 신입생 시절부터 미희와 셋이 어울렸다. 겨울은 뼛속까지 착한 이 친구들이 좋았다. 잘난 체하지 않고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셋은 늘 연애를 했다. 돌아가면서. 연애와 사랑에 대해 셋만의 수다방을 몆 년째 이어갔다. 사귀는 사람을 몇 번 서로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그 중 한 명과 경희는 오늘 백년가약을 맺는다.


겨울아. 빨리 일어나. 난 벌써 준비 다 했어. 이즘은 사귀는 사람이 없는 미희가 아침부터 카톡을 보낸다. 서둘러야한다. 식장이 가깝지만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겨울은 토너와 소량의 파운데이션으로 평소처럼 간단하게 화장하고 나가려다 다시 거울을 보고 립스틱을 조금 더 칠했다. 그래도 15년지기 절친 결혼식인데 왠지 신경써야할 것 같은 기분. 경희야..네가 진짜 결혼이란 걸 하는구나..


경희는 이른바 자만추의 화신이었다. 자연스러운 만남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경희가 사귄 사람 중엔 지하철에서 경희가 먼저 말을 건 인연도 있었다.


나 오늘 지하철에서 완전 내 스타일 남자 봤거든. 심장이 너무 뛰어서 머리가 아플 정도였어. 다행히 지하철이 한적했거든. 내릴 준비를 하길래 득달같이 달려가 내 학생증을 줬어. 식상한 말이지만 저 이상한 여자 아니구요. 한눈에 반했습니다. 괜찮으시면 잠깐 시간 좀 부탁드립니다...그렇게 말해버렸지 뭐야..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미친년이지 싶은데..그 땐 그 행동이 지극히 당연한, 합리적인 선택이었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아니면 그 사람은 사라지는 꿈이었을테니..


그 얘길 듣고 겨울과 미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명을 지르고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라는 둥 난리법석을 피웠지만 돌격대장 같은 경희의 연애에 늘 아련한 동경같은 것이 있었다. 겨울과 미희의 연애는 대개는 소개팅 같은 정형화된 것이었다.


겨울의 첫 연애는 단순히 첫사랑이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소개로 만나지 않은 유일한 연애였고 그 시작은 사실 친구 경희와도 엮여있는 것이었기에.


겨울이 그 사람을 만난 것도 경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늘 붙어다녔던 셋이기에 경희의 고등학교 동문 선배였던 그는 자연스럽게 겨울, 미희와도 인사하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 그의 고백으로 이른바 캠퍼스커플이 됐을 때 뒤늦게 경희는 겨울에게 털어놓았다. 그에 대해 품고 있던 마음을. 그 날 셋은 꽤나 많은 술을 마셨다. 너가 가져..아니 네가 가져..니네 둘 다 포기야? 그럼 그 사람 내거할게..이래가며 세 친구는 울다 웃다했다.


그가 왜 겨울을 포기했는지..경희와 미희는 알고 있다. 겨울의 어머니는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일을 하셨다. 그는 심적 압박을 견디지 못했고 겨울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얼마 안 가 입대했다. 겨울은 한동안 방황했다. 엄마와는 말하지 않았다. 경희나 미희의 집에서 묶거나 셋이 호텔방을 잡고 외박한 시절도 다 그 때였다. 그 때 경희와 미희는 겨울에게 얼마나 많은 조언을 했던가. 엄마에게 맞서라고.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겨울이 단호하지 못하면 엄마의 행동은 이게 끝이 아니고 시작일거라고..


세월 지나 돌아보니 경희, 미희의 말이 다 맞았다. 겨울은 엄마를 원망하고 때론 증오했지만 결국 용서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겨울도 엄마와의 관계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이제는 알 수 없게 됐다.


경희야..나도 너처럼 살면 어떨까..자유롭게 연애하고 누군가에게 구속받지 않고..부모님이든..그 연애 상대방이든..심지어 자기 자신으로부터도..구속받지 않는 그런 사람이면 어떨까.


겨울은 속으로 그 해묵은 바람을 떠올리며 미희를 만나러 나갔다. 오늘은 신부 경희 옆에 내내 붙어있을 심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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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를 하러 오른 단상은 유난히 높아보였다. 어제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경희와 신랑이 서 있었을턴데 겨울에겐 경희밖에 보이지 않았다. 글로 쓸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러왔다. 준비한 말의 반도 하지 못하고 내려왔다. 그 반의 반은 거의 울먹임 수준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겨울을 경희는 꼭 안아주었다. 그리곤 몇 마디 귀에 속삭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신랑도, 양가 부모님도, 하객도 그 순간에는 그들에게 없었다. 겨울은 경희가 그 순간 왜 그런 엉뚱한 말을 했을까 궁금했다.


단상에서 내려온 겨울에게 미희는 물었다.

경희가 뭐라고 한거야? 겨울은 미희를 보며 웃었다. 있다 커피 마시면서 얘기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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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시고 미희가 부른 택시를 기다렸다. 미희는 택시를 타기 전 겨울을 보면서 말했다.


겨울아 실은 차마 말은 못했지만..나도 경희랑 같은 생각이었어..


겨울은 알겠다고 말한 후 택시의 문을 닫아줬다.

멀어지는 택시에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자신의 택시를 잡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수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보고픈 이름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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