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씨 다음주 주말에..혹시 선약 있으신가요?
다음주요? 다음주 주말에..아..여름씨 미안해요..
선약..있으시군요. 여름의 음성에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배어나왔다.
네..토요일은 경희, 미희 서울역 인근에서 보기로 했고 일요일은..
여름이 말이 없자 겨울은 마저 얘기했다. 일요일은 가을씨 보기로..
네..할 수 없죠.
죄송해요. 여름씨.
아니에요. 그게 죄송할 일인가요..제 친구 아라 아시죠? 그치가 자꾸 효창운동장에 유소년 축구보러 가자고..
유소년 축구요?
네 아라가 중학교 때까지 축구했었잖아요? 클럽 취미 축구가 아니라 올타임 축구 선수로..학교 대표였죠. 당시에 효창운동장에서 축구시합 많이 했었나봐요. 당시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서 가끔 주말에 축구 시합 보러 가나봐요. 혼자 가기 싫었는지 자꾸 저랑 가자고 해서..전 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웃음) 본인이야 추억에 잠길 수라도 있지..저야 무슨 감흥을 느끼라고..
아..저랑 약속 있음 거기 안가도 되니까..(웃음)
(웃음) 뭐 겨울씨를 이용하려 한 건 아니구요. 어떤게 핑계인지 모르겠어요. 축구보러 가기 싫은게 핑계인지 겨울씨랑 약속 있는게 핑계인지..
겨울은 잠시 말이 없다가, 아마..전자겠지요. 여름씨는..얼굴을 안봐도 음성에서 티가 나요. 겨울은 엷게 웃었다. 그리곤 진심을 담아 얘기했다. 그래서 더 미안해요..
아니에요. 겨울씨..할 수 없이 끌려갔다 오겠습니다. 혹시 알아요? 의외로 재미있을지.(웃음)
여름씨는 모르겠지만..여름씨에겐 뭔가 극적인 기운이 있어요. 근거없지만..뭔갈 기대하게 되요. 말마따나 재미있는 일이 있을거 같아요. 그걸 같이 경험하지 못해 제가 더 아쉽네요. (웃음)
(웃음) 겨울씨는 삼총사 보는거죠?
네..희자매님들. (웃음)
여름씨는요?
전 아라만 볼 것 같아요. 사총사 중에 아토스는 신혼이라 그런지 시간 맞추기 쉽지 않고 부르토스는 이즘 누구 만나는지..(웃음)
연애가 우선이죠. (웃음)
그럼요. 더욱이 부르토스는 오랜만에 누구 만나는거라 더 조심스러워요.
겨울은 웃다가 갑자기 생각난듯이..
여름씨 혹시 서울역 근처에 양꼬치 집 맛있는 곳 아세요?
양꼬치요? 아뇨..처음 듣는데..서울역 양꼬치 맛집이라..
그렇죠? 저도 좀 생소한데..미희가 어디서 추천을 받았다고 가보자고 해서..
(웃음) 나중에 드시고 괜찮으면 추천해주세요.
(웃음) 거기 안갈지도 몰라요. 미희는 말해놓고 잊어버리는 타입이라..혹 가게 되면 후기 공유할게요.
통화를 끝내고 여름은 영수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라..담주 토요일 몇 시까지 가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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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야? 여름은 영수에게 전화를 했다.
넌 어딘데? 난 이미 운동장 관중석이야. 들어와. A입구로 들어와서 오른쪽 보면 나 보일거야.
여름은 영수가 일러준대로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일부는 스탠드에, 일부는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영수가 손을 흔들었다. 선수들 부모로 보이는 일련의 사람들과는 동떨어져 홀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측은해보였다.
축구 그만둔지가 언젠데 아직도 여기서 이래?
여름은 짐작을 하면서도 핀잔조로 물었다.
영수는 턱을 손에 괴고 운동장을 하염없이 쳐다보다 여름의 말에 슬며시 웃었다.
여름아. 너..고등학교 때 나한테 물어봤던 거 기억나지? 왜 축구 그만뒀냐고..나..내 모든 걸 쏟아부었거든. 초등 저학년 때 어쩌다 시작한 축구. 처음엔 혼나지 않으려고 죽어라 뛰었지. 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 어려운 걸 내가 또 해내더라. 버티는 날 코치님들은 칭찬하고 인정해주셨지. 그게 원동력이 돼서 또 죽어라 뛰었고. 물론 축구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진작에 그만뒀을거야..축구에 대한 애정과 주변의 인정,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이 7년이라는 시간을 지탱하게 해줬어. 근데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 되는거야. 내가 그런 일로 고민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내가 내 인생을 딱 그 시기에 결정하고 싶진 않은 압박감이 느껴졌어. 뭔가 막혀버리는 느낌. 난 내 미래를 좀 더 열어놓고 싶었거든...축구에 다 쏟았으니 이제 다른 일을 좀 해보고 싶다고나 할까..
영수의 옆에 앉아 몸을 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여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 역시 고등학교 때 비슷한 느낌으로 고뇌했던 청춘이 있었다.
그리고..그 이후 공부를 하고..대학을 가고..번듯한 직업을 갖고..다 좋았지. 큰 틀에선..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았어. 하지만..그 어떤 시기도..7년간 운동장에서 느꼈던 두근거림과 희열을 주진 못했지. 순수한 헌신이었으니..어찌보면 당연하겠지만..그 후유증은 크더라. 자꾸만 내 눈은 푸른 잔디로 향하고..그리움을 억누르지 못해 이렇게 가끔 운동장에 와서 아이들 뛰는 걸 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네..그리워..진짜. 그 때의 두근거림이 말야..
알 것 같아. 정확하진 않아도 어떤 느낌인지는..여름은 아이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대답했다. 저 아이들 중 한 명이 아라였겠구나..상상하면서. .그리고 저 아이들 중 몇 명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성장 과정을 그리는 글을 쓰면 어떨까..그들 중 단 한 명이 프로가 되고 국가 대표가 된다면 그 아이는 누구일까..라는 갑작스런 궁금증에 슬며시 웃었다.
영수에게 그 얘기를 하자 영수는 뜬금없이 드라마 응답하라1994를 이야기했다.
너 여주인공이 결국 누굴 택할지 알았냐?
짐작이야 갔지만..여름이 드라마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난 처음부터 알았어. 영수는 잘라 말했다. 처음부터 그럴지 알았다니까. 왠지 알아? 사랑한다는 건 생각의 영역이 아니거든. 머리로 깨치기 전에 이미 몸이 알고 있거든. 그 사람 없는 삶은 상상도 못했던 거야. 잠시 다른 누군가에게 떨릴 수도 있고 보고픈 열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누군가는 그녀에게 삶은 아니거든. 택일의 순간..그녀는 삶을 택한거지. 삶 그 자체였던 애정을..택한거지.
여름의 선뜻 이해가지 않는 표정을 느꼈는지 영수는 부연 설명했다. 네 의문 있잖아..저 중에 누가 그런 아이가 될까..그 답은 드라마 응사가 이미 해준것 같단 얘기지. 축구가 삶인 녀석. 축구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녀석..그 녀석이 최후의 선택을 받지 않을까..
여름은 짧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은 주먹을 영수에게 내밀었고 영수는 웃으며 주먹으로 여름의 주먹을 살짝 맞댔다.
영수는 여름을 슬쩍 보고 말했다.
나 이즘 고민이야. 우리 피앙세 문제로.
여름은 아주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다. 주말에 자꾸 본인을 불러 내려는 것도..그런 것과 무관치는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널 보면 가끔 저런 답도 없는 짝사랑을 왜 하고 있지? 우리가 청춘도 아니고..그런 생각했거든? (웃음)
여름은 따라 웃었다.
근데 이즘 그런 네 대책 없는 열정이 부럽더라..말도 안되는, 무대뽀의 열의가..그게 진짜 아닌가 싶어. 내가 그라운드에서 느낀 감정..여름 네가 네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그게 진짜 사는거지..비록 그게 세월 따라 빛이 바랠지언정..그래도 그런 감정 없이 결혼이란 걸 할 수 있나 싶더라구..
여름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내가 뭐라 해줄 말이 없다. 그리 느낀다면 나야 고맙긴 한데..혹 네가 후회될 일을 하는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고..
그럴지도 모르긴 한데..내가 망해도 적어도 내 옆에 넌 있을거 아니냐..내 생각엔 네가 먼저 망할 것 같은데..
둘은 크게 웃었다. 그 때 호각 소리가 울리고 전반이 마무리됐다. 아이들은 땀이 범벅이 된 채로 거친 호흡을 내쉬며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가자. 한 잔 해야지.
영수와 여름은 자리를 정리하고 운동장을 빠져나왔다.
어디로 가지? 영수가 물었고, 발길 닿는 대로..여름이 답했다. 그리곤 겨울을 떠올렸다. 영수에겐 미안했지만..어쩔 수 없이 겨울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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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아. 경희 못온대. 미희가 핸드폰을 보더니 울상이 되어 말했다.
왜 갑자기? 겨울이 물었다.
그니까..몸이 많이 안좋나봐. 우리 단톡 봐봐. 웬만해선 가려했는데 웬만하지가 않대. 아침부터 점점 안좋아졌나봐. 우리한테 전염될까봐..그것도 걱정된다고..
아..그렿구나. 우리야 상관없지만..경희 건강이 중요하지.
그래..할 수 없네. 겨울아 오늘은 나랑 놀자..(웃음)
그래. 어떻게 놀아드릴까요? (웃음)
글쎄..맥주나 마시러 갈까? 오다보니 치맥할만한 곳이 몇 있던데..
겨울은 잠시 망설이다가..
미희야..너 일전에 여기 인근 양꼬치집 맛있는데 있다고 했잖아..경희 못데려가 미안하지만..우리 나중에 또 오더라도 답사 겸 해서 가볼래?
아..그래. 그랬지..맞아. 서울역 인근 오면 가자고 했던 기억 난다. 근데 겨울이 네가 웬일이니? 그런 거 기억하는 타입 아니잖아? 너 양꼬치 좋아했니? (웃음)
아니..갑자기 떠올라서..몰랐는데 나 양꼬치 좋아했나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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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분위기가 나는 골목을 걷다 영수가 길을 멈췄다. 여름도 멈추고 영수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드니..
○○ 양꼬치..라는 간판이 보였다. 순간 여름의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양꼬치..양꼬치라고?
저기 어때? 영수는 별 느낌 없이 물었다.
글쎄..양꼬치 먹고 싶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과 입에 침이 마르는 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걸까? 여름은 겨우 입을 뗀 느낌이었다.
맥주가 마시고 싶은데 안주로 좋잖아. 칭따오 맥주랑 해서..좋을 것 같은데..별로야?
아니..난 괜찮은데..여름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서울역 인근..치고는 거리가 있다. 양꼬치 집이 이곳만 있는 것도 아니다. 꼭 양꼬치 집을 간다는 것도 아니었다. 만에 하나 여기였다 해도 이미 자리를 비웠을 수도 있다. 여기서 만난다고? 그럴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그럴 리가..없다.
여름이 망설이는 사이 영수는 이미 계단을 걸어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름은 발이 천근 같고 가슴은 여전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 조우하고 싶은 강렬한 바람도 있었다. 우연히 만났을 때 예상되는 모든 후폭풍보다도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고픈 원초적인 본능이 더 강했을 수도 있다. 만나고픈 마음과 만나지 않았음 하는 마음이 계단을 오르며 교차했다.
문을 열었다. 영수는 카운터에서 종업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시선이 식당 전체를 빠르게 훑었다.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마음 뒤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카운터에 있는 영수에게 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찰나 가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손님이 걸어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여름과 눈이 마주쳤다. 여름과 겨울..겨울과 여름..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는 두 계절이 그렇게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