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봄은 부서 동료들 몆과 식사 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인근 몰(mall)을 찾았다. 카페 주변 몰 중앙에서 큰 행사를 하는지 인파가 상당했다.
뭐 하나봐요? 드라마 홍보인가? 직원 중 일부가 관심을 보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김봄은 인파를 슬쩍 보고는 늘 가던 카페로 들어갔다.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는 사이 동료 두어명이 주문한 커피를 들고왔다.
저기 행사.. 드라마 '사랑은 커피를 타고' 시즌2 홍보 촬영인가봐요. 저기 사람들 한미연, 김종진 배우 보러 온 인파에요. 여기 카페가 후원하는지 오늘 커피 시킨 분마다 이렇게 번호를 주네요. 보이죠? 컵받침에 있는 번호..있다 저기 사회자가 번호 불러 당첨되면 무대에서 두 배우와 인사할 수 있는 기회준다고..
와. 진짜요? 당첨되면 대박이네..
동료들은 자기 번호뿐만 아니라 옆 사람 번호까지 확인하며 흥분했다.
근데 유투브로 중계한다는데..당첨돼도 문제 아닌가요? 김봄은 카페 옆에 걸린 홍보내용을 확인하며 동료들에게 흘리듯 말했다.
왜요? 얼굴 나오는 거 때문에요? 뭐 어때요..죄 지은 것도 아닌데.
김대리님은 오히려 좋은거 아니에요? 잘생긴 얼굴 맨날 우리만 보기 아까웠는데..
고개를 숙이고 웃는 김봄을 보며 동료들은 모두 웃었다. 어차피 그런 일은 없을거란걸 다들 알고 있다는 듯이.
왁자지껄한 대화가 오가는 중에 무대 위로 행사 진행자가 올라가고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 다들 기다리셨던 시간입니다. 두 남녀 배우와 여기 계신 팬 중 두 분을 모시고 짧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그럼 그 행운의 첫번째 주인공은..
진행자는 박스 안에서 번호가 적힌 공을 하나 꺼냈다. 번호를 부르자 앞에서 행사를 쭉 지켜본 듯이 보이는 젊은 여성 한 분이 벌떡 일어나 환호했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무대에 오르고 두 배우와 인사한 팬은 너무 떨린다, 살면서 이런 행운이 없었다, 드라마 시즌1 잘 봤다, 시즌2에서는 두 사람이 이어지느냐 이런 것들을 물었다.
진행자는 두번째 공을 꺼내 번호를 불렀는데 김봄의 일행 역시 모두 자기 번호가 아님을 확인하고 탄식했다. 아무도 일어나는 이가 없자 진행자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한번 더 번호를 불렀는데 김봄 옆자리의 이대리가 소리를 질렀다.
대리님 뭐하는거에요? 대리님 번호잖아요?
테이블의 모든 이가 경악을 했고 김봄도 깜짝 놀랐다. 드라마에 큰 관심도 없었지만 되겠나는 마음이 컸다.
동료들이 여기라고 더 난리를 쳐서 모여있던 사람들은 한바탕 웃었다. 중계중인 카메라가 일제히 김봄쪽 테이블로 방향을 돌렸다.
김봄은 놀라서 순간 정신이 없었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처했다. 일어나며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무대로 천천히 걸어갔다. 흡사 연말 연예대상 수상자의 행보마냥.
진행자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김봄을 맞았다.
첫번째 팬분과 반응이 극과 극입니다. 상당히 침착하게 걸어오셨어요. 이런 일이 자주 있으신가요?
좌중이 웃었고 김봄도 여유롭게 웃어넘겼다.
마음은 첫번째 팬과 마찬가지로 심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웃음)
네..말씀도 참 여유롭게 잘 하십니다. 자세히 보니 상당히 미남이시네요. 혹시 연기 지망생이나 연극쪽에 계신 분은 아닌가요?
네..잘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웃음)
알겠습니다. 제가 너무 말이 길었네요. 그럼 우리 여자 주인공인 한미연 배우에게 하고픈 말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진행자가 넘긴 마이크를 받은 김봄. 잠시 한미연을 보다 말을 꺼냈다.
솔직히 시즌1을 다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평소 한배우 님을 좋아했습니다. 기부도 자주 하시고..선행을 자주 하시는 올곧은 배우로 알고 있습니다.
한미연은 웃음을 머금고 가벼운 목례로 감사함을 전했다.
시즌1을 다 보지 못한건 후반부로 갈수록 제가 원하는 진행이 아니어서였습니다. 극 중 두 분은 결국 이어지지 않았죠. 어쩌면 시즌2를 염두에 둔 작가진의 의도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궁금한 건..한배우님께서는 만약 극 중 여배우의 상황이라면..같은 선택을 하실 건지..여부입니다.
한미연은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듣다가 마이크를 들고는
배우라는 직업이 가끔 힘들다고 느끼는 건 극중 배역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것처럼 여주인공은 끝내 자신의 마음 깊은 곳 울림을 외면합니다. 그러고 싶다는 욕망은 그래야한다는 당위에게 자리를 내주죠. 저라면..제가 실제로 그 상황이었다면..전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가정일 뿐이지만..현재 마음은 그렇습니다.
김봄은 이해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자는 너무 고차원적인 질의답변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김봄에게 시간 관계상 김종진 배우에게 질의해달라고 부탁했다.
김봄은 김종진 배우의 다른 드라마에 대해 얘기하며
그 때 훌륭했던 연기로 많은 여심을 사로잡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 주변 지인 중에서도 배우님을 너무 좋아하시는 분이 몇 있습니다..
김봄은 그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경희, 미희 선배를 모셔놓고 겨울의 연인 자격을 테스트받았던 그 날..오갔던 대화 중엔 드라마 얘기도 있었다.
여기 커피 맛있다는 경희의 말에 미희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사커타? 그 드라마 이제 종영 얼마 안남았더라..
사커타요? 뭐에요 그게? 김봄은 물었다.
사랑은 커피를 타고..몰라? 이즘 화제잖아. 미희는 핀잔을 줬다.
그 드라마는 좀 봐둬. 봄이 네가 좋아하는 겨울이도 그 드라마 푹 빠졌으니.
듣고 있던 겨울은 손사래를 치더니 입을 막고 웃었다.
호기심이 동한 김봄은, 아 그래요? 선배가 그 드라마 좋아했나요? 전 못봤는데 언제 날 잡아 정주행해야겠네요.
그래 얘. 겨울이 거기 남주한테 푹 빠졌어. 지난번엔 김종진 손가락이 예쁘지 않냐느니..하여간 난리도 아냐. 미희는 겨울의 다른 면을 폭로하겠다는 식으로 신나서 얘기했다. 겨울은 한사코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고 김봄은 그런 두 선배를 물끄러미 쳐다봤었다..
김봄은 김종진을 향해 공손하게 물었다.
그래서 김배우님께 부탁이 있습니다.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네요.
다들 이목이 집중됐다가 그 부탁이 사인 하나 해달라는 것임을 알고는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김종진은 준비돼 있던 종이에 사인을 하려는데 김봄은 김종진에게 다가가더니 무엇인가 더 이야기를 했다. 진행자는 궁금함에 두 사람에게 다가갔고 김종진이 사인한 종이를 보더니 글귀를 읽어내려갔다.
뵙지는 못했지만 열렬한 팬인 겨울씨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시즌2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26년을 시작하는 겨울에. 배우 김종진.
사람들은 웃었고 진행자는 궁금하다는 듯 김봄에게 물었다. 겨울이라..아까 말씀하신 지인 중 한 명인가 보네요? 아마도 우리 팬분이 좋아하는?
청중은 환호하며 웃었고 김봄 역시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렇게 일단락됐다. 행사는 마무리가 됐고 청중은 흩어졌다. 김봄은 동료들과 함께 직장을 향해 걸었고 돌아가는 내내 동료들은 김봄의 인터뷰로 난리가 났다. 이제 저 홍보물 유투브 뜨면 김봄이 전국구 스타가 될거라느니, 너무 멋있었다느니, 도대체 겨울이 누구냐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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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건 김봄의 동료뿐만이 아니었다. 드라마 홍보 대행사도 물건 하나 건졌다고 신나했다. 사무실에서 유투브 편집본을 만들어 올렸고 쇼츠 영상도 따로 몇 개를 만들었다. 김봄이 김종진에게만 사인을 부탁한 것을 두고 '한미연 사인 패스 굴욕?' 같은 자극적인 썸네일을 달기도 했다. 노이즈가 됐든 뭐가 됐든 이 정도의 퀄이면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았고 이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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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전화를 받자마자 미희는 흥분해서 말했다.
겨울아. 봄이 인터뷰 봤어?
봄이 인터뷰? 봄이가 인터뷰를 했어?
아..너 못봤구나. 빨리 유투브로 사커타 시즌2 쳐봐. 시민들이 배우랑 대화하는 홍보 영상 있는데 봄이가 거기 나왔어. 그리고 겨울이 네 얘기도 했다고..지금 난리야.
겨울은 미희와 통화를 마치고 인터뷰 영상을 찾아 보았다. 미소를 머금고 보다가 진행자가 김종진의 사인 글귀를 읽어내려갈 때 미소를 거뒀다. 화면속 봄이의 웃음을 보고 있으니 가을과 여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도 이 영상을 봤을까? 여름은 봄이를 안다. 언급된 겨울이 본인임을 당연히 알 것이다. 가을은 봄이를 본 적이 없다.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나는 왜 그런 것들을 걱정하는가? 가을이 화를 내거나 여름이 실망할 것이 두려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럴 사람들도 아니다. 봄이가 자신을 언급한 것은 고마운 동시에 당황스러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관계의 호수에 봄이는 집채만한 돌덩이를 집어던졌다. 동심원이 펴졌다. 한도 끝도 없이 퍼져나갈 것만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