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겨울.

by 정자까야

겨울은 집을 나섰다. 날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구름이 낮게 드리운, 비 오기 전의 하늘이었다. 일기 예보에 소량의 비가 예보돼 있었다.

가을이 약속을 취소하여 겨울 혼자 오랜만에 쉴 수도 있었다. 마침 날도 궂었다. 그럼에도 겨울은 집을 나섰다. 집에 있으면 여름에게 연락을 할 것 같았다. 평소 가고픈 곳을 찾아다니다 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시간도 잘 갈 것이라 여겼다. 점심은 간략하게 먹었다. 우산을 집어들고 목적지 없이 일단 출발했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보니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이었다. 터미널로 들어가니 일요일에도 사람들은 분주하게 오갔다. 누군가는 내려가고 누군가는 올라왔다. 바쁜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시간만 정지해 있는 듯했다. 갈 곳도 없으면서 겨울은 터미널 번호를 보며 걸었다. 그러다 18번 승강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행선지 속초/양양.

여름의 속초 여행이 떠올랐다. 그 때..같이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름과 장난치다가 어느새 발목까지 차버린 동해바다에 신발이며 양말이며 흠뻑 젖었을 것이다. 그게 또 재미있어서 둘은 또 얼마나 웃었을까..설악산이 보이는 전망좋은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서로 사진을 열심히 찍어줬겠지. 20대 대학생 커플들은 나이 들어 뭐하는 짓이냐고 우리를 뒤에서 욕했을까..이곳에서 홀로 속초행 버스를 기다렸을 여름을 떠올리니 괜시리 가슴이 저몄다.

발길을 돌려 지하철 역사로 내려갔다. 여름을 떠올리니 함께 갔던 낙산공원이 보고팠다. 3호선, 4호선을 갈아타며 도착한 혜화역. 겨울은 익숙한 걸음으로 나지막한 경사 곳곳에 위치한 카페 몇 곳을 지나쳤다. 그 날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조금만 더 본인의 상태가 좋았다면 여기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두런두런 얘길 나눴을텐데..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여름은 뭐라고 말했을까. 여름이 지나가는 예쁜 행인을 눈으로 쫓았다면 나는 뭐라고 핀잔을 줬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하늘은 구름을, 구름은 비를 아슬아슬하게 붙들고 있었다. 공원 정상의 뷰를 보고 누가 탄성이라도 지르면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을씨년스럽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겨울은 오히려, 오늘만큼은, 이 날씨가 좋았다. 오늘 이 날씨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듯했다. 마치..괜찮아. 어떻게 매일 좋은 일만 있어. 날 봐. 오늘 이런 날도 있는거야. 이렇게 말하는 듯.

날이 어둑어둑해져 겨울은 지하철을 타고 명동으로 갔다. 시간상 오늘의 최종 목적지가 될 곳. 명동역에서 올라와 겨울은 핸드폰을 보며 위치를 확인했다. 골목에 있어 이곳은 갈 때마다 길을 잃었다. 그 날도 여름과 함께 더듬더듬 길을 확인하며 걸었었지. 뒤쫒아오던 여름은 도대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건지 궁금했겠지? 막상 도착하고 난 뒤엔 또 얼마나 당황했을까..겨울은 그 날 무대의 주인공이 본인이라고 들었을 때의 여름의 표정을 떠올리곤 길에서 소리내 웃었다. 지나던 외국인들이 겨울을 쳐다보며 웃었다. 겨울은 민망함에 살짝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예약하진 않았지만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저녁 겸으로 베이글 등 빵 몆 개와 음료를 주문했다. 술은 시키지 않았다. 혼자 마시는 술은 영 내키지 않았다. 겨울은 술보다는 사람을 좋아했다. 술은 그들을 모이게 하기 위한 작은 소품일 뿐.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공연을 한시간 가량 지켜봤다. 아니 봤다기보다는 겨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뮤지션들이 있었다. 그게 누구였든 겨울에게는 어차피 의미가 없었다. 겨울은 그 날 자신의 심장을 미친듯이 흔들었던 여름의 춤사위를 보고 있었다. 눈앞에.. 땀을 뻘뻘 흘리며 혼신을 다해 춤을 추는 한 남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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