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여름.

by 정자까야

부모님은 여름을 깨우지 않았다. 토요일에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여름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름의 아빠는 엄마에게 옷을 챙겨 입으라고 눈치를 줬다. 부모님은 여름을 두고 집을 나섰다.

부모님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서는 소리를 들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아까부터 깨 있었다. 다만 눈을 떠도 의미가 없는 시간. 여름은 그저 눈을 감은채 겨울 없이 어떻게 하루를, 일주일을, 어쩌면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포기하는 것이 겨울을 위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 아이는 제 아입니다. 솔로몬 왕 앞에서 두 여인이 아이 한 명을 두고 서로 자신의 핏줄이라 주장했다. 고심 끝에 왕이 말하길. 이 아이를 공평하게 반으로 갈라 두 여인에게 나누어주거라. 여인 한 명은 이에 동의하였고 나머지 한 명은 주저앉아 오열하며 말하길. 아이를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 아이를..살려주십시오. 여름은 겨울의 어머니에게 말해야할까. 겨울을..가을에게 보내겠다고. 더이상 괴로워하는 겨울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원하는 것은 오로지 겨울의 행복 뿐이라고.

이불을 들추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망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움직이는 것 뿐이다. 누군가 그랬다. 생각으로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샤워를 하고 나가려다 엄마가 차려놓은 음식을 보고 멈칫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밥도 국도 반찬도 남김없이. 엄마. 고마워요. 당신의 아들. 밥 먹고 힘 낼게.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넣는데 사래가 걸린듯 기침이 났다. 괜시리 눈물이 흘렀다.

집을 나선 후에야 낮게 드리운 구름이 보였다. 잠시 망설이다 그냥 걸었다. 비라도 내려 흠뻑 젖었음..어쩌면 내심 바라는 바인지도.

걷다보니 일전에 겨울이 인근 아트센터에서 연극을 보고 여름을 찾아왔던 카페가 보였다. 잠시 서서 카페를 쳐다보았다. 자신과 겨울이 앉았던 곳. 그날 우리는 우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연이 연결해준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말했었다. 겨울과 나눈 대화 한 마디 한 마디가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환청이란건 이런 것일까. 여름이 우두커니 서서 안을 응시하고 있으려니 통창의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여성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 제 3자가 보는 여름의 상태는 분명 정상은 아니었던 것이리라.

생각없이 지하철을 탔고 본능적으로 내렸다. 여의도.

공원의 벤치에 앉아 허공을 바라봤다. 멀리서 벚꽃 사이를 걸어오는 겨울이 보였다. 그녀의 이름이 너무도 낯설 때였다. 어떻게 그녀를 그렇게 쿨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여름은 과거의 자신에게 감탄했다. 세 번의 인연은 없다. 이번에도 그녀를 보내면 이번 생은 이렇게 마무리될 것임을 안다.


미안해요. 겨울씨. 과거의 제가 더 쿨하고 멋지죠? 지금의 전..너무도 한심하고 누추하고 찌질하고 못났습니다. 당신이 절 그리 생각해도..세상이 절 욕해도..그래도 당신을 그리 보낼 수는 없습니다. 세 번은 없으니까요. 하늘의 역할은 두번째 우연까지입니다..

발길을 돌렸다. 벚꽃피는 계절이 아니라 다행이라 여기면서. 벚꽃 흐드러져 그 때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면 여름은 어린 아이처럼 울어버릴 것 같았기에.

더 동쪽으로 향했다. 어차피 의도한 일정은 없었지만. 더 순수했던 과거를 무의식적으로 동경한것일까. 지하철에서 내려 겨울이 근무했던, 그리고 자신이 처음 겨울이라는 사람을 만났던 스벅 매장으로 향했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익숙한 커피 내음이 전신을 감쌌다. 자신의 닉네임을 보곤 허리가 끊어질라 아파하며 웃는 겨울의 모습이 보였다. 들리는 것은 그녀의 웃음 소리 뿐.

앉을지 말지 갈팡질팡하다 결국 밖으로 나왔다. 아직 갈 곳이 한 곳 더 남았기 때문이다. 여름은 부지런히 걸어 전통 찻집에 도착했다. 마치 처음부터 최종 목적지가 여기였던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혹시 일요일이라 휴업이면 어쩌나 아주머니가 아닌 알바생이 있으면 어쩌나 불안했지만 다행히 기우였다. 아주머니는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여름을 맞았다. 오늘 처음으로 듣는 사람의 음성이었다. 여름은 겨울과 대화했던 자리에 앉아 메뉴를 들여다보았다.

십전대보차 드실래요? 아주머니는 당시 여름이 자주 마시던 기호를 기억하고 계셨다.
아니요. 오늘은 쌍화차 부탁드립니다.

처음으로 말을 듣고 처음으로 말을 하고 처음으로 웃었다. 차를 마시자 그 뜨거운 걸쭉함이 어떤 기운을 불어넣는 듯했다. 여름은 그 기운에 이끌려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쌍화차에 환장한다고 말하고는, '환장' 이라는 어휘 선택을 후회하며 뒤늦게 입을 막고 웃었던 한 여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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