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카페가 있었군요. 여름은 겨울이 보내준 카페 주소를 확인하고 답톡을 했다.
네 여름씨 먼저 가서 기다려줘요. 미안해요. 급한 일 끝내고 바로 갈게요.
여름은 약속 시간을 10여분 앞두고 카페에 도착했다. 매장이 크지 않았다. 2인용 테이블에 앉아 있으려니 금새 자리가 찼다. 겨울이 일러준대로 일찍 오지 않았으면 허탕치고 돌아갈 상황이었다.
겨울은 10여분 늦었다. 카페 문을 열고 여름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으며 걸어왔다.
늦는 것도 우아하여 도무지 화가 안나는군요. 여름은 웃으며 말했다.
화가 났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요? 겨울도 지지 않고 농을 했다.
옷이며 가방을 정리하는 겨울을 도우며 여름은 말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카페에서 겨울씨 기다리는 시간이에요. 너무 행복하죠.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겨울씨가 온다고 약속만 한다면.
정색하고 말하지 말아요. 진짜인 줄 아니까. 겨울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고 여름도 그저 따라 웃었다.
근데 여긴 무슨 카페인데 사람들이 저녁도 건너뛰고 와요? 매장도 작은데..인테리어도 특별한 건 없고. 맛이 좋나보죠?
커피 맛도 좋고..빵도 맛있어요. 배불리 한 끼 할 순 없어도 빵으로 허기 정도는..여름씨 말대로 매장이 작아서 식사하고 오면 이미 만석이에요. 진짜 간단히 밥 먹고 오거나 여기서 빵 먹거나 해야 해요. 근데 여기 유명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요.
다른 이유요? 여름은 그게 뭐냐는 듯 겨울을 쳐다봤다.
기다리면서 못느꼈어요? 여기 음향 시설이 끝내줘요. LP음악 틀어주는 것 같은데 사운드가 너무 훌륭해서..음악 좋아하는 사람들 평이 좋더라구요.
아..여름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손님 중에 아이팟이나 해드셋을 끼고 있는 이가 없었다. 다들 커피 한 잔에 음악 한 스푼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여름씨. 저 다음주에 부산 출장 가요. 밤에 연락해도 답신 못할 수도 있어요.
부산이요? 와..부러워요. 여름은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이즘처럼 바람이 많고 쌀쌀한 날에 부산은 따뜻한 남쪽 나라 로망을 일으키기 좋은 장소였다.
좋겠죠? 사실은 저도 기대되요. 겨울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얼마나 있다 와요?
1박 2일 코스 워크샵이에요. 목요일 오전에 김포 출발해서 금요일 점심 먹고 돌아와요. 그냥 쉬러가는 건 아니에요. (웃음) 워크샵 스케줄이 빡빡해서..
그래도 저녁 시간은 주지 않을까요? 여름은 본인 회사의 통상적인 워크샵을 떠올리곤 물었다.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일정표 보니 3시에 공식 일정은 끝나는데 7시에 저녁 식사 겸 회식한다고 다시 집합. 다음 날은 또 다른 일정 마치고 상경하니..사실상 목요일 3시 이후 한 서너시간 있는게 다에요. 너무햐죠?
겨울은 체념하듯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빡빡하긴 하네요. 관광할 시간도 없고..그러다가 문득 생각난듯이 여름은 물었다.
워크샵 장소는 어디래요?
모르겠어요. 들었는데 기억안나요. 아무튼 광안리 인근이라고 했어요. 왜요? 여름씨도 오려구요? (웃음)
여름은 무안함에 괜한 헛기침을 했다.
혹시 압니까. 저도 없던 워크샵이 생길지..(웃음)
겨울은 여름을 보고 웃다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쫓는 느낌이라 여름도 말을 걸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겨울은 말했다.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이런 모습에 여자들이 반하나봐요. (웃음)
여름은 당황하며 말했다. 제가 반하면 반했지 저한테 반한 여자분들은 없어요.
모르죠. 뭐. 본인은 모르는 이성들의 짝사랑이 있을지도.
여름은 겨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안왔지만 그보다 더 궁금한게 있어 화제를 바꿨다.
근데 겨울씨. 이 노래 왜 좋아해요? 너무 유명한 노래긴 한데..사실 전 가사를 들으면 화가 날 정도거든요.
겨울은 웃었다. 그럴만 해요. 노랫속 주인공도 자기가 웃기지 않냐고 묻잖아요.
겨울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이 노래..제가 가사 다 외우는 유일한 노래에요.
노래에 사연이 있다는 걸 직감한 여름은 아무말도 없이 겨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대학 입학 후 처음 만난 사람..헤어지고 난 뒤 이 노래..한동안 제 18번 곡이었어요. 그렇다고 가사에 나오는 것 같은 사람은 아니었고..그저 곡 자체의 절절함이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친구들과 노래방 가면 불러요. (웃음)
아..여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씨 노래 언제 한 번 들려준다더니..약속은 언제 지킬 건가요?
글쎄요. 제가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나요? 겨울은 웃더니..여름씨가 원하면 지금이라도 부를게요. 어떻게..불러 드릴까요?
겨울씨..은근히 사악한 면이 있어요. 여름은 웃었다. 겨울도 웃었다. 겨울은 여름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자신에게 사람을 놀리는..그런 모습이 있다는 걸 여름을 만나며 새삼 깨달았다. 항상 진지한 편이었다. 사람들도, 자신도 자신을 그런 사람으로 대했다..
언제가 겨울씨가 부른 이 노래를 듣고픈 마음 크지만..여전히 가사는 납득할 수 없을 거에요. 좋은 면이라곤 하나도 없는 저런 남자를..어떻게..
사랑할 수 있냐구요? 겨울은 여름의 눈을 보며 물었다.
겨울의 갑작스런 물음에 여름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그..렇..죠..보신 적 있어요? 그런 연인을?
네..알고 있어요. 온갖 단점을 가지고 있어도 여자들이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겨울의 단호함에 여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남자길래 그게 가능한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겨울은 여름의 그런 표정을 보곤 웃으며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며칠 전 은영이와 미희가 나눈 대화를 떠올리면서.
과장님같은 성격의 남자한테 한 번 빠지면 답이 없어요. 과장님이라고 왜 단점이 없겠어요?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괴벽이 있을지도 모르죠. (웃음) 그래도..그 장점이 워낙 매력적이라..헤어지고 난 뒤에나 보일 것 같아요..그 옆에 있을 땐..그냥 다 이해하지 않을까..그게..그런 게..그냥 사랑이니까..안그래요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