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오작교는 어디입니까

by 정자까야

팀장님 목요일에 하루 휴가를 내려 합니다. 여름은 업무 결재를 올리며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은 여름을 힐끗 보더니 금요일도 내지. 어중간하잖아? 물었다. 여름은 하루면 충분하다고 말하곤 팀장실에서 나왔다.


겨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깜짝 이벤트라고 해야 하나? 다만 모든 이벤트에는 리스크가 있게 마련이다. 겨울이 동료들과 선약이라도 잡는다면? 워크샵이 일정보다 늦어져 바로 회식자리로 이어지면? 그럼 그 날 겨울과 같은 하늘 아래 있던 것으로 만족하자고 여름은 마음을 다잡았다.


.

.

.


겨울씨. 목요일 워크샵 끝나고 해운대 구경하려고 서너명 모였는데 같이 갈래요? 점심 식사중에 동료 한 명이 겨울에게 제안했다. 저녁 회식까지 어차피 혼자 있음 할 일 없잖아요? 다른 동료도 거들었다.


저..그 날 일정 있어서..죄송해요. 회식 때 뵈요. 겨울은 웃으며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딱히 계획은 없었다. 그 날 그 시간은 부산의 기운에 맡기자는 심산이었다. 혼자 카페에 가든지, 호텔에서 잠을 자든지, 아니면..아니면..


.

.

.


목요일 오전 11시 김포발 김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에서 핸드폰 전원을 끄기 전 마지막으로 겨울에게 카톡을 보냈다.


우려했던대로 갑자기 광안리에서 워크샵이 잡혔습니다. 저도 3시 즈음 끝날 듯한데..잠깐 같이 걸으실래요?


.

.

.


김해공항에 내려 지하철로 사상역까지 이동했다. AI에게 물어 점심 메뉴를 미리 추천받았던 터다. 역에서 나오자 추천받은 음식점이 어딘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평일이었음에도 길게 이어진 줄. 여름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슬쩍 확인했다.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다행히 식당이 커서인지 줄은 금방 줄어들었다. 안으로 안내받으니 좌식으로 된 공간이 있었다. 왠지 정겨웠다. 정겹다는 생각을 하니 바로 겨울이 생각나 여름은 피식 웃었다. 겨울의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물어보았으리라. 성과 이름의 자연스러운 리듬은 의도된 것이었는지 아님 우연이었는지.


돼지우동이요. 망설일 것도 없었다. 다른 메뉴는 안중에도 없었다. 음식이 나오자 여름은 걸신들린듯 먹었다. 국밥 국물에 우동 넣은 것이 다인데..이렇게 신묘한 맛이 나다니..여름은 연신 감탄하며 국물까지 모두 비웠다.


국물을 먹지 마라. 밥은 한 숟갈 정도 남겨라. 술은 적당히 마셔라. 무리한 운동은 해롭다. 여름도 알고 있다. 젊은 시절 몸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 훗날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를. 하지만 그렇게 아끼고 아낀 젊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 소멸된다. 육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는 20대와 30대가 다르고 40대는 또 다르다. 인간은 뇌용량의 10%도 쓰지 못하고 죽는다는 속설도 있지 않나. 여름은 뇌든 육체든 쓸 수 있는 용량이 있다면 한계까지 쓰고 싶었다. 그것이 청춘에 대한 예우같았다. 임계치를 넘어 건강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는 것과 청춘의 심신이 감당 가능한 선까지 삶을 즐기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여름은 생각했다.


인근에 있는 복권 판매점에서 복권 몇 장을 샀다. 하늘이 맑았다. 이곳은 완연한 봄이었다. 여행의 반은 날씨라더니 여름은 겨울을 만나기 전인데도 벌써 들뜨는 기분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광안리근처 금련산역까지 지하철로 약 40분. 1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여름은 근처 카페에 들렸다. 부산 아지매들의 정겨운 대화가 여름을 반겼다.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겨울이 아직 카톡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

.


2시가 넘었는데도 겨울은 카톡을 읽지 않았다. 워크샵이 진행중일터라 전화도 걸 수 없었다. 광안리 인근이라는 것만 알 뿐 호텔이 어딘지도 몰랐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여름은 카페를 나왔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조바심이 일었다.


.

.

.


금련산역에 내려 광안리까지 걸었다. 길을 물을 필요도 없었다. 젊은 남녀, 외국인들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광안리에 도착하자 여름은 잠시 시름을 덜고 웃었다. 속초 바다 이후로 몇 개월만에 다시 본 바다.


바다야 돌고 돌아 부산으로 왔구나. 나처럼 돌고 돌아..너도 겨울을 보고 싶었니? 그래서 동해에서 남해까지 그 먼거리를 마다않고 왔니?


여름은 바다에게 말을 걸었다. 광안리의 바다는 잔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은 계속 중얼거렸다.


핸드폰이 있어도 이렇게 만나기 힘든데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움을 풀었을까. 바다야. 안그래? 넌 천년만년 살아서 옛날 연인들을 본 적 있겠구나. 그 사람들 우여곡절 만나 네 앞에서 울고 불고 난리였겠네. 그리움이 한꺼번에 터져버려서..체면이고 뭐고..


바다야. 이즘 사람들은 핸드폰 때문에 5분도 못견뎌. 그리움이 쌓일 시간이 없단다. 한심하지?


여름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 해안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어쩌면 겨울과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지만..본능이 가리키는 건 해운대 방향이었다. 걷고 있자니 전화가 울렸다. 겨울이었다.


.

.

.


워크샵 일정이 마무리되고 본부장이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묵음처리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전화기를 찾았다. 여름으로부터의 카톡. 시간을 보니 3시가 훌쩍 넘은 시간. 겨울은 부랴부랴 전화를 했다.


여름씨. 이러지 말라고 했잖아요. 여름씨 기다리게 하는 거 싫어요. 어디에요? 광안리요? 아..저 호텔이 해운대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 네..이제 끝나가요. 어디로 갈까요? 같이 움직여요.


겨울은 본부장 발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손톱을 물고 있어 깜짝 놀라 손을 내렸다. 시계를 한 번 더 보고는 겨울은 그냥 워크샵 장소를 빠져나왔다. 정장 차림이라 걸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환복할 여유같은 건 없었다.


지도를 보니 호텔을 뒤로 돌아 아파트 단지를 따라 걸으면 다리가 하나 나왔다. 다리를 건너 해안을 따라 가면 광안리가 나오는 것 같았다.


.

.

.


다리가 보였다. 길은 제대로 왔구나. 겨울은 안심하며 핸드폰을 찾았다.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바로 다리로 이어졌다. 초입에서 여름에게 전화를 했다.


여름씨 어디에요? 네 민락교요? 거기가 어디..


멀리서, 저 멀리서 한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겨울은 핸드폰을 끄고 달렸다.





작가의 이전글있어요. 그런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