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키스는 언제? 숙제 셋(2)

Ep.2 진정한 아름다움

by 정자까야

배고프죠?

여름의 질문에 겨울은 여름의 눈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점겸 먹은 엄마의 단촐한 밥상이 첫번째 원인이요, 2시간 넘는 숲 길 탐방이 두번째 원인이고 감정의 롤러코스터 끝에 되찾은 기력과 식욕이 세번째 원인이었다.

여름은 그럴 줄 알았다며 족발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장충동 일대는 대한민국 NO.1 족발거리로 유명했다.

둘은 다시 동대입구로 내려가 즐비한 족발식당 앞에 섰다. 여름은 그 중에서도 역사가 오래돼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휴일이라 그런지 손님들로 인산인해였다. 모퉁이에 있는 2인용 테이블로 안내받아 족발 대자와 파전을 주문했다. 곧 음식이 나왔고 여름과 겨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족발 고기를 입 안 가득 우겨넣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서로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제가 이제껏 겨울씨 만난 중에, 실례되는 말이지만, 지금 겨울씨 모습이 제일 웃겨요. 얼굴은 썬크림과 땀으로 희멀겋게 범벅이 됐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흐트러졌어요. 게다가 입안 가득 족발을 물고 있는 모습이라니. 이거 사진이라도 찍어 소장하고 싶네요.

여름의 짓궃은 장난에도 겨울은 웃기만 했다. 입 안 가득한 족발을 다 먹고 난 뒤에야 겨울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얼마 있어 겨울은 예의 그 우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화장을 한 모양이었다.

아..미안한데요. 그러라고 말한 게 아니었는데..여름이 당황해서 말하자

됐어요. 이미 뱉은 말을 어떻게 주워담는데요? 라며 여름을 쏘아붙였다.

여름이 겨울의 눈치를 보자 겨울은 그제서야 웃으며

농담이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품위를 잃고 싶지 않은게 여자 마음이에요. 아깐 너무 배가 고팠나봐요. 저도 모르게..그 모습은 잊어주세요. 겨울은 웃으며 말했다.

여름은 겨울이 왜 한 마리의 고고한 학 같았는지 알 것 같았다. 기품을 잃지 않으려는 강한 여인의 모습이 느껴져서 속으론 존경심마저 들었다.

겨울씨. 아까 말 저도 농담이었어요. 그저 겨울씨가 잠시 무장해제된 느낌이라 그게 친근하고 좋아서 그랬던거에요. 그리고 사실 저한테는..겨울씨 만난 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어요. 적절한 비유일진 모르지만 오드리햅번이 흙먼지 뒤집어쓰고 난민 아이들 돕는 모습 보고 아름답지 않다고 하는 사람 봤나요? 그건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한 것이죠. 겨울씨의 흐트러진 모습도, 적어도 제겐, 그런 느낌이었던 거에요. 진심으로요.

겨울은 쑥스러움에 얼굴이 붉어져선 머리를 숙였다.

알겠으니 빨리 먹기나 해요. 그게 겨울이 말 한 전부였다.

둘은 남산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길 나누던 중 겨울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여기로 절 데려온 이유가 있나요? 아름다운 길이었지만 벚꽃피는 완연한 봄이나 단풍이 절정인 가을에 왔으면 더 좋았을 길 같은데..

맞아요. 시기상 조금 이르긴 했죠. 아직 가지는 앙상하고 꽃은 피기 전이라 특별히 볼 건 없었지만...

여름은 숨을 한 번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아까 전화받았을 때 겨울씨의 심적 상태가 앉아서 커피 마시는 것보다는 두 발을 움직여 온 몸에 피를 돌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왜 그런 생각을? 겨울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떻게 자신의 상태를 그리 잘 알았는지.

그냥 감이에요. 굳이 말하면..어제 일정 생각하면 쉬고 싶었을텐데 저한테 전화한 거나, 평소 감정 표현 잘 안하는 사람이 보고 싶다고 한 거..뭔가 답답한 감정이 있다고 느꼈어요. 저도 그렇거든요. 일이 안풀리고 무거운 감정으로 괴로울 때 겨울씨가 보고 싶었어요.

겨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감동받았다. 여름은 심지어 겨울에게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이런 배려와 격려는 접하기 힘든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전제돼야 가능한 마음씀임을 겨울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은 순간일 뿐이라고, 그 순간이 지나면 곧 차가운 현실이 느껴진다고..미희의 말에 공감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다. 하지만 여름이 보여주는 마법은 너무도 강렬했다. 현실이 뒤이어 덮칠 거란걸 잊게할 정도로. 심지어 그 정도와 빈도는 예상을 뛰어넘어 앞으로도 강렬하게, 계속될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마법이 마법이라 불리는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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