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내고 싶습니다.

by 정자까야

카페로 들어선 병화에게 여름은 손을 들어 보였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병화는 앉으며 말했다.

별로. 이즘 바쁘지? 여름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직장인들에게 3월은 벚꽃보다 일이 우선인 시기다.

정신없어. 그나저나 일본 다녀온거지? 병화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그 전에. 지난번 얘기한 건 가능한거지? 여름이 물었다.

아..그거? 알았어. 어떻게든 해볼게. 근데 우리끼리 굳이 거기까지 가야겠냐. 시내에서 봐도 될 것을.. 병화는 여전히 뭔가 맘에 안드는 눈치였다.

예약한거 아깝잖아. 부탁 좀 하자. 여름의 말에 병화는 못이기는 척 알겠다고 했다. 여름은 그제서야 가방을 뒤적이더니 일본어로 된 잡지 한 권을 꺼내며 말했다.

지난번 네가 준 자료. 봐봐. 내가 다녀왔거든.

여름은 2주 전쯤 병화가 건넨 자료에 흥분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병화의 일본인 장인은 사위 친구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에 매료돼 지역의 문인 협회 등을 찾아다니며 겨울의 아버지, 정이수의 행적에 대해 묻곤 했다.

몇 개월간 헛수고를 하곤 본인도 이 일에 흥미를 잃어갈 무렵 한 협회로부터 비슷한 인물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병화의 장인이 부리나케 협회를 방문해 보니 찾았다는 것이 사람이 아니고 월간지였다.

월간지의 한 꼭지를 채운 내용인즉

일본의 한 여성 문인이 어느 날 협회에서 지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초라한 행색의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그 남성은 자신이 한국인인데 시집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며 어눌한 일본어로 물었다고 한다. 그의 일본어는 원활한 대화는 어려운 수준이어서 서로가 답답해하던 차에 마침 협회 사무일을 보던 젊은 여성이 한국어를 할 줄 알아 두 사람을 통역해 주었다고.

그렇게 그 일본 문인은 한국의 시인과 첫 대면을 하였고 완전하진 않았지만 통역을 통해 그의 사정을 짐작했다고 했다. 교사였던 그는 IMF 당시 친척의 빛보증을 선게 잘못되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고 가족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운 나머지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했다. 왜 일본이었냐는 물음에 다니던 학교의 일본어 선생이 도쿄에 있던 자신의 부모에게 잠시 머물 거처를 부탁해 주었다고.


각종 허드렛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자금을 모은 그는 더이상 신세질 수 없어 그곳을 떠나 쪽방 같은 곳을 전전했는데 그 사이 간단한 일본어 정도는 익혀 조금 더 페이가 높은 알바를 구할 수 있었다고 했다. 쪽방이지만 자신만의 거처가 생기고 어눌하지만 대화가 가능해지자 그는 문인으로서의 마지막 바람을 표현하고자 용기를 내 협회를 찾게 됐다는 것이 여류 작가의 회상 첫 대목이었다.

한국 시인의 딱한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일본의 문인은 시간 날 때마다 협회를 방문하라 권유했고 이후 드문드문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갔던 모양이다. 수년의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돈독해진 두 문인은 한 권의 시집을 공동으로 작업하였는데 한국의 시인이 한글로 시를 쓰면 일본의 문인이 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식이었다. 저자와 역자의 관계 같은. 이름 없는 두 문인의 작품이었고 역시 이름 없는 출판사가 50부 이내의 극소량을 인쇄했다고.


공동 작업을 마치고 한국의 시인은 한국을 방문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시집을 전해주기 위함일 것이라 짐작했다 했다. 이후 아쉽게도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었으며 이 회고를 하는 순간 그가 너무도 그립고 보고 싶다는 것이 월간지에 실린 기고문의 내용이었다.

병화의 장인은 해당 월간지를 사위에게 보내주었고 병화는 여름에게 이 소식을 지체없이 전했으며 여름은 한달음에 달려와 그 월간지의 내용을 전해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병화와 여름은 기고문 안 한국의 시인이 겨울의 아버지일 것이라 확신했다. 모든 정황이 맞아 떨어졌다. 빚보증, 사채업자, 일본으로의 도피, 시인..심지어 교사라는 직업까지. 더 큰 수확은 그가, 여름의 기대마냥, 일본에서 시집을 발간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일본의 여류 작가와, 공동 작업의 결과물인 시집을 찾는 일이었다.

여름은 서둘러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도쿄로 가서 친구의 장인을 찾아뵙고 그간의 관심과 노고에 대해 깊은 감사를 전하고 해당 협회를 찾아가 일본 문인의 연락처를 묻는 것. 지난주 주말 여름이 일본을 급하게 다녀온 이유다.

여름은 병화에게 월간지를 다시 보여주며 일본에서의 행적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러니까..협회에서도 그 일본 문인과의 연락이 안된다는 거지?

그래. 워낙 오래됐고..남겨진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주소도 있었는데 교토 어디인가봐. 거기도 알아봤는데 재개발인지 해서 예전 흔적이 남아있질 않은 모양이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병화는 머릿속에서 대안을 분주히 찾으며 물었다.

나도 귀국하며 내내 생각해봤는데 유일무이한 연결고리가 연락이 닿지 않는 지금..할 수 있는건 무식하게 뒤지는 것 뿐인거 같아.

뒤진다고? 병화는 되물었다.

그래. 50부의 책..상당수는 동네 서점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가 소리소문 없이 폐지 신세가 됐겠지만..그 중 단 몇 권만이라도 기적적으로 팔리거나 선물용으로 나눠졌다면..혹시 도쿄의 헌 책방 거리 어느 곳에 먼지 켜켜이 쌓여가며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그런 한가닥 희망..

진보초..병화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뭐라고? 여름이 무슨 뜻이냐 묻자 병화가 말했다.

진보초라고..도쿄 헌책방 거리 지명이야. 내가 알기론 100여개의 헌책방 서점이 그 거리에 있는데 예전 종로 헌책방 같은 분위기라고 보면 돼. 고양이 서점 같은 특이한 컨셉부터 오래 전 잡지도 많고..

진보초라..고마워. 한 달에 한 번 정도 도쿄로 가서 거기부터 발품을 팔아야겠어.

그 수밖에 없나..병화는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하다못해 그 일본 문인에 대한 단서라도 있다면. 스즈키 유코. 인터넷을 뒤져도 정보 하나 없었다.

막막한건 맞아. 그래도..한 달 전에 비하면 진일보한거야. 3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좁혀진 기분이랄까. 겨울씨에게 너무도 말하고 싶지만..시집을 찾기 전까진 함구해야겠지. 반드시 찾아내서 겨울씨와 겨울씨의 어머니께 돌려드리겠어. 아버지, 그리고 남편의 마지막을 말야.

그래..응원한다. 병화는 씁쓸하게나마 웃었다. 벗의 기대를 꺽는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병화는 몆 년간 본 적이 없었다. 그토록 빛나는 여름의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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