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춘천으로..(1)

Ep.1 말할 수 없는 마음

by 정자까야

겨울은 야근을 하는 내내 기운이 넘쳤다. 마지막 리포트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땐 콧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사무실을 나오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겨울은 우산을 펴고 종종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떠난다. 춘천이라는 작은 해방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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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새벽녘에 일어났다. 씻고 거실로 나오니 엄마가 김밥을 만들고 있었다.


엄마. 가서 사 먹으면 되요. 초등학생도 아니고..겨울의 말에 엄마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작은 캐리어에 갈아입을 옷가지 등을 싣고 겨울은 미희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쯤이야? 아..그래? 다 왔네..알았어. 응..그래. 난 다 준비했어. 전화하면 바로 나갈게.


미희가 차를 운전하기로 했다.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발하기로 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 것이다. 엄마도 김밥을 다 쌌는지 거실 한 켠에 앉아 있었다.


춘천 어디로 가니? 엄마는 무심한 듯 툭 물었다.


캠핑장인데 어딘진 잘 모르겠어요. 미희가 픽업하기로 해서..


넌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니..엄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겨울은 기분이 상한 채로 떠나고 싶지 않아 엄마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가끔은 그러고 싶잖아요. 그저 어딘가로 가고 싶은..그곳이 어디든요. 장소는 처음부터 중요하지 않았어요.


미희가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다. 엄마도 겨울을 따라 나섰다.


제가 들고 갈게요. 나오지 마세요. 겨울은 엄마가 싸준 김밥을 챙기려 했지만 엄마는 한사코 들어다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할 수 없이 둘은 대문을 열고 나와 기다리고 있던 미희와 마주쳤다. 미희는 겨울 엄마를 보곤 놀라서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엄마는 미희에게 근황을 물을 뒤 김밥을 차 뒤자석에 싣고는 돌아갔다.


미희는 시동을 걸었다. 겨울의 집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 때서야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너도 같은 생각이지? 겨울은 물었다.

내 느낌이 맞다면 너희 엄마..진짜 나랑 가는 거 맞는지 확인하러 나온거지? 미희가 대답했다.

그래..맞을거야..참 대단한 사람이야. 내 엄마지만..가끔 연민이 느껴지기도 하고..왜 그렇게 사는지..겨울은 체념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스름이 걷히고 동이 트고 있었다. 전날 제법 내린 비로 대기질은 어느 때보다 좋았다. 탁 트인 시야와 깨끗한 공기. 여행의 반은 날씨란 말을 증명하듯 미희와 겨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기분이 좋은 듯했다. 차 안에 미희의 플레이리스트 노래가 흘러나왔다. 미리 세팅을 했는지 감미로운 봄노래가 이어졌다. 한시간 여를 달리자 춘천 외곽으로 접어들었다. 목적지까지 20여분 거리. 겨울은 흐르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미희에게 물었다.


거기 근처에 마트 큰 거 있어? 없으면 하나로마트 같은 데서 장 보고 가야하는 거 아냐? 다시 나오기 번거롭잖아..


아..그건..미희는 순간 당황한 듯 보였다. 잠시 후 썬글라스 아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변명하듯 말했다.


바로 아침부터 요리해 먹긴 뭐하니까 짐 정리하고 시내가서 먹자. 춘천까지 왔는데 닭갈비며 막국수며 먹어줘야 하지 않겠어? 아점으로 먹고 소양강 근처 카페가서 커피 한 잔 할까? 장이야 저녁 먹을 정도만 보면 되고..


아..그것도 좋겠네..겨울은 대답했다. 오늘 하루는 미희에게 완전히 맡기자고 결심하면서. 스쳐지나는 춘천의 풍경이 더없이 정겹고 편안했다.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도착하고 나서 겨울은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인디언집처럼 생긴 글램핑 숙소가 연이어 붙어있었고 앞으로는 커다란 호수가 있어 산책하기 좋을 것 같았다. 시설도 깔끔하고 잘 관리돼 있었다. 미희는 예약한 숙소를 찾아 숙소 옆으로 주차를 했다.


둘이 쓰긴 너무 큰 거 같은데? 겨울의 말에 미희는 클수록 좋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겨울은 캐리어 등 가져온 짐을 챙기며 아무래도 너무 넓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미희의 수고에 토를 달고 싶지 않아 잠자코 있었다.


취사실이며 공용 화장실, 매점 등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겨울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멀리서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데 경희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썬글라스를 벗고 자세히 보아도 틀림없는 경희였다.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은 자세로 서 있으려니 경희가 웃으며 다가와 겨울을 꼭 안았다.


어..어떻게 된거야? 겨울은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보는 그대로. 경희는 겨울의 앞에서 쇼케이스를 하듯 한바퀴 돌고 춤을 추듯 스텝을 밟았다. 미희는 숙소를 닦을 걸레를 빨아내오며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뭐해? 나만 일시키고 놀거야? 두 사람 빨리 와서 청소 좀 도우라고.


겨울이 미희와 경희를 번갈아보고 있으려니 경희가 겨울에게 다가와 팔짱을 꼈다.


아직도 얼떨떨해? 서프라이즈 제대로 당했네..그리 말하곤 깔깔대고 웃었다. 그제서야 겨울은 두 사람이 짜고 자신을 속였음을 알았다.


너희들 정말..이러기야? 겨울의 분노가 느껴지자 경희는 냅다 줄행랑을 쳤고 미희는 어딘가로 숨어 버렸다. 겨울은 경희를 쫓아가며 웃다 울다를 반복했다. 당황했지만 기분 좋은 당혹감이었다. 경희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고 자신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한 친구들의 우정에 감동했다.


친구들을 뒤쫓다가 숨을 헐떡이며 겨울은 걸었다. 행복했다. 이런 친구들이 평생의 벗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미안했다. 이 이벤트를 선사한 친구들에 앞서 누군가를 떠올린 마음이.


차에서 내린 순간 이 공간에 함께했으면 했던 사람이 정작 친구들은 아니었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주체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친구들은 그간 겨울에게 말할 수 없었다. 겨울이 놀라고 행복해할 모습을 보고파서. 이젠 겨울이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서운해하거나 혹여 배신감을 느끼진 않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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