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춘천으로..(2)

Ep.2 긴 하루

by 정자까야

겨울아 빨리 와.

겨울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경희와 미희는 그런 겨울을 보며 웃었다.

겨울아. 너 여기에 딱 어울리는 것 같아.

미희가 시동을 걸며 옆자리에 앉은 겨울에게 말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기 너무 좋아.

겨울의 말에 미희는 큰 소리로 웃더니

여기가 춘천 어린이 글램핑장이야. 네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게 어린이 같다고 경희가 그러더라.

겨울은 시쳇말로 빵 터져서는 한동안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앞뒤 좌석 창문을 모두 개방하고 바람과 벚꽃의 내음을 느꼈다. 봄 같은 맑은 째즈가 분위기를 더했다. 세 친구는 말없이 이 여유와 평온함을 만끽했다.

좋다..경희가 뒤에서 한마디 했다.
정말..겨울이 받았다.

미희는 두 글자 운을 맞추려고 애를 쓰다가 급한 마음에 툭 뱉었다. 레알..

경희, 겨울은 그게 뭐냐며 배를 잡고 웃었다. 미희도 무안했는지 그저 웃기만 했다. 멋진 풍경이었다. 인생의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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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 겨울이 슬슬 시장기를 느끼며 물었다.

닭갈비. 겨울이 너 숯불닭갈비 먹어본 적 있어? 미희가 물었다.

숯불? 먹어본 거 같기도 하고..주로 철판닭갈비를 먹었던 것 같은데?

그치? 서울엔 숯불닭갈비가 별로 없더라. 춘천에 잘하는 곳이 몇 곳 있는데 그 중 한 곳이야. 거의 다 왔어.

금요일 오전이라 손님은 많지 않았다. 셋은 여유있게 아침 겸 점심 식사를 즐겼다. 겨울과 경희는 연신 엄지를 치켜들었다. 사실 미희도 이곳은 처음이었다.

여긴 어떻게 안거야? 유투브? 경희는 배가 어느 정도 불러오자 그제서야 궁금했는지 미희에게 물었다.

아..그냥..아는 지인이 추천해줘서. 미희가 얼버무리자 경희와 겨울은 눈을 마주치곤 웃었다. 누군가 맘에 두고 있다는 미희의 말이 겨울의 뇌리를 스쳤다. 뒤이어 여름에 대한 미희의 애틋함이 떠올라 겨울은 웃음의 끝에 살짝 낯빛이 어두워졌다.

다음 코스는 어디야? 겨울처럼 경희도 무작정 나온 모양이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하루라니. 겨울은 묘한 설레임을 느꼈다.

춘천에 예쁜 까페가 너무 많아. 고르는데 힘들었는데 내 감을 믿어볼래? 미희가 묻자 경희가 되물었다.

네 감이야 아님 네 지인 감이야?

겨울은 웃었고 미희는 살짝 당황하다 말했다. 기집애. 내 감이다 내 감. 세 친구 모두 박장대소했다.

한 눈에도 큰 카페였다. 주문을 하고는 미희가 친구들에게 따라오라는 표시를 했다. 미희는 어딘가를 찾은 듯 이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경희와 겨울은 미희를 찾고는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를 납득했다. 멋진 전망대였다. 춘천하면 소양강을 떠올리지만 구봉산을 낀 전망도 숨은 명소였다. 세 친구는 따로 또 같이 연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커피 한 잔과 디저트를 놓고 세 친구는 밀린 이야기를 끝도없이 쏟아냈다. 봄 여름 가을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겨울은 그리움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자신이 마시고 있는 커피가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느껴졌다. 경희는 미희에게 아까 그 지인이 누구냐고 집요하게 물었지만 미희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왜 그래? 너답지 않게. 어디 불륜남이라도 만나는 거야? 경희는 슬슬 오기가 나는지 짓꿏게 농을 던졌다.

미안 미안. 신비녀 컨셉 이런건 절대 네버 아니고..사정이 좀 있어. 있다가 저녁에 불멍하면서 얘기해줄게.

미희의 타협안에 경희도 한 발 물러났다. 레알이야..그렇게 말하며. 세 친구는 또 깔깔댔다.

이 다음은 뭐야? 설마 여기까지가 끝은 아니겠지? 경희가 물었고 미희는 부지런히 경로를 네비로 찾고 있었다.

김유정 소설가 알지? 미희는 핸드폰을 보며 물었다.

김유정? 봄봄? 겨울이 설마 하는 느낌으로 되물었다.

맞아. 봄봄. 동백꽃..겨울이 너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안졸았구나. 미희는 웃으며 대꾸했다. 근데 김유정 고향이 춘천인건 몰랐지? 경춘선에 김유정역이 있거든. 작가를 기리며 역명으로 딴거지.

그렇구나. 몰랐어. 그럼 거기 김유정 문학관 이런 데 있겠네? 우리 거기 가는거야? 겨울이 기대를 담아 물었다.

딩동댕. 김유정 문학촌이 거기 있어. 작가 생가랑 작품도 볼 수 있대. 가보자. 문학촌 보고 레일 바이크도 타자. 사실 난 후자가 더 관심이 가. 김유정 작가님한텐 미안하지만. 미희는 웃으며 말했다.

15분여를 달려 세 친구는 김유정 문학촌 앞에 섰다. 생가를 둘러보고 동백꽃 애니메이션도 관람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만 읽었던 문학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현실, 엄마와 세 남자의 이야기를 접했다면 김유정 작가는 어떻게 풀어냈을까..겨울은 엉뚱한 상상을 하며 걸었다. 문학은 큰 관심 없다던 미희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곳곳을 둘러보아 겨울과 경희는 뒤에서 말없이 웃었다.

레일바이크는 환상적이었다. 세 친구는 서로 다른 테마로 구성된 몇 개의 터널을 지나며 소리란 소리는 죄다 질렀다. 특히 디스코가 흘러나온 터널에서 경희는 흥을 못이기고 일어나 춤을 추는 바람에 겨울은 민망함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종점에서 단체 버스를 타고 김유정역으로 돌아오는 독특한 여정이었다. 친구들은 이제껏 탔던 레일바이크 중 단연 최고였다고 입을 모았다.

실컷 소리지르고 수다를 떨고 나니 허기가 졌다. 슬슬 장을 보고 아지트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하지만 미희는 여전히 장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경희가 물었지만 미희는 급한 거 아니니 일단 돌아가자는 말만 했다. 겨울은 고개를 돌려 뒷자석의 경희를 쳐다봤고 경희는 겨울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한 치 앞도 모를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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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글램핑장 안에서 쉬고 있으려니 경희가 돌아오며 한마디 했다.

옆 캠프에 사람들 왔네? 남자 셋이던데..오늘 밤 편히 자긴 글렀다. 옆 집이 술마시고 시끄러울 듯하니 우리도 밤새 마시는 수밖에.

겨울이 웃자 경희는 한 술 더 떴다. 남자 셋 여자 셋인데 미팅이라도 해볼까?

겨울의 기겁하는 표정을 보곤 경희는 겨울을 계속 놀리고 있으려니 미희가 혼잣말 비슷하게 말했다.

셋이라고?

경희가 미희의 말에 반응했다. 왜? 너도 관심이 가? 경희는 미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농담을 했다.

아니..좀 이상해서..미희는 또 혼잣말처럼 말하곤 밖으로 나갔다.

남겨진 겨울과 경희는 미희가 지나간 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희 재 오늘 왜 저래? 경희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고 겨울은 딱히 할 말이 없어 글쎄..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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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상이는 숙소로 들어오며 자꾸 뒤를 돌아봤다.

왜? 귀신이라도 봤어?

구석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병화는 희상이를 보며 물었다.

귀신일지도 몰라 진짜..귀신이 아니고선 저렇게 예쁠 수가 없지. 희상이는 여전히 안믿긴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뭔 소리야? 병화가 하던 일을 멈추고 물었다.

유부남은 알 필요 없는데..좀전에 겁나 예쁜 여자분이 지나갔거든. 연예인인 거 같기도 하고. 보니까 우리 옆 텐트 같던데..

희상아. 그건 여자친구 있는 너도 알 필요 없는 정보 아니냐? 병화의 말에 아차 싶었는지 희상이는 그저 웃기만 했다.

영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인터넷으로 뭔가를 찾고 있는 영수를 보며 희상이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라. 웬일이야? 여자 얘기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녀석이..역대급 미모를 봤다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네? 갑자기 불교에 귀의라도 한거야?

글쎄..니 눈을 못믿는다고 해야 하나? 영수의 말에 희상이는 주변에 있던 라면 하나를 집어던졌다.

분통이 터졌는지 희상이는 영수에게 쏘아붙였다. 야. 그리고 뭔 음식을 이리 많이 싸왔어. 있다가 여름이 온다고 해도 인당 2, 3인분은 책임져야 할 양이야. 어이구..술은 또 뭐고. 아주 박스채 갖고 오셨구만. 술 못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있나..

부르토스. 화 풀어. 아까 말은 농담이었어. 영수는 웃으며 희상이를 껴안았다.

화 안 났어. 그냥 네가 이상해서 하는 말이야. 납득할 수가 있어야지 이 상황이. 희상이는 짜증을 조금 내려놓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병화도 거들었다.

이상한 건 사실이야. 여름이가 뭔가 설계한 느낌이 나는데 정작 이 녀석이 늦게 오니 원..

한낮의 기운이 빠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잠시 나가 있던 영수가 안에 있던 친구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희상아. 아까 네가 말한 그 분 다시 보고 싶냐? 내가 가서 말 걸면 나한테 얼마 줄래? 영수는 입꼬리가 한껏 올라서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뭐하려고? 너 진짜 가서 말걸려고? 희상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영수는 친구들을 뒤에 남겨두고 글램핑장 옆 숙소에 가서 사람을 찾았다. 경희와 처음 마주쳤다. 경희는 경계하는 말투로 누구인지를 물었다. 영수는 순간 당황하여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도 못했다. 병화와 희상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희상이는 손톱을 물어뜯어가며 민망해했다.

뒤이어 화제의 그 여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영수는 크게 반가워했고 그 여인은 또 한번 심장이 멎는 듯 했다. 그 충격은 경희를 봤을 때 보다 훨씬 컸다. 영수는 상대가 아는 척을 해주길 바랐지만 상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은 영수를 향해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쯤 출장차 일본 어딘가에 있을, 어떤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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