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봄을 기억하는 라일락꽃

도시에서 화목을 꿈꿉니다.

by 김영하

화려한 장미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어김없이 봄이 오면 삭막한 도시 모퉁이에서 전해지는 달콤한 향기가 있습니다. 흔히 라일락이라 부르는 꽃향기입니다. 사람들은 그 향기를 맡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고 깊은숨을 들이마십니다. 그것은 봄이 우리에게 보내는 가장 향기로운 초대장입니다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가수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노래가 생각나네요. 여러분들은 잊지 못할 사랑한 기억이 있나요?

향기로 잊을 수 없는 기억에 잠기게 하는 꽃이 라일락입니다. 눈보다 코로 먼저 느끼는 식물입니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라일락은 근대 이후 서양 문물과 함께 공원이나 학교의 정원수로 많이 심었습니다.

KakaoTalk_20260408_080554924.jpg 수수꽃처럼 꽃이 피는 라일락(수수꽃다리)

라일락은 수수꽃다리(영명 : Korean early lilac) 속 식물로 세계적으로 서른 종 정도가 분포하지만, 보통 원예종은 라일락이라고 부릅니다. 2,500여 품종이 육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라일락의 원예품종 중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947년 북한산에 자생하는 야생 수수꽃다리 열두 개를 채집한 미국 군인이며 식물학자인 엘윈 미터 (Elwin M. Meader)가 미국으로 가져가 개량하여, 꽃이 작고 향기가 진한 새로운 품종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그 일을 돕던 여직원의 성씨가 김이었죠. 그래서 육성한 라일락을 ‘미스김 라일락’이라고 이름을 붙였대요.

현재 미스김 라일락은 다른 라일락보다 추위에도 강하고 꽃이 오래 피어 전 세계 라일락 시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이 꽃을 역수입할 때마다 미국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식물이 타국의 자산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미스김 라일락만이 아닙니다. ‘구상나무’, ‘산딸나무’, ‘원추리’, ‘호랑가시나무’ 모두 미국에서 식물유전자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자원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을 때, 미국이 먼저 등록한 거예요. 많은 우리 자생 식물들이 해외로 나갔습니다.

KakaoTalk_20260408_145057220.jpg 향기로 봄을 알리는 꽃 라일락(수수꽃다리)

식물 주권은 한 국가가 자국의 영토 내에 있는 식물 자원에 대해 가지는 독점적인 권리를 의미합니다. 2014년 발효된 나고야 의정서(Nagoya Protocol)에 따라, 이제는 특정 국가의 생물자원을 이용해 이익을 얻을 경우 그 이익을 자원 제공국과 공유해야 합니다.

식물 유전자원은 신약 개발, 신품종 육성, 화장품 및 식품 산업의 핵심 소재가 되는 '녹색 황금'입니다. 식물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자원화 가능성이 있는 우리의 이웃입니다.


봄이 가지전에 라일락 보라색 꽃향기를 느껴봐요. 꽃은 지고 계절은 바뀌겠지만, 라일락이 남긴 향기는 우리 기억 속에 저장되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겠지요.

KakaoTalk_20260408_145212956.jpg 꽃향기를 느끼면서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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