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빛이 온세상에 퍼지다, 김만덕

제주올레 못다한 이야기

by baekja

갭인년 숭년에도 살앙남아신디

(갑인년 흉년에도 살아남았는데)

갭인년 숭년에도 먹당 남은 게 물이여

(갑인년 흉년에도 먹다 남은 게 물이다)


갑인년 흉년에 겨우 살아남았는데 흉년을 지나고 났더니 먹고 남은 게 물밖에 없다는 제주 속담입니다. 아마 ‘엎친 데 덮친 격’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얼마나 갑인년의 흉년이 심했으며 제주 속담으로도 남아 있을까요? 아, 갑인년이라고만 말하면 어느 년도인지 특정할 수 없겠군요. 1794년(정조 18년) 갑인년을 말합니다. 이 당시의 제주 흉년이 얼마나 심했는지 제주도에 어사로 다녀온 심낙수는 ‘만약 쌀로 쳐서 2만 섬을 배에 실어 보내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머지않아 다 죽을 것입니다.’라고 장계를 올렸습니다. 또한, 이듬해 <정조실록>에는 제주의 상황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이즈음 제주 백성 3분의 1이 굶어죽었다.’


무척 심각한 제주의 상황을 우리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현군(賢君)이라 칭송받는 정조가 가만 놔둘 리 없었습니다. 정조는 1795년(정조 19년) 윤2월 진휼곡 5천 석을 실은 배 12척을 보냈으나 제주 바다를 관장하는 해신이 노했는지 이 중 5척이 바다를 건너오다가 난파됩니다. 그래도 중앙 정부의 진휼곡 등으로 겨우겨우 기나긴 흉년을 이겨내는 듯했지만, 갑인년으로부터 2년이 지난 1796년에도 제주 백성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때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 육지에서 쌀을 사들이고 이를 제주 백성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나누어 준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로든 드라마로든 한 번 쯤 들어봤을 만한 제주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김만덕입니다.


김응열의 3남매 중 막내이자 외딸로 태어난 김만덕은 1750년, 12세가 되던 해에 전국을 휩쓴 전염병과 기근으로 부모를 잃고 기녀의 수양딸로 맡겨집니다. 13세 때부터는 교방(기녀 관장 기관)살이를 하며 잔심부름을 하고, 노래와 춤, 거문고를 배우는 등 기녀수업을 받습니다. 18세 때는 정식 기녀가 되었으며, 이후에는 기녀의 우두머리인 행수기녀가 되었습니다. 이후 생활에 여유가 생기자 김만덕은 관가에 나가 기녀명단에서 삭제해 줄 것을 호소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고 목사인 신광익과 판관 한유추를 찾아가 양녀로 환원시켜달라고 요청하여 결국 24세에 양인 신분을 회복합니다. 이때부터 객주를 운영하며 장사를 시작하죠. 김만덕의 좋은 수완으로 김만덕의 객주는 날이 갈수록 커지며 김만덕은 거상으로 성장합니다. 근데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나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거의 허용되지 않은 조선에서 여성이 상인으로 활동하며 거금을 벌 수 있었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김만덕의 생애에서 벗어나 당시 제주만의 특별한 상황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주도는 척박한 토양으로 인해 농사를 짓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업과 농업을 같이 하는 반농반어 생활로 생계를 꾸려야 했죠. 이런 힘든 생계를 꾸려가는 것에 더해 중앙 정부의 가혹한 세금도 충당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남자와 여자가 모두 경제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지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생산에 참여해야 했고 자신의 몫을 해내야 했기에 자연히 제주도 내에서는 육지에서와 달리 남성의 권력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녀로 많은 수익을 얻는 여성들은 집안의 경제권을 쥐고 있기도 했었죠. 육지와는 달리 생존을 위해 여성도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자유로웠던 제주에서 김만덕의 상업 활동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객주가 근처에 있던 산지포구의 현 모습


다시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오죠. 그녀는 그렇게 산지포구 근처 그녀의 객주에서 30년 이상 상업을 통해 부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갑인년 흉년이 찾아오자 그녀는 천금을 내어 제주도민들을 살렸습니다. 체제공이 쓴 <만덕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정조 20년 6월 6일 만덕이 천금을 내어 쌀을 육지에서 사들였다.

모든 고을의 사공들이 때맞춰 이르면 만덕은 그 중 십분의 일을 취하여 그의 가족을 살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관가에 실어 날랐다.’


조선 후기 정부의 공식기록인 <일성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노기 만덕은 스스로 원하여 쌀 3백 석을 바쳤습니다.’


관가에 쌀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굶주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쌀을 받아들고는 모두 김만덕을 칭송하며 ‘우리를 살린 자는 만덕이다.’라고 했죠. 이런 만덕의 선행은 제주 목사의 보고로 제주도민들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의 임금 정조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정조는 기특하게 여겨 상을 내리려 하였으나 김만덕이 이를 거절하여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김만덕은 이에 서울에 올라가 왕궁을 보고, 금강산을 유람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평민이었던 김만덕은 출륙금지령 때문에 제주도 밖을 나갈 수 없었는데 이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정조는 내의원 의녀반수라는 명예직을 내리는 것으로 임금인 정조를 만날 수 있게 했습니다. 김만덕은 서울에 올라가 왕에게 직접 벼슬을 받고, 왕비에게 상을 받은 뒤 금강산 유람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편의를 봐주었음이 <정조실록>에 잘 드러나 있지요. ‘허락해 주고 나서 연로의 고을들로 하여금 양식을 지급하게 하였다.’, ‘양곡과 돈을 지급하여 뱃길로 본향(제주도)에 떠나보냄으로써…’와 같은 구절들은 김만덕에 대한 정조의 배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배려를 해 준 까닭은 김만덕이 정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개혁의 한 사례였기 때문입니다. 천대받던 상공업으로 자금을 벌어들여 사회에 환원하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의 단면을 김만덕이 보여준 것이죠. 그래서 정조는 자신의 개혁의지를 밝히기 위해 ‘만덕전’, 즉 김만덕의 전기를 지어 올리라고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이 만덕전은 많은 학자들의 문집에 실려 있습니다. 이재채, 조수삼, 김희락, 체재공 등이 대표적입니다.


김만덕은 이 과정에서 반년정도 서울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김만덕이 서울에 길게 머무는 동안 자연히 제주도민을 구하고 왕에게 소원을 빌어 서울에 올라온 제주 여인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생겨났습니다. 이가환, 박제가 등의 문인들이나 학자들은 만덕을 만나고 만남을 기념하는 시를 지어주기도 했으며, 정약용도 만덕을 만나고 쓴 글을 <여유당전서>에 싣기도 했습니다. 또한, 만난 문인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김만덕을 송별하며 지은 시문이 한 권의 첩으로 만들어질 정도였지요. 이런 일화는 김만덕의 위대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김만덕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을 이렇게 남길 수 있을 정도로 위대했던 정조시대의 문화를 증명하기도 합니다.


김만덕은 제주로 돌아와 계속 자선사업을 하다 1812년 사망했습니다. 묘소는 생전의 유언에 따라 화북에서 제주성으로 가는 길목인 ‘가ᆞ으니마ᆞ루’라는 언덕에 묻혔습니다. 제주도민들은 그녀의 생전 행동을 칭송하고, 죽음을 슬퍼하며 ‘만덕할머니’로 불렀습니다. 존경과 친근함의 느낌을 담아 할머니라는 별칭을 붙인 것이죠. 후에 추사 김정희는 제주에 유배 와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의 3대손 김종주에게 ‘은혜의 빛이 온세상에 퍼지다.’라는 뜻을 가진 ‘恩光衍世(은광연세)’ 글자를 써서 주었습니다.


은광연세 현판


그녀의 무덤과 기념비는 현재 사라봉 근처에 서있습니다. 그녀는 죽었지만, 그녀의 나눔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김만덕기념사업회가 세워졌고, 이 사업회에서 의인들에게 김만덕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육신은 사라졌지만, 아름다운 정신은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좌측은 산지천 변에 있는 김만덕기념관의 모습, 우측은 국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된 김만덕 영정


제주올레 18코스는 그녀의 자취로 가득합니다. 초입부에 있는 김만덕기념관, 산지천에서 코너를 돌자마자 나오는 복원된 김만덕 객주, 사라봉 아래에 있는 묘소와 기념비까지. 하지만, 아마도 길을 걷다보면 별 생각 없이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꼬닥꼬닥(‘천천히’의 제주 방언) 걸어가는 올레길인 만큼 코스 내에서 만덕할머니의 자취를 발견한다면 잠시 멈추어 서서 18세기 후반 이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실천했던 위대한 사업가를 머릿속에 떠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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