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범위

by baekja

올해 8월 영화 <학교 가는 길>에 상영금지와 일부 장면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과가 궁금했는데 법원에서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영화를 즐겨 보지는 않지만, 관심은 있고 다룬 주제도 흥미가 끌려 언젠가는 사서 보겠지 했던 영화라 관련 뉴스를 몇 개 찾아보았다. 소송을 건 주민의 주장이 가장 흥미를 끌었다. “지역발전 차원에서 특수학교 대신 한방병원 건립을 주장했을 뿐인데 영화에는 마치 님비(지역 이기주의적 행동) 행위를 하는 것처럼 나타났다.” 솔직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가 한 행동과 발언은 분명히 특수학교에 대한 'Not In My Back Yard.'와 한방병원에 대한 ‘Please In My Front Yard.'였으니까.


사실 주민 A를 욕할 수는 없다. 당장 특수학교 하나에 저렇게까지 반대해야겠냐고 말하겠지만, 옆에 세워져서 남들 다 올라가는 집값 혼자만 떨어진다고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자유 대한민국은 반대할 것이다. 또한, 반대할 자유도 있다. 다만, 조금 슬픈 건 몇몇 대한민국 국민은 당연히 가져야 할 교육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교육의 권리가 집값이라는 추상적인 물질적 가치에 떨어져 버리는 상황도 슬프지만, 교육을 받기 힘든 사람들의 평범한 권리를 위해서 세워지는 학교가 집값을 떨어트리는 것은 슬프다 못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윤택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효율과 성장을 추구한다. 돈을 외치면서 물질적 부를 쌓으며 행복해하고 맘껏 소비하는 것. 가장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이다. 그리고 그 이상적인 삶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효율과 성장에 방해되는 것을 모두 쳐내왔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며 차별이 아닌 차이의 이해를 해야 한다는 도덕 교과서의 뻔한 이야기들은 한밤의 꿈처럼 흩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이 재미있어 보여 집어 들었는데 내용은 전에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치매 증세를 가진 사람들을 종업원으로 단기간 식당을 연다는 이야기. 일본에서 벌어진 기적 같은 이야기는 매우 놀랍고 신기했다. 이 요리점의 시작은 치매 환자들의 간병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증상에 따라 장보는 일, 요리하는 일, 빨래하는 일 등을 나누어 환자들을 모아 간병인들과 같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들의 삶을 보장하고 있었다. 이 간병 방식은 매우 단순한 질문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에게 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상황이 지금 만들어져 있는 걸까?”


문득 한 전시회가 떠올랐다. 올해 여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라는 전시회였다. 정신장애와 발달장애를 가진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 현대 미술의 사회적, 미학적, 철학적 이야기에 상당히 지쳐 있던 나는 그들이 표현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며 간만에 새로운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는 느낌을 받았다. 외부와 연결된 문이 적은 대신 내면의 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전에 보지 못했던 일상의 고민과 상상의 세계를 매우 새로운 방식으로 펼쳐 보였다. 매우 새로운 느낌을 주었지만,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평범하다.’였다. 분명 새로운 영감과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좋은 의미로 다른 미술 전시회들과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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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와 차이를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그 이해는 꽤 자주 차이를 더욱 강력하게 인식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차이를 이해하기 전에 앞서 깔려 있는 대전제를 종종 잊곤 한다. 그 누군가도 사람이라는 것.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서 간병인은 치매 환자들의 거주 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공감하는 PD에게 이렇게 말한다. “치매 환자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분명 <학교 가는 길>의 소송에서 누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주민 A에게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장애 학생을 둔 가족들에게 공감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양쪽의 주장 아래 깔려 있는 근거는 조금 많이 다르다. 한쪽은 경제적 이익의 효율과 성장, 다른 쪽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이다. 사실 여기서 이야기는 단순해진다. 돈과 사람 그중에 무엇이 중요할까? 고민된다면 이 말을 떠올려보자. “그들도 사람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평범하지 않잖아. 다르잖아.” 그 평범함과 보통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당신이 당장 오늘의 당신이 세워둔 보통의 기준에 내일 적합하지 않다면 따를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평범한 목수에서 병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게 된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는 각종 사무 처리에 의해 자신이 이제 보통의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다. 또한, 열심히 살아온 대가로써 요구하는 최소한의 복지 테두리조차 벗어난다. 시스템 안에서 보통의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그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질병 수당 항고 날짜를 잡아줄 것을 요구한다.”라고 말한다. 내가 나로서,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한 이 말은 <학교 가는 길>의 특수학교,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의 단기 레스토랑 노동,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의 작품들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그들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대우받는 것이 어렵지 않은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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