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미술사 관련 전공 서적을 읽다 보니 질려버려서 아무 생각 없이 도서관 서가에 있는 책 한 권을 뽑아 왔다. 제목이 맘에 들었다. ‘<보통의 감상>’. 서문을 보니 영화의 내용과 연결시켜 조금 쉽게 현대 미술 작품을 소개한 책이었다. 꽤 재밌고 쉽게 읽었다. 새롭지는 않았지만, 쉽고 깔끔하게 미술 평론을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과연 ‘보통’의 감상이든 ‘보통’을 위한 감상이든 평범하게 이해될 만한 책일까?
어제 ‘호민과 재환’ 전시회를 다녀왔다. <무한동력>, <신과 함께> 등을 인상 깊게 읽어 주호민 작가의 전시물들도 좋았지만, 여전히 내게 물음을 던지는 것은 주재환 작가의 작품이다. 현대미술이 어렵고 잘 이해되지 않는 말들로 가득 차 있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음을 비판하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품 설명을 하고 옆에 평론을 적어놓았는데 절대 평범한 사람들이 이해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걸 대조하여 표현한 것을 보자 나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가 한 마디 덧붙인 건 가슴에 찔리기까지 했다. “현대 미술을 설명한 게 어렵기만 해서 남들한테 이해가 안 되는 걸 비판하는 작품이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보통의 감상>의 한 구절을 어머니한테 읽어드렸다. 어머니의 한 마디. “그게 어떻게 보통의 감상이야?” 맞다. 보통은 이렇게 감상을 쓰지도 못하고 이런 감상을 바로 이해할 수도 없다. 어떤 평범한 사람이 작품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책들과 영화의 예시를 들고 그것을 현실의 문제에 맞추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엮어 글을 써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복잡한 현실의 문제들을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을 아무리 글을 잘 써냈다 하더라도 바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고민이 여기에 이르면 이 책은 <(미술을 좋아하고 인문학적 교양이 있는) 보통의 감상>으로 제목이 바뀐다.
어렵기만 한 현대 미술을 쉽게 쓴다고 이해가 될 리 없다. 아무리 쉽게 써봤자 현대 미술의 배경인 동시대의 역사, 철학, 사회적 문제 밑에 쌓여 있는 인문학적 지층은 글을 절대 쉽게 놔두지 않는다.
현대 미술을 이 꼴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 중 하나인 마르셀 뒤샹은 놀랍게도 예술을 일상 속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 중 하나다. 예술이 만들어낸 고정된 가치와 이상을 파괴하고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사상의 기반을 다졌다. 변기에 서명만 하면 된다는 참신한 생각은 사실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변기에 서명할 생각은 하지 않고 미술관에서 자세히 살펴보며 이것의 가격을 묻는다. 그 변기가 만들어진 배경 따위 의미 없다. 사실 배경을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결국 보통의 예술은 좀 배웠다는 이들의 예술이 되고 일상의 예술은 미술을 잘 아는 이나 돈 많은 이들의 일상에서만 인정된다.
보통은 뛰어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중간 상태라는 의미의 단어다. 애매한 정의이다. 뛰어나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기준에 맞추어야하고 못나다는 것은 어느 정도 기준에 맞추어야할까? 이것도 시험마냥 등급이나 학점을 매겨야 할까? 그렇게 만들어진 보통의 기준은 적절할까?
사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관 학예사조차도 조금 쉽게 말하면 모두에게 들릴 보통의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술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도슨트의 이야기에도 이해가 되지 않아 하품을 곧잘 한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지식이 많은 보통과 지식이 없는 보통이 각각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어떤 보통은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다른 보통은 현대미술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보통들의 차이는 현대미술의 인식에 차이를 가져오고 이 인식의 괴리는 서로 다른 보통들을 각각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다른 세상의 사람들인 것처럼 만든다.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법. 공백을 줄일 수 있는 법. 이상적으로 가능할 것이라 믿어왔던 고등학생의 나와는 달리 군대를 다녀오고 무수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온 나는 그 격차를 매번 실감한다. 절대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격차. 누구나 자신이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그 사람 개인만의 의견인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그들과 비슷한 의견을 가진 보통에 갇혀 있을 뿐 다른 보통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들 사이엔 우주의 넓이만한 공백이 있다. 여전히 그 보통들 사이를 좁히는 고민을 한다. 과연 나는 진정한 ‘보통’의 감상을 내놓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