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석파정 서울미술관을 갔다 왔다. 부암동에 위치한 꽤 큰 규모의 사립 현대 미술관으로 대단한 소장품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예술은 대중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늘 새로운 그리고 대중적인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번에 열리는 <보통의 거짓말>이라는 전시회로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일상을 넘어서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거짓말들에 대해 작품을 통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관객들이 보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전시였다.
이 전시회의 시작은 영화 <트루먼 쇼>의 결말부분을 차용하고 있다. 하얀 구름이 가득한 맑은 하늘의 벽에 뚫린 단 하나의 문과 그로 이어진 계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트루먼이 한 말을 써놓았다. ‘Good morning, good after noon, good night.’ 다시는 세트 안으로 들어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나를 묶어두었던 모든 거짓된 세계에 대한 작별인사로 한 말이다. 그의 일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은 모두 세트였으며 사람들은 전부 연기자였다. 그의 일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프로듀서에 의해 기획된 것이었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만을 내뱉고 있었다. 그는 그 상황에서 그 거짓을 간파하고 진실한 진짜 삶을 찾아나가는데 성공했다.
<트루먼 쇼>의 트루먼을 가둔 거짓말들은 전혀 좋은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일상 속에서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짓말들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좋은 아침.’ 모든 상황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가끔은 자다 깨서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출근하는 썩 기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습관적으로 그냥 저런 말을 던지고는 한다. 그리고 힘들어죽겠는 이 부대 안에서 걱정을 덜려고 부모님에게 ‘잘 지내요.’라는 말은 흔하디흔하다. 또한 전혀 내가 미안하지 않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던져야 하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자주 쓰이는 거짓말 중 하나다. 이런 거짓말들은 누구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또는 걱정을 덜기 위해서 등 나쁜 쪽의 반대의 이유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그 어떤 거짓말도 하지 말라며 거짓말만 해도 혼나기도 한다. 그와는 반대로, 가끔 부모님이 안 좋을 때 우리는 거짓말을 하며 분위기를 맞추어 가는 사회생활을 배우기도 한다. 유아기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된 지금은 거짓말이 과연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어졌다.
<2019 ASYAAF>에서 아시아 청년들의 미술축제라 불리는 이 전시회에서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에 하나는 형광빛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지워 놓고 전혀 양복을 입은 사람을 강변과 같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장소에 두고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자신의 진짜 얼굴을 지우고 ‘가면’을 쓰고 현대 사회에서 사는 것이 사진에서 보이는 이질감만큼이나 큰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작품 설명이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을 속이는 가장 큰 거짓 가면인 ‘페르소나’를 몇 개씩 들고 다닌다. 군대에서 쓴 글만 100편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도 글을 읽고 나라는 사람을 모두 이해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나는 평범한 나와는 다른 페르소나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대부분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페르소나를 쓰는 많은 사람들은 정작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고 사회에 겉으로만 보이는 편린들에 자기 자신을 간신히 담아내고 있다. 결국 그러한 편린들로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힘듦에도 웃는 얼굴로 된 가면을 쓰고 거짓말을 계속 내뱉으며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힘든 우리도 웃는 얼굴로 간신히 계속 거짓말을 내뱉는다면 겉으로는 즐거울지 몰라도 속으로는 썩어가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여기서 쓰는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짓말 사이에 숨겨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봐 줄 수 없다면 사회는 더욱 차갑고 암울해질 것이다. 그런 거짓말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계속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봐주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거짓말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거짓말 속에 숨겨진 진짜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을 그만둔다면 세상은 더욱 잿빛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을 그만둔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에도 잘 나와 있다. 사회의 거짓말에 묻히고 개인들의 거짓말에 묻힌 사회는 말 그대로 삭막하기 그지없다. 1940년대에 쓰인 이 소설에 나온 사회는 거짓으로 점철된 진실 없는 사회 그 자체다. 1940년대에 예상한 것보다 과학 기술이 덜 발전해서 1984년의 우리는 괜찮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간에 계속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촛불 집회와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에 가면을 씌워 숨기려는 노력은 늘 있었지만 그를 꿰뚫어 우리는 늘 진실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984년 1월 1일 그런 노력을 긍정하기 위해 백남준은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굿모닝 조지 오웰>이라는 비디오 아트 영상을 동시 송출했다. 1984년에 세계가 이미 전부 통제될 것이라 생각했던 조지 오웰에 대한 통쾌한 반박 영상이었다.
여전히 나는 거짓말이 완전히 나쁜지 좋은지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없다. 하지만 거짓말 속에서 진실을 찾는 노력을 관둔다면 개인이든 사회든 점점 말라갈 것임을 확신한다. 가끔은 누군가의 걱정을 덜기 위해 누군가를 돕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그 속에서도 진실을 찾는 노력을 관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100년 후고 1000년 후고 우리는 다음의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Good morning, good after noon, good night. George Or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