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못다한 이야기
제주올레 완주기에서 제주 역사에 관해서 4·3사건까지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4·3사건 과 동시기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비극이라 한다면 역시 한국전쟁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의 거대한 흐름을 제주도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1950년 8월 14일 대구에 육군 제1훈련소가 설치되었습니다. 하지만, 1951년 1·4후퇴가 시작되자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여 1월 21일 제1훈련소를 모슬포로 옮겼지요. 이 제1훈련소에는 강한 병사를 키우는 곳이라는 뜻에서 강병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자 11월에는 논산에 제2훈련소를 설치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이곳에 연무대라는 휘호를 붙였습니다. 이후 한국전쟁 중에는 거제도의 제3훈련소를 비롯해 제7훈련소까지 창설했습니다. 한국전쟁 후에는 제2훈련소를 제외한 모든 훈련소가 폐쇄되었고 모슬포의 제1훈련소가 문을 닫은 것은 1956년 1월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도 모슬포가 훈련소 부지로 선택된 것은 아마 10코스의 알뜨르 비행장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곳은 모슬포에 제1훈련소가 만들어지자 알뜨르 비행장은 모슬포공항이 되었고, 장성과 외국 귀빈들, 급한 물자를 나르는 중요한 곳이 되었습니다. 또한, 공군이 비행장을 맡아 사용하면서 임시로 대정초등학교에 공군사관학교를 이전해오기도 했습니다. 지금 대정초등학교 교정에 공군사관학교 훈적비가 세워져 있다는데 저는 코로나 시대에 갔던 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훈적비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이 외에도 대정여고 안에 있는 제98병원 터와 인천상륙전쟁에 참가한 해병대 4기생을 비롯한 많은 해병대를 길러낸 해병대 병사(兵舍), 제1훈련소 지휘소가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옛 군사시설과 그 터를 보면 당시 인구 10만이 모여 있었던 천막도시 모슬포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군사유적들 중 가장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것은 강병대 교회입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된 이곳은 여전히 근처 공군 장병들이 교회로 사용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군부대 안에 있는 것은 아니고 모슬포 시가지에 있는 곳이라서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관리하는 부대는 10코스 알뜨르 비행장에서 모슬봉을 볼 때 확인할 수 있고. 11코스 모슬봉을 오르면서 통제구역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군으로 전역한 저도 사실 이 부대를 가보고 싶었는데 이 부대는 시가지 가까운 곳이라 격오지 추가 휴가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백령도를 갔습니다.
다시 강병대 교회를 설명하자면, 강병대 교회는 1952년 2월 세워졌습니다. 공병대가 만들었다는 이 교회는 특별한 장식은 없지만,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벽체가 인상적이며, 군대 건축의 묵직함이 느껴지면서 모슬포가 군대 주둔지였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건축물이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따뜻한 햇살 아래 조용히 서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자리가 주는 분위기가 무척 바뀔 수 있음이 확 느껴지더군요. 교회 바로 옆의 보훈회관은 평화로운 분위기의 이곳이 예전에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는지 실감하게 해주었습니다.
강병대 교회를 벗어나 큰 길을 따라 걸어가면 모슬포 시가지의 끝에 길 양 옆으로 커다란 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409호로 지정된 이 기둥들은 강병대 훈련소의 정문의 크기를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어 모슬포 주둔 군사시설의 규모가 무척이나 컸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기둥 옆에 쓰인 강병대의 설명판을 보면 강병대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강병대를 찍은 사진부터 창설부터 폐쇄까지 50만 명 정도의 신병을 길러냈다는 강병대의 여러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지요.
이 정도를 살펴보면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 주변을 살펴보는 것은 끝이 납니다. 10-1코스 가파도를 보고 시간이 많이 남으신 분들이 모슬포 시가지를 천천히 둘러보면서 한 번 보기 좋은 여행지이자 답사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넓지 않은 이 모슬포 시가지 주변에 피난민, 훈련병들이 모여 약 10만 명 정도가 살았다고 합니다. 이 좁은 땅에 당시 제주 인구 3분의 1이 모여 살았으니 문제가 많이 생겼겠지요. 각종 물자가 부족했지만, 당시 가장 부족했던 것은 식수였습니다. 제주 자체가 식수를 많이 가진 지역이 아닌데 급작스레 사람들이 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전염병도 돌았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슬포를 ‘못살포’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널리 퍼졌습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세월이 지나 아물었지만, 지명에 남은 흉터는 여전히 남아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유적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본 '방어 축제의 거리'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활기참이 무척 모순적으로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