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못다한 이야기
친구 A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 가장 의문이 드는 종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11코스의 종점 무릉외갓집이었습니다. 숙소를 잡기 위해 네이버 지도를 켜서 무릉외갓집 주변을 살펴보니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변에 적당한 사회기반시설이 없는 종점들은 다수 있었지만, 나름 항구나 마을의 끝이라는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난데없이 외갓집이라니, 무슨 외갓집이기에 종점으로 잡았나 했습니다.
11코스를 걷고 종점에 도착해서 무릉외갓집에 도착했는데 외갓집으로 예상되는 어떤 고즈넉한 고택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밭과 한 컨테이너가 있더군요. 마을기업, 지역상생을 위한 JDC공동체사업과 같은 말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아마 무릉리 마을에서 운영하는 농업기업인 듯했습니다. 그 옆에 재밌는 써져 있는 말 중에 도움을 주는 친구 기업으로 제주올레와 벤타코리아가 있었는데 벤타코리아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기업이라 도대체 뭘 하는 기업일까 싶었습니다. 여전히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던 무릉외갓집에 대한 의문은 길을 완주하고 돌아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의 책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을 읽고서야 풀렸습니다.
제주올레에는 1사 1올레 정책이 있습니다. 제주올레 길이 지나는 마을과 하나의 기업을 연결해, 기업은 마을을 돕고 마을은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한 마디로 마을과 기업이 상부상조하는 정책이죠. 현재 14개 마을과 기업이 결연하여 활동 중인데 활동 중인 기업들이 대단합니다. 현대자동차, 대한항공, KT, LG생활건강, 코카콜라, 세브란스병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벤타코리아도 이 기업들 중 하나고 1사 1올레를 통해 무릉리와 결연을 맺었습니다. 제주올레 홈페이지에는 벤타코리아와 무릉리 마을의 결연으로 만들어진 무릉외갓집이 1사 1올레의 대표적인 예시로 나와 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과의 결연이 아닌 벤타코리아와 무릉리의 결연이 1사 1올레의 대표적인 예시가 된 이유는 위에서 말한 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벤타코리아의 김대현 사장은 1사 1올레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제주올레의 말을 듣자마자 적극적으로 참여의사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제주올레는 이를 받아들여 무릉리와 벤타코리아와의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유명한 기업들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공기청정기를 파는 기업인 벤타코리아와 결연을 맺는 것에 대한 무릉리 마을주민들의 거부감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열정적인 김대현 사장의 도움으로 무릉리에서 나는 농산물과 특산물에 대한 판로와 판매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고, 무릉외갓집이라는 브랜드가 첫 선을 보였습니다. 무릉외갓집을 통해서 제주 제철 농산물을 매달 40,000원에 정기구독할 수 있으며, 무릉외갓집 홈페이지에서는 여러 신선한 제주의 농산물과 특산물들을 직거래로 사서 먹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릉외갓집이라는 브랜드를 무릉리에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무릉리와 벤타코리아 임원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변했다고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돈’이라는 가치를 뛰어넘어 서로의 노력 위에 ‘정’을 쌓아올린 무릉리와 벤타코리아의 예는 제주올레가 추구하는 1사 1올레 사업의 가치를 뚜렷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행길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길을 통해 지역과 여행객, 또는 지역과 여행길의 상생까지 추구하는 제주올레의 지역커뮤니티 구축은 1사 1올레 사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주올레의 마스코트인 ‘간세’의 인형을 만드는 공방조합을 생성하여 제주 여성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제주와 관련된 에코브랜드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또한, 제주올레 워크숍을 통해 지역의 특산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도우며, 지역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지역 콘텐츠의 대표적인 예로는 올레꾼들이 애용하는 할망숙소가 있습니다.
제주올레의 한 코스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아침에 출발하면 쉬엄쉬엄 걸어도 시작점에서 종점까지 해가 지기 전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죠. 또한, 매우 험한 길도 없습니다. 적절한 장비만 갖춘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완주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름길로 가지 않고 늘 골목길로 돌아갑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가며 살피고 주변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길로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꼬닥꼬닥(천천히) 걸어가는 이 길을 보고 있으면 제주올레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같이, 그리고 천천히 가자.”
목표만 보고 효율적으로, 빨리 가는 것이 만연해진 사회에서 제주올레가 길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위에서 말한 지역과의 연계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업과 지역, 올레길과 지역, 여행객과 지역의 연계를 추구하는 제주올레의 모습은 목표를 향해 누구보다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고, 삶이라는 고된 길을 다 같이 발맞추어 천천히, 그리고 즐겁게 걸어가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올레길 위에 서게 된다면 제주올레의 이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메시지를 기억하고 제주라는 지역과 소통하는 여행을 즐기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