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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ja Dec 27. 2021

고전적 추리 서사에 숨겨진 사회 풍자 <나이브스 아웃>


 얼마 전 동생과 함께 집에서 넷플릭스로 뭘 볼까 고민하다가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을 보았습니다. 잘 만든 고전적 추리 영화로 알고 있었기에 셜록 홈즈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영화를 틀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동생은 예상보다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며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떠오른다는 평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작품을 보고 한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김경훈 기자에게 한국 국적 사진기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영예를 가져다 준 사진으로 미국 샌디에이고 국경에서 일어난 장면을 찍은 사진입니다. 국경 울타리를 넘으려는 이민자들에게 국경 경비대원이 최루탄을 던지고 그 최루탄을 피해 한 여자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도망가는 사진이죠. 폭력이 만연한 온두라스를 떠나 미국으로 가고자 했던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가 그려진 옷입니다. 국경을 넘어 세계에 미국의 문화적 위상을 떨친 디즈니의 옷을 입은 사람이 미국의 국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사진에 담긴 모순적인 상황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이브스 아웃>을 보고 이 사진이 떠오른 이유는 잘 만든 추리 서사 속에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 요소가 숨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중심 사건은 ‘미스터리 작가의 사망’입니다. 이 작가의 사망에 숨겨진 진실들을 찾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탐정과 마르타라는 작가의 간병인입니다. 마르타의 어머니는 중남미 출신의 불법체류자죠. 미스터리 작가의 가문이 성공한 백인 집안이라 마르타의 가문과 확실히 대비됩니다.


 이 영화에서 마르타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해야 하는 체질이라는 무척 중요한 한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이는 심문 중에도 거짓을 일삼는 백인 가족들과 대비되는 부분이죠. 이 특징은 선량한 간병인이라는 마르타의 정체성을 강화하여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마르타가 고의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개연성을 부여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어색할 수도 있는 마르타의 이 특징은 잘 만든 추리 서사 속에서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되고, 어느 상황에서든 마르타를 선의의 편에 두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선량함은 영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마르타에게 공감하도록 만듭니다.


 선량한 마르타와 달리 심문 중에도 거짓을 일삼는 백인 가족들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토론을 합니다. 보수는 불법체류자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입장이고 진보는 그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죠. 보수 측인 첫째 사위는 이 토론에 마르타를 불러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몰상식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한, 마르타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말과 따뜻한 태도를 걷어내면 마르타가 어디 출신인지도 몰라 중남미의 각기 다른 나라들을 말하는 백인들의 무관심이 보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마르타의 출신국은 미국이 아닌 관심조차 줄 필요 없는 가난한 중남미의 어느 곳일 뿐이죠. 그들의 이런 이중적인 면은 미스터리 작가의 사망 이후 모든 유산을 마르타에게 준다는 유언이 밝혀진 이후 드러납니다. 모든 가족들이 마르타에게 폭언을 퍼부음과 동시에 그나마 양심적이고 마르타와 가장 친하다고 할 수 있는 메그를 압박하여 마르타의 어머니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이 점을 들어 마르타를 협박해 유산을 포기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앞의 여러 과정을 거쳐 영화의 결말은 권선징악으로 끝납니다. 마르타를 곤란하게 만든 악랄한 범인이 탐정에게 잡히고, 마르타는 거대한 저택과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죠. 사건이 정리되고 난 후 마르타를 동일선상의 인간으로도 생각하지 않으며, 마르타에게 모욕을 했던 백인 가족들은 자신들의 실수로 인해 상속받지 못한 작가의 대저택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무척 압권입니다. 늘 백인들에게 깔보였던 마르타가 저택의 2층 테라스로 올라와 ‘내 집, 내 규칙, 내 커피’가 쓰인 머그컵을 들고 커피를 마시며 백인들을 내려다보고, 백인들은 마르타를 올려다봅니다. 영화 내내 은연중에 드러난 백인과 불법체류자 혹은 중남미 이민자 간의 수직 관계가 역전되어 영화 전면에 명시되는 장면입니다. 이를 통해 이 영화가 분명 잘 만든 추리 오락 영화 이상의 영화로 해석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위의 사진이 퓰리쳐상을 수상한 년도는 2019년이고, 이 영화가 개봉한 년도도 2019년입니다. 불법체류자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좋게 생각하지 않던 미국의 보수 세력이 무척 강할 때였죠. 이 때에는 불법체류자를 무척 싫어했고, 이에 더해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도 늘어나던 때였습니다. 물론 불법체류자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정착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님에도 그들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기 보다는 그 보다 아래의 존재로 생각하며 그저 부정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경향이 무척 강했습니다. 이 영화는 선량한 주인공이자 피해자를 불법체류자의 자식이자 이민자로 설정하여 그들을 마냥 나쁜 시선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을 자신보다 아래의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조용하게 풍자까지 하고 있죠. 이렇게 영화의 배후에 깔려 있는 설정과 풍자 요소들을 따라가다 보면 고정적으로 나쁘게만 바라봤던 불법체류자에 대해 조금 더 인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겁니다. 


 다만, 이 글만 보고 이 영화에 대해 어려운 사회적 문제를 다룬 어두운 추리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사회적 문제를 잘 다루어서가 아니라 잘 만들어진 고전적 추리 서사가 영화 런닝타임 내내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기 때문에 이 영화가 좋은 평을 받는 것이니까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추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나이브스 아웃>을 찾아 보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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