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작년 11월의 어느 날, 2021 서울서점주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의 동네 서점 몇 군데를 돌아보았습니다. 좋은 서점들이 많았지만, 제가 원하는 책을 선별한 서점을 찾기는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경의선 숲길 옆 ‘책방연희’에서 제가 보고 싶었던 책들을 찾을 수 있었죠. 한 지역 혹은 도시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는 도시인문학에 관한 책들이 한 가득이었습니다. 즐겁게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서점 운영자님이 추천한다는 메모가 붙은 ≪교토의 밤≫이라는 책 앞에서 걸음이 멈췄습니다. 슥 책을 펴보니 잘 아는 풍경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이윽고 저는 2017년 여름을 회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명의 친구들과 여수 여행을 끝내고 올라오는 길, 여수에서 서울까지 6시간에 이르는 무궁화호 열차에서 여행의 여운을 즐길 대로 즐겨 질려버린 채 멍만 때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자 친구 A가 해외여행, 그러니까 일본여행은 어떻겠냐고 말을 꺼내더군요. 거절할 이유가 없어 일단 가겠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설마 갈까 싶었던 일본여행은 친구 A가 강력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인 결과 9월에 신촌의 한 카페에서 계획까지 완성되게 되었습니다.
여행계획에는 교토 곳곳의 절과 사찰, 정원들을 최대한 많이 보겠다는 저의 사심이 가득 담겨있었죠. 여행계획은 짰지만, 여행계획을 짰다고 해서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권도 만들어야 하고, 비행기와 숙소도 예약해야 하며, 창덕궁 후원처럼 예약해서 들어가야만 하는 유적지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거의 친구A 혼자 해냈습니다. 3개월 전에 편지를 써서 입장 허락을 받아야하는 가장 까다로웠던 사이호지(西放寺) 예약을 비롯하여 정말 여행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처리해주었고 저희는 여권만 만들고 가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온 12월,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 공군 면접 날이 여행의 마지막 날과 겹친 것이죠. 저는 재빨리 결정을 내려 넷째 날 제 숙소를 취소하고, 간사이 국제공항에서 밤을 새워 잠을 잔 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인천 국제공항에 내린 후 수원 병무청으로 면접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 전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나니 설렘만 마음속에 남았습니다.
그 설렘이 마음속에 차오를 때쯤 저는 회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별 고민 없이 ≪교토의 밤≫을 집어 들었습니다. 서점을 나와 집에 도착해 ≪교토의 밤≫을 읽으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4년 가까이 지나버린 케케묵은 이야기가 띄엄띄엄 이어질지언정 지금 기억에 남은 이야기라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주올레 완주기를 다 쓰고,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교토의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해도 여전히 교토를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써보려 합니다. 더 지나면 연기처럼 아스라이 사라질 것 같은 이야기를 붙잡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이 뒤에 이어질 글은 여행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여행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여행기도 아니고, 유물이나 유적을 인문학적 지식에 따라 설명하는 답사기도 아닙니다. 둘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겠지만, 각각과 완전히 부합하는 글이라고 하기에도 그렇습니다. 아마 4년이 지난 후에 사진 몇 장만 가지고 기억을 되살려 쓰는 글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저는 이제부터 제가 쓸 글을 회상기라고 하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제가 교토에서 했던 경험을 회상하며 쓰는 글이기 때문이죠. 그럼 이제부터 2018년의 저와 제가 보았던 교토의 이야기를 회상할 시간입니다.